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이 죽었는데, 3년간 뭘 했나요"
"아들 딸이 죽었는데, 3년간 뭘 했나요"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3.07.15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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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 공청회

“저는 정부 관계자에게 말할 건 하나도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의원님들에게 백번이라도 절을 드리고 싶습니다. 꼭 입법해주세요. 다른 건 다 소용없습니다. 소송도 언제 끝날지 모르고요. 한 달 약값도 감당 못하겠습니다. 이제 그만 구걸하고 싶습니다.”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 공청회에 참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장동만(48·대전) 씨는 공청회 말미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대표해 진행한 피해자 최후 진술에서 이 같이 전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장동만(48) 씨가 딸의 사망과 아내의 사진 등을 들어보이며 피해자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현실에 대해 전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장동만(48) 씨가 딸의 사망과 아내의 사진 등을 들어보이며 피해자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현실에 대해 전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장 씨는 이날 3시간동안 방청석에 앉아 공청회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눌러야만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의 입법을 위한 자리였지만, 환경부와 기획재정부가 입법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공청회는 두 부처 관계자와 국회의원들의 공방 형태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장 씨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다. 우릴 돕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전혀 얘기가 달라서 누굴 믿어야 할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 장 씨는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3년 전 4살 된 딸아이를 잃었다. 아내는 폐이식 수술을 받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은 두 아이는 할머니 손에 맡겨 키우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다가 감기라도 걸려 아내에게 옮길까 하는 마음에 어린이집에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장 씨도 매일 마스크를 쓰며 감기에 걸릴까 조심하고 다니는 실정이다.

 

장 씨는 “집안이 다 깨졌습니다. 제발 이 법을 입법해주세요”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장 씨의 발언을 지켜보던 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장 씨를 비롯해 큰 아이를 잃은 부부, 산소호스를 꼽은 채 엄마와 함께 온 11살 피해자, 아이를 먼저 보낸 피해자 가족, 아내를 잃은 남편 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방청석을 끝까지 지켰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큰 상처를 받고 돌아가야만 했다.

 

◇ “피해구제법 필요하다” 한 목소리

 

현재 국회가 심의 중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은 총 4건이다.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장하나 의원)’,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법률안(홍영표 의원)’, ‘생활용품 안전관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이언주 의원)’, ‘화학물질 및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 등에 의한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심상정 의원)’. 이들 법안에 대해 이날 공청회에 진술인 자격으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조속히 처리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종원 한국법제연구원 사회문화법제연구실장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생존권, 환경권의 실현, 그리고 공정성의 확보 등을 고려할 때, 이들 조항이 국가로 하여금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행정적 구제제도의 마련을 의무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과 근거는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며 “현재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가 다수 존재하고 있고 종래의 제도만으로는 원활한 피해구제가 곤란함을 고려할 때,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건강손상 사이의 원인적 연관성에 대한 근거는 가습기살균제 등을 비롯한 화학물질의 관리에 대한 사회적 정책을 수립하는 것, 그리고 그 사용에 따른 건강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 등에 준용될 충분한 근거라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무고한 다수 국민이 생명과 건강을 잃고 가정이 무너지는 상황을 국가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나서서 더 이상의 생명이 쓰러지고 가정이 파탄나는 문제를 막고, 유족과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긴급구제를 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기획재정부 대표로 참석한 노형욱 기획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이 피해자 가족들의 진술을 들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기획재정부 대표로 참석한 노형욱 기획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이 피해자 가족들의 진술을 들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정부 측 “법률 제정은 신중한 검토 필요”

 

하지만 환경부와 기획재정부는 입법이 아니라 현행 제도를 활용해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정균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관은 “특별법 제정에 대해선 손해배상소송이 진행 중인 것과 유사법률 양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고 우선 현행 제도를 활용해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 방안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노형욱 기획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대책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다만 특별법 제정은 신중하게 하고 당장 실효적 지원이 될 수 있는 것부터 정부 내에서 찾아보잔 취지”라고 입장을 전했다.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위한 현행 제도 지원으로 ▲긴급지원 ▲장애인등록 ▲희귀난치성질환 지정 ▲기부금 조성 지원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책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과 피해자들의 지적이다. 국회의원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우선 긴급지원은 소득 재산 기준이 요건에 합당해야 하며, 금액도 총 2회 지원(6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1억 원이 넘는 수술비와 월 350만 원의 약값을 부담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금액이다. 장애인등록도 장애인으로 고착된 경우에야 지원이 가능하며,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지정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피해자 가족 장동만 씨는 “이 지원들은 노숙자만 받을 수 있다. 그나마 있던 재산도 병원비로 다 날렸다. 아내가 폐이식을 해 장애등급 5급인데 딱 하나,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50% 받는다. 서울아산병원을 다닐 때 한번 받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한명숙 민주당 의원은 “지금 환경부와 기재부는 이 법안을 반대하고 복지부는 찬성 입장이다.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하는데, 이건 완전 거짓말”이라며 “국가적 차원에서 3년간 아무 대책도 시행하지 못했는데 무슨 실효성 있는 특별한 대책을 세울 수 있느냐. 피해자 심정으로 돌아가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도 “기존 제도로는 합리적인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밝혀졌다. 제도를 넘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대체 왜 안하느냐”고 지적했다.

 

여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12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공청회가 굉장히 중요하고 역학조사로 피해가 공식화된 2년 만에 정부관계 부처와 피해자들이 다 모인 자리다. 공청회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표자 강찬호 씨가 환경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정책관들 사이에 앉아 피해자 가족들을 대표해 진술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표자 강찬호 씨가 환경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정책관들 사이에 앉아 피해자 가족들을 대표해 진술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또다른 피해자 가족의 발언을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또다른 피해자 가족의 발언을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진술인 자격으로 앉아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야만 했던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대표 강찬호(43) 씨는 “입법에 대한 좋은 의견들이 거론될 것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제가 왜 이 사이에 앉아 이 분노를 참아야 하느냐”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복지부가 문제의 원인을 밝혔는데 기재부와 환경부는 정부 발표를 부인하는 것이냐? 저희들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편의를 봐준다면 방법은 다 나와 있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죽었으면 정부 아니면 기업의 책임이지 않느냐. 길 가던 초등학생한테 물어도 이 책임은 누가 져야 할 지 다 안다. 정부의 입장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떨궜다.

 

피해자 가족 백승목(41) 씨는 “3년간 정부는 뭘 했느냐. 피해자라고 강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상식적인 일을 고급 인력들이 모여서 굉장히 비상식적으로 풀고 있는 현장, 아주 잘보고 간다”며 “집에 가서 생각해봐라. 만약 내 딸, 내 아들이 죽었다면 편히 주무셨을지 생각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방청해주신 피해자분들, 고생하셨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의원들은 법을 마련하기로 생각하고 있단 말씀을 드린다.” 정부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 법안들을 국회가 지켜낼 것이라는 입장을 마무리 발언으로 전했다.

 

장장 3시간, 에어컨 바람 하나 나오지 않아 후텁지근했던 공청회 자리를 끝까지 지켰던 10여 명의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은 공청회가 끝나자마자 국회의원들에게 달려가 고마움을 표현했다. 정부와 기업에 제대로 분노의 목소리조차 전하지 못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준 국회의원들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 것. 이를 지켜보던 국회의원 비서진들도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이들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를 마친 후 전 국무총리이자 민주통합당 의원인 한명숙 의원(오른쪽)과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어린이인 임성준(11) 군에게 힘내라고 격려와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를 마친 후 전 국무총리이자 민주통합당 의원인 한명숙 의원(오른쪽)과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어린이인 임성준(11) 군에게 힘내라고 격려와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를 마친 후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눈물을 흘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며 포옹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를 마친 후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눈물을 흘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며 포옹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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