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솔이 엄마' 김보영 아나운서의 워킹맘 다이어리
다시 방학입니다. 방학이 두려운 건 모든 엄마들이 같겠지만,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두려움의 강도가 조금 더합니다. 방학이되면 학교나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들이 아침부터 갈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솔이는 작년 까지 돌봄 교실이 있어 그나마 안심이었지만 올해에는 학교 사정(보수 공사)으로 돌봄 교실도 문을 닫았습니다. 궁여지책으로 학원 스케줄을 짰지만 긴 하루를 채우기는 역부족입니다. 결국 오전에는 친정엄마의 손을 빌리고, 오후에는 렌탈북센터 (책을 빌려주고, 읽을 수 있는 사설 도서관), 미술 학원, 영어 학원, 바이올린 학원으로 시간을 메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것은 역시 동네 엄마들이었습니다. 솔이 친구 엄마 한 분이 솔이와 직장맘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키즈까페에 데리고 가주겠노라 나섰습니다. 솔이가 신이 난 건 당연하지요. 며칠 전부터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저도 이번만큼은 다른 일은 작파하고 오전 근무를 마치자마자 합류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다행히 점심은 함께 먹을 수 있었지요. 무슨 바람인지,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근처 작은 분식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였습니다. 아이들 다섯이 수제비 두 그릇에 꼬마김밥 5인분을 눈 깜짝할 사이 해치우더군요. 신나게 놀고 나니 밥맛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분주하게 식사를 마친 뒤,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근처 놀이터로 2차 장소를 정했습니다. 33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잘도 뛰어놀았습니다. 요즘 한참 탈피 중인 매미 껍질을 모아야한다며, 아이들마다 한 주먹씩 선퇴를 주워 나르기도 하고요. 솔이는 개미가 제 다리를 타고 오르거나, 비둘기가 모여 노는 모습 등 별 것 아닌 풍경에도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댔습니다.
신나게 노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집에서는 큰 아이라고 엄하게 대하기 일쑤였는데, 밖에서 보니 그저 노는 게 마냥 좋은, 영락없는 아홉 살 꼬맹이더군요. 일한다고 바쁜 엄마를 만나 실컷 놀아야 할 나이에 각종 학원을 돌며 숙제, 공부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저는 평소 아이들보다도 제 자신이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도 자연히 본받고 따를 것이라고, 솔선수범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요. 어이없게도, 세상에 적응하고 개척하는 것은 아이 스스로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토록 크나큰 부모의 희생을 발판으로 커왔으면서, 지금도 친정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무슨 제 잘난 생각이었을까요.
이번 방학만큼은 제 일 보다,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보려 합니다. 행복한 아이 얼굴을 보는 게, 일로서 성취하는 기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모범이 되는 것은 유효합니다.
다만, 아이들의 행복을 틈틈이 살피며 조절해나가야겠지요. 아이의 행복과 일의 성취, 모두를 이루기는 쉽지 않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저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왜 나만 힘이 들까, 억울해하고 피곤한 마음 대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마음속 운동화 끈을 조여 봅니다.
*칼럼니스트 김보영은 두 딸 솔이와 진이의 엄마이자 국회방송 아나운서로 <투데이 의정뉴스>, <TV, 도서관에 가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육아서 <대한민국 대표엄마 11인의 자녀교육법>을 내고 워킹맘을 위한 강연 및 기고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워킹맘 다이어리에 하고 싶은 이야기나 조언,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메일(bbopd@naver.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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