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사태? 부모들 목소리 들어보니...
어린이집 사태? 부모들 목소리 들어보니...
  • 이유주 기자
  • 승인 2015.01.29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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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어린이집 늘리고, 민간어린이집 줄여야"

【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최근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4살 여아가 보육교사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어린이집 폭행 피해 신고가 하루 평균 20여 건에서 50건으로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전국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급히 CCTV 설치 의무화, 처벌 대폭 강화 등 아동학대 근절 대책을 발표했지만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린이집에 맡길 수도, 그렇다고 맡기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 속에 있는 어린이집 학부모들. 2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현재 어떤 고민에 놓여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들어보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정말 불가능한가'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를 비롯해 김영진 씨, 김완 씨, 지은 씨 등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들이 모여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대책을 어떤 방향과 관점으로 풀어야 하는지 함께 모색했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현재 어떤 고민에 놓여 있는지 험심탄회하게 들어보는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정말 불가능한가'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
2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현재 어떤 고민에 놓여 있는지 험심탄회하게 들어보는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정말 불가능한가'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

 

◇ "누구나 필요할 때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어야"

 

먼저 7살과 10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영진 씨는 필요할 때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김 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국공립어린이집 대기자 수만 100명 이상으로, 국공립어린이집 입소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였다"고 말문을 뗐다.

 

김 씨는 당시 민간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것은 염두해 두지 않았다. 보육교사의 자질을 떠나 공립보다 낮은 교육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김 씨는 국공립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못하고 결국 직장에 복귀하지도 못했다.

 

김 씨는 "혼자 아이를 돌봤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혼자 '나 혼자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끝이 없는 집안일, 육아에 마음대로 아플 수 없었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사회성마저 결여되고 우울증도 앓았다"며 "아무도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고, 누구 하나 도움도 없이 육아를 하다 보니 생활이 너무 어려웠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결국 김 씨는 그나마 평이 좋은 민간어린이집을 수소문해 아이를 맡겼다. 하지만 만 2세 어린이 반에서는 교사 1명이 아이 9명을 동시에 돌보고 있었다.

 

김 씨는 "만 2세 아이는 사회화가 덜 된 불나방 같은 존재인데, 교사 1명이 혼자 9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무모한 처사라고 생각한다"며 "복지도 낮고 급여도 낮은 데 제대로 교육이 이뤄질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제일 중요한 것은 전업맘이든 직장맘이든 누구나 필요할 때 보육시설에 아이를 맞길 수 있는 보육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며 "지금 국공립은 단 5%에 불과하다. 민간어린이집은 보육뿐만 아니라 이윤 또한 따져야 할 곳일 수밖에 없다. 국가가 먼저 국공립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등 안전한 보육시스템을 만들어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서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으로 정착되길"

 

7개월차 임신부인 지은 씨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벌써부터 찾아 헤매는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지 씨는 "아이 낳을 시점이 한두 달 남은 예비맘으로서 걱정과 기대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바쁘다. 하지만 임신 후 축하 인사만큼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회사에 육아휴직이 있느냐', '돌봐줄 시부모가 있느냐', '어린이집 괜찮은데 찾기 힘들다 미리 신청해라'는 말이었다"며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려웠고 조바심이 난다"고 고백했다.

 

걱정이 앞선 지 씨는 최근 아이를 입소시킬 어린이집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 씨의 집 근처 어린이집은 현재 20곳 정도인데, 학부모들이 추천하는 곳은 3~4군데였고, 퇴근이 늦어질 경우를 감안해 맡길 수 있는 연장 어린이집은 단 1군데에 불과했다.

 

지 씨는 "어린이집 인증 점수를 보면 모두 90점 이상이었다. 학부모들이 어떻게 좋은 어린이집을 고르는 지 알아보니, 지역 육아 커뮤니티에서 '이 어린이집은 이렇게 아이를 대하느냐' 등 이런저런 질문으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며 "부모들이 너무나 위태위태하게 어린이집을 고려하는 느낌이 들어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지 씨는 "직장유지를 위해서, 육아 도움을 받기 위해서,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서 이제는 어린이집이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벌써 낳기도 전부터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엄마들은 믿을만한 곳을 늘 찾아 해매야 하고, 입소문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지 씨는 "현재 정부가 급한 불만 끄고 약속들만 남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현재 나오는 대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촉매제일 뿐, 근원적 문제를 제거하는 대책이 아니다"며 "이번 사건 통해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부모들이 더 이상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당연히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길 바란다. 여러 개선책들이 제대로 나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 "보육이 사회적인 것으로 귀속돼야"

 

5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빠 김완 씨는 재원적인 문제를 떠나, 보육을 어떤 관점으로 봐라 봐야 하는지 제시했다.

 

김 씨는 “아이를 낳으면 어느 한 쪽이 일을 그만 둬야 하는 구조가 문제인 걸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직 해결점으로 한 발도 가지 못한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김 씨는 다행히 양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맞벌이를 유지하고 있다. 외가가 3분 거리에, 친가가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월·수·금, 화·목 등 요일별로 양가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김 씨는 "부모님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맞벌이 부부로 유지할 수 있다"며 "주변에서는 '한국에서 아이 낳은 부모가 맞이할 수 있는 모든 부조리를 마주하고 있다'는 농담들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무상보육이 왜곡을 부르고 있다. 보육문제는 보육료 지원 등 재원을 둘러싼 논란으로 빠지면 안 된다"며 "무상보육 패러다임은 돈을 배분 받아야 하는 엄마들의 갈등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기면 연령에 따라 22만~39만 4000원의 보육료가 지원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양육할 경우에는 10만~20만 원의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다. 보육료가 양육수당보다 2∼4배가량 많다. 이는 부모들에게 가정 양육이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을 안겨줬고, 자연스레 어린이집 수요 증가에 일조했다.  

 

정부는 이번 아동학대 사건의 근원을 어린이집 수요 급증으로 인한 '보육 질 저하'라고 판단한 뒤, 가정에서 양육할 경우 0∼2세에게 지급되는 양육수당 금액을 상향 조정해서라도 어린이집 수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최근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은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와의 수당 갈등만 더 조장할 것이라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보육은 재원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것이냐 아니냐'로 쟁점이 전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씨는 "보육은 공동으로, 사회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과 패러다임을 국가가 가져야 한다"며 "굉장히 이상적이라 지적할 수 있지만, 선진국은 이미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은 보육을 이미 '보편적 교육'이라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면 '이례적인 경우'라고 여긴다. 이러한 상태까지 왔는데 아직 어린이집이 민간어린이집 형태로 운영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초등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원천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지고 사후 관리를 다 한다. 어린이집 문제도 이제는 국가에 존속 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어린이집 학부모들과 여성단체들이 안신 보육정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2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어린이집 학부모들과 여성단체들이 안신 보육정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 전문가들, "공공보육시스템으로 전면 개편돼야"

 

학부모들의 입장을 들은 전문가들은 모두 보육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먼저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보육이 돈벌이가 되는 순간, 공공성은 무너진다"며 "확실한 공공보육시스템으로 전면 개편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대표는 "그간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정부는 정책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이러한 정책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겠냐"며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간과한 채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정부가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어 "무상보육은 국민들이 원하는 제도이며 박근혜 정부의 공약사항이다. 하지만 공적인프라 구축 없이, 관리감독이 미흡한 보육현실에서 재정지원만으로 보육서비스 질을 보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 대표는 "국공립어린이집에 대한 부모 선호가 높은 것은 그나마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2013년 전체 어린이집 중 겨우 5.3%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대표는 "유아를 담당하는 보육교사 비율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교사 1인이 한 아동에게 발생한 일을 해결하는 동안 그 외 아동들은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라며 "아동 대 보육교사 비율을 재조정하는 것이 안전하고 질 좋은 보육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보육정책은 아동학대 예방차원이 아니라 보육정책 전반에서 아동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부모와 보육교사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아이의 상황을 일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부모와 교사의 협력체계 형성을 위한 정부 당국의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당사자들의 절절한 얘기와 여성단체의 입장을 들었다. 행복하게 안전하게 자랄 권리, 믿고 안심하고 맡길 권리, 이것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다"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현재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생각되는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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