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퇴근하고 집에 오니 나은공주가 뭔가를 보여줍니다. "아빠, 달팽이야. 유치원에서 줬어." 투명한 컵 안에는 작은 집달팽이 한마리가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한마리씩 분양했나 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은 공주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뭔가를 키우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된다고 해도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안 그래도 맞벌이 부부로서 바쁜데 예전에 키즈카페에서 모처럼 금붕어를 얻어 와서 부지런히 밥 주고 물도 갈아 주고 정성껏 키웠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죽어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힘차게 헤엄치던 놈이 아침에 죽어 있는 걸 보니 제 마음도 아픈데다, "금붕어 어디 갔어?"라고 물어 보는 아이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 지 난감하더군요.
그래도 의기양양하게 달팽이를 보여주는 나은공주의 모습을 보니 기왕 이렇게 된 것,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생활 속에서 자연 관찰의 장'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집달팽이를 본 것도 몇 십 년 만입니다. 어릴 적에는 비 오고 나면 화단에서 민달팽이를 한번 씩 봤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달팽이 구경하기도 어렵네요. 껍질 속에 들어가 허연 배만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삶은 고둥같아요. '저거 이쑤시개로 콕 찔러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런데 달팽이는 뭘 먹지?"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모르겠는데. 그래서 당근을 조금 썰어서 줬어." 이빨도 없는 달팽이가 무슨 수로 딱딱한 당근을 씹어 드시나. 이대로라면 사흘도 안 가서 아사할 듯.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달팽이는 촉촉한 흙을 좋아하고 배추나 양상추와 같은 부드러운 잎파리를 먹는다는군요.
가장 먼저 달팽이의 새집 만들기. 컵은 너무 좁을 것 같아서 일회용 투명 도시락 통에 옮겨 담았습니다. 그리고 집 앞 화단에서 흙을 퍼서 바닥에 깔아 주고 물을 조금 뿌려서 촉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만하면 달팽이에게는 훨씬 좋은 주거 환경으로 바뀐 듯 합니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상추가 있습니다. 여러 조각으로 쪼갠 다음 달팽이 옆에 놓았습니다. 하지만 껍질 속에서 도무지 꼼짝도 안하네요. "달팽이가 안 나와" "우리집에 처음 와서 부끄러워서 그런게 아닐까?" 그렇게 저녁 내내 얼굴 한 번 안 보여 준 놈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쭉 내민 하얀 더듬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며칠 굶은 놈마냥 와작와작 먹고 있습니다. 달팽이가 그렇게 식욕이 왕성한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아빠 이거 봐! 달팽이가 똥 쌌어" 투명한 뚜껑 한쪽에 붙은 노란 색 똥을 가리키며 나은공주가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습니다. "그럼 우리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달팽이 운동도 시키고 책도 찾아볼까?" 좋다고 합니다.
달팽이를 꺼내어 풀밭에 올려놓았습니다. 금세 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꼼짝도 안 하네요. 완전 느림보입니다. 예전에 달팽이들이 나와서 '방금 뭐가 지나갔냐? 글쎄, 너무 순식간이라서'라고 하던 TV 광고가 생각나는군요. 둘이서 한참 쪼그리고 앉아서 언제 껍질 속에서 나올까 관찰했습니다. 풀밭에서 달팽이가 꼬물꼬물하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20분 가까이 기다려도 반응이 없습니다. 결국 "아빠, 나 추워"라는 말에 포기하고 도로 통 속에 담았습니다. 달팽이도 너무 추웠나 봅니다.
아기 달팽이의 여행을 담은 동화책입니다.
달팽이 자연 관찰 책을 보여 주면서 달팽이의 생활이나 습성을 가르쳐 줄 생각으로 도서관에 들어가서 검색했는데 작은 도서관이라서 그런지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대신 달팽이가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책 읽고 점심 먹고 집에 왔는데 그 사이 또 "심심해" 타령. 스케치북에다 커다란 달팽이를 그려주고 색칠 놀이를 하게 했습니다.
"우리 달팽이한테 이름 붙이자. 뭐가 좋을까?" "음, 니모! 난 니모가 좋아" 랍니다. 요즘 니모에 한창 빠져 있는 나은공주 답습니다. 그래서 우리집 달팽이 이름은 니모가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은 이런 생활 속 공부가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강아지가 나오는 동화책 열 권을 읽어 주느니, 아이에게 한 번 강아지를 보여 주는 것이 백배 훌륭한 교육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유아기에는 오감이 최고로 발달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집에서 아이에게 책만 열심히 보여 주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뇌에 정보가 축적되어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칠판으로 이론으로만 배웠던 것이 지금 얼마나 머릿속에 남아 있을까요. 하지만 온 몸으로 배운 것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달팽이는 과연 우리집에서 앞으로 얼마나 생존할까 싶네요. 아니면 알을 무수히 낳아서 번창할지도. 달팽이가 자웅동체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생활 속 공부는 아이만 하는 것이 아니군요.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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