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심우리·김고은 기자】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지하철 안 핑크색 시트, 그 위에는 같은 핑크색 글씨로 디자인된 광고지가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평소 식품에 관한 광고는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깐깐하게 살펴보는 습관이 있던 깜시(예명) 씨는 그 광고지 속 문구를 보다가 혀를 끌끌 차고 말았다.
‘임신했는데 정수도 제대로 안 되는 정수기물 드세요? 엄마가 마신 물속의 각종 중금속과 세균, 박테리아는 탯줄과 양수, 모유를 통해 면역력 약한 아기에게 그대로 전달되니까, 아기전용 정수기 ○○을 써야죠!’
광고가 임산부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고 과장된 정보로 겁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 깜시 씨는 개인 블로그에 글을 올려 해당 회사에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글을 본 이들도 “그 제품을 안 쓰면 태아 건강에 무심한 임산부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에 한몫을 거들었다.
◇ 아기 전용 정수기의 특이한 마케팅
몇 달 전 청호나이스는 분변을 언급한 광고로 신제품을 홍보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기가 있는 가정의 주부를 타깃으로 ‘다른 회사 정수기는 당사 정수기보다 수질 오염도가 높다’고 광고해 시선을 끌었지만 결국 언론과 소비자들에게 차가운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청호나이스는 다른 광고들을 통해 ‘임신까지 한 애가!’라며 다른 정수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간접적으로 비난하거나, ‘임산부가 마신 물속의 유해물질이 태아에게 전달된다’라며 불안감을 조장하는 등 좋지 않은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앞서 블로그를 통해 이러한 마케팅 방식을 비난한 깜시 씨는 “나는 임산부 아닌 일반 소비자인데도 겁박을 주는 방식의 광고 문구를 보고 불쾌함을 느꼈다. 꼭 의사라는 모델을 앞세워서 임산부와 소비자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방식으로 광고를 해야만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수만 명 회원이 활동하는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펼쳐졌다. 엄마들은 “불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제품 안 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광고하는 건 옳지 않다”, “공포심 조장해서 물건 파는 저질 마케팅이다”,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 “광고 정지 시켜야 하지 않느냐”며 비판했다.
◇ 모성 악용한 과장 광고에 소비자 불만
정수기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정 내 정수기 보급률은 50%를 넘어선지 오래다. 관련 시장은 약 2조 원 규모로 덩치도 제법 크다. 그렇다 보니 정수기에 대한 다각도의 이의 제기나 소비자 불만이 하루 이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정수기 관련 소비자 피해는 거의 매해 증가하는 추세로, 지난해는 정수기 관련 상담이 1만 5009건 접수돼 전년 대비 70.9% 늘었다. 이물질이 들어있거나 악취가 나는 수질불량, 누수·소음 등 품질 불량, 관리 소홀에 의한 계약 해지 문의가 주를 이뤘다.
소비자원 자료에서 볼 수 있듯 주로 품질과 서비스에 대한 의문과 불만이 주로 부각됐던 것에 비해 이번 청호나이스의 광고로 인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은 이례적이다. 기업의 과장 광고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는 소비자들이지만, 하필이면 하고많은 대상 중에 아이를 태중에 품은 임신부들과 아이 건강 문제라면 이성이 흐려질 수밖에 없는 엄마들의 모성을 악용했다는 점이 제품 자체는 물론 브랜드에 대한 불신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 “광고 중단하라”, “오해일 뿐이다” 소비자-기업 간 주장 팽팽히 맞서
이러한 흐름 가운데 평소 청호나이스를 비롯한 역삼투압 정수기 제조, 판매 업체에 정수 방식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 온 역삼투압정수기추방 시민운동엽합은 이번 건과 관련해 ‘청호나이스는 과장 광고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1인 시위 등 활동으로 기업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개인 홈페이지 등으로 내용을 퍼 나르는 등 활동에 지지, 동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손상대 역삼투압정수기 추방 시민운동연합 정책위원장은 “역삼투압정수기에서 나온 물을 임산부, 태아가 먹는 것은 살인 행위와 비슷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과장 광고에 현혹돼 아무것도 모르고 제품을 선택하는 주부들이 없기를 바라고, 이러한 광고를 통해 생산되는 제품이 사라지는 것을 목표로 활동 중”이라고 밝혔다.
청호나이스는 이번 논란과 관련한 일련의 지적에 대해 “의도와 다른 오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윤경문 청호나이스 과장은 광고 속에 언급된 말들에 대해 “광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통과가 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할 말은 없다”며 “다만 임산부들은 아이가 먹을 것에 대해 까다롭게 생각하고 신경 쓴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역삼투압정수기 추방 시민운동연합의 주장과 행보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주장과 행보이기 때문에 대적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제품과 기술력의 우수성 증진을 추구하며 운영을 해왔고, 아기 전용 정수기는 우리 제품 중 유일하게 147개 요소를 거를 수 있는 기술로 제작했다는 걸 잘 알리기 위해 해당 내용을 넣어 광고를 제작한 것이다. 업체마다 자기네 제품 제일 좋다고 광고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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