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서로를 탓해서 될 게 아닌 일
육아는 서로를 탓해서 될 게 아닌 일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4.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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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너무 아픈 말 “나 때문에”

1.87킬로그램. 나는 임신 40주를 채우고도 심각한 저체중아를 출산했다. 아이는 임신 중기부터 성장이 더뎠는데 의사도 뾰족한 처방을 내리지 못했다. 출산예정일을 두어 달 앞두고 결국 대학병원으로 전원했고 나는 모든 게 내 탓 같아 몹시 괴로웠다. 그게 쓸데없는 죄책감이라고 일깨워준 건 대학병원 의사였다. 진료 첫날, 의사는 아이의 성장 지연은 엄마와 관계없다며 선을 그었다. 의학적 근거에 따라 의사로서 소견을 밝힌 것이었대도 그 덕분에 나는 마음의 짐을 한결 덜 수 있었다. 의사로부터 뜻밖의 위로를 받고 그제야 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사실 누구도 드러내서 나를 탓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마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를 품은 순간부터 아이의 온 문제는 엄마와 결부된다. 출산 이후에는 엄마에게 육아의 많은 부분을 전가하는 분위기가 더 공고해진다. 이만해도 온당치 않은데 엄마 스스로 자신을 옥죄는 경우도 많다. 나도 그런 엄마였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엄마가 스스로를 자책하며 불안해하는 건 아이 키우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다. 초보 엄마였던 그 시절 나에게 진짜 필요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림책 「나 때문에」에서 두렵고 불안했던 그때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가 작은 게 나 때문일까 전전긍긍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탓이 아니길 바랐다. 어느 누가 이토록 심각한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되고 싶겠는가. 더더구나 자식 문제인데… 이 책은 “나 때문에”라는 고양이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나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나 때문이 아니길 바라는 고양이의 간절함이 슬픈 눈빛에 담겨 있다. 짐작대로 책장을 몇 장만 넘겨보면 고양이 때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읽고 나면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가정불화의 원인을 자식들에게 떠넘기는 엄마아빠의 민낯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림책 '나 때문에'의 한 페이지_부모가 다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희숙
그림책 '나 때문에'의 한 페이지_부모가 다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희숙

나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젠가 아이에게서 “나 때문에 그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건네며 엄마 눈치를 살피던 아이 눈빛이 기억난다. 한창 말 배울 때라 아이는 문득문득 엄마를 놀라게 하는 말을 했지만 그때만큼 당황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곧바로 너 때문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누구 때문이라고 탓하는 말은 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덕분에’라는 좋은 뜻을 가진 말이 있으니 이 말을 많이 쓰자고 이야기했다. 누구를 탓하는 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상처만 키운다는 것을 아이가 알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엄마의 바람과는 관계없이 아이는 지금도 자기 때문이냐고 물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바로잡아주지만 누군가를 탓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건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나도 출산 직전까지는 아이가 작다는 데 자책감을 많이 덜어낸 상태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가 성장 지연 외에는 건강상 문제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출산 직후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보자 생각이 또 바뀌었다. 아기는 막연히 머릿속에서 그렸던 모습보다 훨씬 작고 연약했다. 아기를 병원에 남겨둔 채 조리원에 입소했지만 하루를 못 넘기고 뛰쳐나와 아이가 퇴원할 때까지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엄마는 죄인이었으므로.

작게 태어난 너_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엄마는 죄인이었다. ⓒ한희숙
작게 태어난 너_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엄마는 죄인이었다. ⓒ한희숙

그때부터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이때까지 육아 문제를 놓고 스스로를 탓했다가 마음을 돌려먹었다가를 반복한다. 어쩌면 육아는 이런 과정을 도돌이표처럼 이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날에는 전부 내 탓이다 싶지만 또 어느 날에는 세상 바쁜 남편 때문인 것 같다. 말 안 듣는 여섯 살 아이가 얄미운 날도 있다. 남편과 육아관 차이로 남편이 날을 세워 나를 탓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서로에게 맺힌 마음이 풀리면 진실로 가족이 서로를 탓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낀다. 특히 부모가 아이를 탓하는 모습만큼 볼썽사나운 건 없다. 「나 때문에」 전반부에는 고양이가 집에서 쫓겨나는 이유를 추적해 보여주는데 가족들 표정이 몹시 어둡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서 울음을 터뜨리고 잔뜩 주눅 들어 있다. 부모는 서로를 탓하며 다투다 아이들까지 들먹거린다. 그 모습을 보자니 정신이 번쩍 든다.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아이들이 왜 그토록 부모를 불렀는지 밝혀진다. 하나하나 되짚어 나가다 마지막 이유에 이르면 또 한 번 미안해진다. 아이들은 활짝 터진 꽃망울을 보고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자 애타게 엄마아빠를 불렀던 것이다. 아이들 마음이 이토록 곱다. 육아에 힘내야 하는 이유 하나를 또 찾은 것 같다.

"아! 이렇게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이런 날에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니? 이런 날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불쌍해"

'긍정왕' 빨강머리 앤이 지금 행복할 이유를 발견하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온화한 날씨 속에 봄꽃이 터지는 좋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육아하다가 지쳤을 때 서로를 탓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고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좋은 날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행복할 이유는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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