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아이를 가슴으로 품다
베이비박스 아이를 가슴으로 품다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4.04.29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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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났다]베이비박스 아이 첫 입양한 최승은씨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버려진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도, 관심도, 물질적인 것도 아니에요. 가장 필요한 건 가정이라는 울타리, 그거 이상은 없어요.”


최승은(32) 씨는 몇 번이고 강조했다. 한 아이의 엄마로 평범하게 지내다, 입양으로 아들을 얻은 그는 가정의 소중함을 가슴 속 깊이 느끼고 있다. 입양은 특별한 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아이의 행복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는 것을,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세상을 살아갈 큰 힘을 얻는다는 것을….

 

입양 이후 주변의 싸늘한 시선이 최 씨 가족을 힘들게 하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하는 일이기에 견뎌낼 수 있다. 아이들과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최 씨를, 지난 2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한 카페에서 만나봤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처음으로 입양한 최승은 씨.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처음으로 입양한 최승은 씨.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베이비박스 아기를 가슴으로 품다

 

최 씨가 첫째 은석(4·가명)이를 처음 만난 때는 지난해 3월이었다. 첫 딸 은수(3·가명)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다니던 은석이는 참 밝았다. 붙임성도 좋고 눈에 띌 정도로 예쁜 그런 아이였다. 은수가 막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기간이라 어린이집서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 은석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궁금한 찰나, 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은석이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은석이가 생활하는 곳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주사랑공동체교회. 고등학생이던 엄마는 이곳에 갓 태어난 은석이를 버렸고, 이종락(60) 목사를 비롯한 교회 사람들이 은석이를 자식처럼 키워왔다.

 

“다들 저출산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웠죠.”

 

어떤 방법으로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교회를 찾아간 최 씨 부부. 그저 한 달에 한번 은석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후원이라도 해줄 마음이었다. 하지만 목사가 전해준 말은 이들 부부의 평범했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목사님은 ‘아이에게는 물질적 지원이나 동정이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 부모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물론 저희에게 한 말씀은 아니지만요. 전 그저 좋은 부모를 만나길 기도해주자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저보다 앞서 있었나봐요.”

 

남편 위성주(33) 씨는 아내에게 “우리가 아이의 부모가 돼 주자”고 말했다. 단 한 번도 입양을 생각해본 적이 없던 부부였다. “내가 어떻게 입양을 하느냐”며 당황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나이 들어서 돈 있으면 왜 못 돕겠느냐. 그 타이밍을 조금 앞당긴다고 생각하자”고 설득했다. 2주간 걸친 고민 끝에, 평범했던 가족은 은석이를 아들로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믿음으로 입양 결정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어요. 하지만 적어도 이 아이가 보육원에 가거나 해외로 입양되는 것보다는 우리 가정 안에서 자라는 게 낫겠다고 믿었죠.”

 

입양은 보통 불임부부나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 어린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이 입양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최 씨 부부가 은석이를 가슴으로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 덕분이었다. 딸을 키우고 있는 부모의 마음 그대로, 은석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하에 입양을 결심하게 된 것.

 

하지만 혈연, 핏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입양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쉽지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양가 부모의 반대는 거셌다. 늘 부부의 편에 서주던 부모님들은 “아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 그래봤자 오히려 원망만 들을 것”이라고 펄쩍 뛰었다.

 

친척들은 “부모에게 불효하지 말라”고 말렸다. 주변 사람들은 “입양을 하면 이사나 이민을 갈 거냐”고 묻는가 하면, “돈이 그렇게 많느냐”며 비아냥거렸다. 평범한 가정의 입양 결정은 한국 사회에선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다. 최 씨는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사가야 하나 싶었다. 입양은 소중한 선택이라고 홍보는 잘해놓고 있었지만, 입양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 사회의 편견 등으로부터 외로운 싸움 시작
 
입양은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입양 준비 비용은 전부 부부가 부담해야 했다. 정신과 감정부터 서류 준비까지 돈만 200만 원 가량이 들었다. 입양 심사 때문에 자주 법원에 가야했지만 그때마다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어 애를 먹기도 했다. 이미 지난해 4월부터 은석이를 위탁해 함께 지냈기에 아이 둘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최 씨를 도와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도 도움을 얻지 못했다. 지원체계가 잘 돼 있는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과는 많이 달랐다. 결국 최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법원에 다니며 입양 준비를 해나갔다. 

 

물론 부부가 선택한 일이었기에 경제적인, 육체적인 어려움은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입양 준비 기간만 6개월.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입양을 응원해주고, 지원해주는 정서적인 공감이 필요했다. 그러나 주변에는 온통 편견으로만 바라보는 시선 뿐. 차가운 시선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곳은 없었다. 또 입양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은석이를 가정으로 데리고 올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도 많았다. 최 씨는 “다른 건 못해줘도 은석이의 부모가 돼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은 순간도 있었다”고 말했다.

 

◇ 6개월의 긴 싸움 끝에 든든한 아들이 되다

 

지친 순간에 가장 큰 힘이 돼 준 건 은석이었다. 최 씨와 함께 지내면서 점점 달라지는 은석이의 모습은 부부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했다. 처음 최 씨의 집에 왔을 때 은석이는 많이 불안한 상태였다. 그는 “은석이는 아빠가 출근할 때면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두 시간씩 울었다. 그때는 나와 애착이 형성되지 않아 달래기도 쉽지 않았다. 어렸지만 불안감과 분노가 눈에 보였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동안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지내왔던 터라 자기 것을 뺏기지 않으려는 습관도 심했다. 집 안에서도 가방을 메고 물통을 들고 다녔다. 식탐이 많아 토할 때까지 먹기 일쑤였다. 그러던 은석이가 달라졌다. 입양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매일 최 씨와 은수와 붙어 지내며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은석이는 ‘우리 집’, ‘내 아빠’, ‘내 엄마’, ‘내 동생’이 있다는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부의 눈에는 그 변화가 분명하게 보였다.

 

“은석이가 ‘엄마’라고 부르면 순간순간 감동일 때가 있어요. 누구에겐 당연하지만 누구에게는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잖아요. 한 번 잃어본 경험이 있는 아이라 엄마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게 느껴져요. 아이 때문에 더 큰 힘을 얻었죠.”

 

2013년 9월 16일, 6개월의 시간을 버텨온 끝에 은석이는 최 씨 부부의 첫째 아들이, 은수의 든든한 오빠가 됐다. 은석이가 들어온 이후 가족은 더욱 끈끈해졌다. 주변의 공격(?)을 방어라도 하듯 네 가족은 똘똘 뭉쳐서 더 큰 가족애를 만들었다. 아들이 생긴 후 남편은 육아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부부 사이도 더 좋아졌다. 사회성이 발달된 은석이와 집중력이 높은 은수는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하나뿐인 남매가 됐다. 특히 최 씨 가족 모두는 입양을 통해 많은 성장을 하고 있다.

 

최 씨는 “얼굴도, 성향도 다른 아이를 내 아이로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입양 준비 기간은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지만 그 시기를 견디고 나니 계산할 수 없는 만족감이 찾아왔다. 우리에게 은석이는 정말 소중한 아이”라고 강조했다.

 

은석이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 중 최초로 입양된 아이다. 베이비박스에는 하루에 한 명 꼴로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으며, 그 수만 지금까지 400여명이다. 이런 실태를 접한 최 씨는 입양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됐다고.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받는 보호보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받는 보호가 더 없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사실은 더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인데 말이죠. 아기들이 버려지는 다른 세계를 보면서 아동 인권을 생각하게 됐고 내 아이만 잘 키우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아이들이 보호받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 “입양 가정이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 필요”

 

앞으로 최 씨 가족에게는 더욱 힘든 날들이 많을 것이다. 최 씨나 그의 남편은 성인이라 어떠한 것도 이겨낼 수 있지만, 은석이, 은수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이들 가족을 응원해주는 지원체계가 절실한 이유다.

 

최 씨는 “입양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많은 두려움을 안고 가는 것이고 분명 힘든 시기가 올 것이다. 입양 부모들이 막다른 골목에 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지원체계가 있다면 입양한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입양 아동들이 겪는 혼란을 예방해줄 수 있게끔 심리치료프로그램이나 멘토링프로그램 등 실질적으로 입양 가정에 도움 되는 지원들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최 씨의 생각이다. 최 씨는 현재 은석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수 있도록 축구 등의 스포츠도 알아보고 있다.

 

최 씨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도,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할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입양 가정은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자녀를 얻고 가정을 꾸리는 방법이 아이를 낳는 것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아이에게 가정은 가장 큰 선물”이라는 사실만 가슴 깊이 간직한다면 입양 가정은 색안경을 끼고 볼 가정이 아니다.

 

최 씨 가족이 겪어야 할 사회적 편견은 지금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최 씨 가족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은석이를 받아들여 달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게 한국사회에서는 무리이고, 요구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대신 우리는 숨거나 도망가지 않고 우리 가족에 충실할 것이다. 우리 아들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좋겠다”고 말했다.

 

최 씨는 끝으로 은석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하지만, 저는 은석이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보다도요. 소중함과 감사함을 아는 훌륭한 아이에요. 은석이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아이로 건강하게 자라길 바래요.”

 

최 씨가 건네준 사진 속 은석이와 은수는 누구보다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가정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사진 속에 다 담긴 듯 했다.

 

은석(4·가명)이가 그네를 타며 행복하게 웃고 있다. 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아이가 자란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도 정말 소중한 일이다. ⓒ최승은
은석(4·가명)이가 그네를 타며 행복하게 웃고 있다. 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아이가 자란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도 정말 소중한 일이다. ⓒ최승은

 

은수(3·가명)가 그네를 타며 신난 듯 미소짓고 있다. ⓒ최승은
은수(3·가명)가 그네를 타며 신난 듯 미소짓고 있다. ⓒ최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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