요즘 약으로 쓰는 태반, 사실 오래 전부터…
요즘 약으로 쓰는 태반, 사실 오래 전부터…
  • 칼럼니스트 한경훈
  • 승인 2013.03.21 11: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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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상징하는 태반, 생명력으로 활용하는 태반

[연재] 한경훈 원장의 산수유(産·授乳) 이야기

 

-문화와 한방으로 보는 임신·출산과 육아-

 

태반은 임신 기간 동안의 임시 장기로 태아를 감싸는 막과 자궁을 연결하는 곳에 있습니다. 출산 전 불완전한 태아의 각종 장기 역할을 대신하는 태반은 엄마 몸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하고, 태아로부터 노폐물을 건네받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태반은 아기가 나오고 난 후 대개 수십 분 내에 뒤따라 나오는데, 이 때문에 태반을 포함해 나중에 나오는 것을 후산(後産)이라고 하지요.

 

일종의 생명유지 장치로서 어떤 첨단 의료 장비보다 뛰어난 기능을 수행하던 태반은 대부분의 전통사회에서 아기의 분신으로 여기며 소중하게 다뤄왔습니다. 문화마다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태반을 잘 처리하면 아기에게 복이 오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을 가져온다고 본 것은 공통된 인식입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부랴트 족을 비롯한 여러 유럽 풍속에서는 태반을 반드시 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장소는 문지방 아래나 정원, 집 뒤편 등 다양합니다. 나무아래 묻을 경우 그 나무를 아기의 분신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우리 풍속에서도 안태(安胎)라고 해 태반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태반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비롯되기 때문에, 여기에 그의 현명함과 우둔함, 그리고 인생의 출세까지도 관련돼 있다고 믿었습니다. 민간에서는 태를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은 후에 짚에 말아서 태우는 풍습이 있었는데, 집에서 아기를 낳았던 지금의 할머니 세대에게서도 그러한 경험을 들을 수 있습니다.

 

왕태자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처럼 여기는 왕실에서는 민간보다 더 특별했습니다. 왕손이 태어나면 날을 정해서 태를 백번 씻고 태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길지에 태실을 마련해 안태합니다. 태의 주인이 왕에 즉위하면 그 태실은 태봉(胎封)으로 봉해져 안팎으로 장식을 더할 뿐만 아니라 사방 300보 안에서는 경지를 개간하는 것도 금하였습니다. 태봉 부근의 관할관서는 봄가을로 살피면서 만약 문제가 생기면 즉시 보고하고 보수해야 했다고 합니다. 마치 정성스런 장례나 제사를 통해 조상들이 후손을 보살피길 기원하는 것과 비슷한데, 삶을 시작할 때 남기는 태와 떠날 때 남기는 시신을 같은 방식으로 다룬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요즘은 병원을 비롯한 의료 환경에서 출산하다보니 전통적인 방식으로 태반을 처리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대신 간기능 개선 및 갱년기 장애에 대한 허가 사항을 비롯해 항산화, 항염증, 미백 등에 대한 태반의 다양한 효과가 알려지면서 전량 폐기해야했던 태반의 일부가 약의 원료로 수집됩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청에서는 ‘인태반(人胎盤) 유래 의약품 안전관리 방안’을 제정해 인태반을 수집할 때 산모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감염되지 않은 태반만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통사회에서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태반을 약으로 쓰겠다니, 시대에 따른 갑작스런 변화일까요? 수년 전부터 태반 주사가 유명세를 타면서 언뜻 현대의학의 새로운 발견에 의해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동물행동학적으로 볼 때 태반을 형성하는 포유류는 대부분 출산한 어미가 곧 태반을 먹는데 산후 기력 회복이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인간에 있어서도 위에서 언급한 태반의 처리 풍속과 함께 일찍부터 산모가 먹거나 약으로 이용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세 유럽의 농경사회의 전통에서도 산모가 출산 후 태반을 먹었고,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치료에 이용했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한의학 의서에서는 태반을 자하거(紫河車)라고 부르며 산후회복뿐만 아니라 기혈 부족으로 인한 다양한 질병을 치료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러한 전통적인 이해에 현대적인 연구가 더해지면서 탕약이나 약침 등의 방법을 통해 불임, 유즙 부족, 허약과 관련된 증상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한경훈은 한의사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 첫째를 조산원에서 맞이하면서 출산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둘째는 살던 집에서 감격스런 가정분만을 경험했다. 현재는 출산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한양대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해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산수유는 친근한 한약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출산, 행복한 모유수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같은 이름의 칼럼을 시작했다. 현재 안산 산수유한의원 원장, 국제인증수유전문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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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h**** 2013-03-26 10:14:00

태반이 정말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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