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질환, 귀하지도 딱하지도 않은...
희소질환, 귀하지도 딱하지도 않은...
  • 기고 = 서이슬
  • 승인 2018.05.04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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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아이는 누가 길러요’ 서이슬 작가

베이비뉴스는 희귀난치성 질환 아동과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근본적인 지원책을 고민하는 기획을 지난달 세차례에 걸쳐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베이비뉴스가 미처 다루지 못한 희귀난치성 질환을 향한 사회적 인식과 차별적 시선 등 돌아보는 내용의 글을 「아이는 누가 길러요」의 저자인 서이슬 작가가 보내주셨습니다. - 편집자 말

매년 2월 28일 '세계 희소질환의 날'을 알리기 위해 제작된 공식 로고. ⓒRarediseaseday.org
매년 2월 28일 '세계 희소질환의 날'을 알리기 위해 제작된 공식 로고. ⓒRarediseaseday.org

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희소질환 진단을 받았다.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 10만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나는 희소 혈관 질환이다. 몸 속 혈관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혈관이 필요 이상으로 생겨나면서 몸 곳곳에 붉은 얼룩을 만들어내고, 한쪽 팔이나 다리가 다른 쪽에 비해 커지거나 길어지며, 푸른 정맥이 울퉁불퉁 돌출하면서 통증을 일으킨다. 한국 내 환자수가 400~5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3년 전 직접 만든 환자 모임에 지금까지 가입한 환자·보호자 수는 180명 남짓이다. 

국내 환자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 희소질환의 경우, 병원에서도 국가에서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역의 소규모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의학사전을 뒤진 끝에야 겨우 질환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읊어주는 정도고, 대형 유명 병원에서도 기초 정보 이상의 무언가를 제공해주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환자 당사자와 가족이 외국 자료를 가져와 들이밀고, 국내에서는 왜 이런 약, 이런 시술을 하지 않느냐 요구하고 눈치 보며 사정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희소난치성 질환 의료비에 대해 ‘산정특례’를 적용해 의료비의 일부를 보장해주고 있긴 하지만 병원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비보험 처리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때도 많다. 

병원이나 국가를 상대로 요구하고, 싸워야 하는 것도 힘에 부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희소질환에 대한 사회의 인식, 사람들의 시선이다. 희소질환 중에는 완치법이 없어 ‘고칠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원인과 치료법이 뚜렷한 질병이면 약물과 시술로 뚝딱 고치거나 낫게 할 수 있을 테지만, 희소질환은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지 완치할 수 있는 병이 아닌 때가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한다. ‘선천성’ 희소질환의 경우 ‘기형아’로 인식되기 십상이어서, 그에 따른 차별적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도 많다. 희소질환 아이를 둔 엄마에게 ‘태교’나 ‘노산’ 운운하며 엄마 탓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전전하는, 아이 곁에 붙어 노심초사 하는 엄마에게 ‘독하다’ 거나 ‘딱하긴 하지만, 애를 그렇게 낳아놨으면 엄마가 책임지는 수밖에 더 있겠어?’ 하는 식의 시선이 오가기도 한다.    

이런 인식은 ‘희귀병’ 혹은 ‘희귀질환’이라는 어휘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언론은 물론, 관련 정부부처, 공공기관, 당사자들마저도 ‘희귀병’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런 식의 조어법은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모순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발병 확률이 적어 환자 수가 적다는 의미로 쓰려면 다른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은 ‘희소질환’이라는 명칭을 쓰면 된다. 여기에 ‘귀’하다는 말을 굳이 넣어 ‘희귀병’이라고 쓰면, 당사자로서는 때로 거센 반감이 든다. 병원도, 국가도, 사회도, 어디에서도 우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상황에서 ‘희귀병’을 가진 아이와 부모는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 취급을 받기 일쑤다. 선천성 질환으로 인한 생활의 불편과 경제적 어려움, 외모의 변형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혀를 차며 딱하게 보고, 손가락질하며 ‘구경’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언어 습관과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희소질환은 그 자체로 귀한 것도, 딱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우연이 빚어낸 다른 삶의 모습일 뿐이다. 중요한 건, 질환 여부와 상관 없이 모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태도,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사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국가와 사회가 함께 마련해 나가는 것, 그것이다. 

*서이슬 작가는 미국 중부 작은 도시에서 공부하는 남편과 희소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이와 살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에 연재한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KT)’를 묶어 책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펴내기도 했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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