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은실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를 상대로 국제 소송을 진행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환경운동연합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송 계획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KBS, 연합뉴스, JTBC, 뉴스1 등 여러 언론사가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소송에 참여하는 피해자는 사망자 6명, 치료 중인 환자 5명 등 총 11명이다. 이들이 사용한 제품은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다. 피해자 모임은 현재까지 파악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 142명 중 70%가 이 제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종합 생활용품 업체로 세제와 방향제, 위생용품을 제조해 판매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21억 3000만 파운드의 이익을 낸 영국의 10대 기업이며, 200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항균 손 세정제 '데톨', 세정제 '이지오프뱅', 위산 역류 치료제 '게비스콘', 인후염 치료제 '스트렙실' 등의 브랜드가 유명하다.
피해자들은 사건이 불거진 지 4년이 지나도록 가해 기업이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고, 국내에서 이뤄지는 처벌 및 배상이 지지부진 탓에 국제 소송까지 나섰다고 설명했다. 옥시레킷벤키저가 가습기 살균제에 관해 의사를 나타낸 것은 "도의적 차원의 유감 표명"과 "인도적 차원에서 50억 원을 내겠다"고 한 것이 전부다.
2년 전 피해자들이 국내에서 가해 기업을 상대로 낸 형사소송은 아직도 검찰이 수사 중이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은 1심에서 패소했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2011년 규명한 뒤 두 차례에 걸쳐 피해자 사례를 접수해 배상에 나섰다. 하지만 국고로 피해자를 배상하는 방식은 아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국가가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해서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행정 편의를 위한 방식"이라고 말하며 "국가 예산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공동대표는 "피해자들이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소송해야 하는 현실이 부당하지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강 대표에 따르면 옥시레킷벤키저는 소송이 제기된 피해 사례에 한해서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강 대표는 "2011년에서야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그 이전에 피해를 본 사람들은 의료 기록을 수집하기도 어렵다"며 "일부 피해자만 상대하겠다는 의도"라고 옥시레킷벤키저의 태도를 비판했다.
피해자의 법적 대리인은 영국인 법정변호사 크리시넨두 무커지(로펌 도티스트리트체임버스)다. 그는 올해 5월 피해자 모임이 영국 런던에 있는 옥시레킷벤키저 본사를 항의 방문했을 때부터 피해자들을 돕고 있으며, 피해자들로부터 사건 수임료는 받지 않을 계획이다. 이 사건 외에도 석면과 수은 피해자들을 위한 소송에 참여한 적이 있다.
무커지 변호사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기업이 해로운 제품을 경고 문구 없이 안전하다고 판매하면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이라며 "금전 배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가해 기업이 처벌받았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정부와 기관이 적극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현재 피해자들은 옥시레킷벤키저에 서한을 보내 소를 제기할 의사를 전달했다. 회사가 답변을 보내오면 피해자들과 본격적으로 법적 절차에 따른 대화를 진행하게 된다. 영국 소송은 한국과 달리 대화 과정까지 소송으로 본다. 피해자 모임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소송에 동참할 피해자들을 더 모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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