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다룬 그림책, 어떻게 읽어줘야 할까
일본군 '위안부' 다룬 그림책, 어떻게 읽어줘야 할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5.29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권윤덕 쓰고 그린 '꽃할머니'

지난 4월 초 그림책 「만희네 집」으로 잘 알려진 권윤덕 작가를 만났다. 일주일에 한번 듣는 「그림책과 나의 삶」 수업에서 마련한 그림책 작가 특강에서였다. 권 작가가 그의 작품 가운데 "그림책을 하나 읽을 건데, 뭘 읽어드릴까요?" 물었다. 고요한 강의실의 적막감을 깨트린 건 박 할머니였다.

"「꽃할머니」요."

"지금 오전 10시를 막 넘긴 아침인데... 이렇게 무거운 책을 읽어도 될까요?"

박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저는 그 책을 몰랐어요. 어느날 자원봉사하는 도서관에서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그 그림책을 가져오면서 읽어달라 그래요. 처음엔 그저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 이야긴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였죠. 당황하면서도 안 읽을 수가 없어 계속 읽었더니... 아이들이 그래요. '선생님 그만 읽을래요, 슬퍼요'라고. 제가 그런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 몰라서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 왜 꽃할머니 아랫도리가 피로 물들어요?'라고 묻는데..."

박 할머니는 끝내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권 작가 말대로 강의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꽃할머니. ⓒ사계절
꽃할머니. ⓒ사계절

책은 꽃누르미를 하는 꽃할머니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며 작가는 미리 알린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하신 할머니들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희생된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1940년 13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쓰고 그린 「꽃할머니」는 언니와 함께 나물을 캐다가 이유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가 전쟁의 한 복판에서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살았던 심달연 할머니. 50년이 지나 마음속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으면서 심달연 할머니는 말한다.

"지금 세상에는 그런 일 없어야지. 나 같은 사람 다시는 없어야지. 내 잘못도 아닌데, 일생을 다 잃어버리고..."

권 작가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하듯 책을 읽어 나갔다. 본인이 짓고 그린 그림책이지만 낭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는 목소리였다. 작가만이 아니었다. 우리도 그랬다. 낭독이 끝나고 불을 끈 채로 강의를 이어 나갈 정도였다. 너무 울어서. 꽃할머니의 실제 주인공 심달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더 그랬다. 어른들이 읽기도 버거운 이런 그림책을 언제 어떻게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할까, 읽어줘도 될까? 강의실 안 사람들은 궁금했다. 권 작가가 질문에 답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하셨어요. 딸이 그 책 보지 말라고 한다고. 엄마를 울게 하는 책이라면서. 그런데 저는 그런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어렸을 적에 '엄마가 보면 울던 책'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더라도 한 5, 6학년 정도 되어 다시 봤을 때 '아 엄마가 이래서 울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요? 무조건 감추기보다는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이런 책은 아이 혼자 읽게 하는 것보다는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여성의 몸이나, 성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도 있겠죠."

아, 그러면 되는 거였구나. 사실 나도 이런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줘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배경 지식이 없는 아이들에게, 그런 걸 일찍부터 알려주는 게 뭔가 어색하고 어려웠다.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나 국가 폭력에 관한 이야기, 광주 5.18, 제주 4.3, 성폭력에 관한 그림책 등을 아이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게 되는 이유였다.

때가 되면, 고학년이 되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보게 하려는 마음으로.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였다. 그림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니까. 그때그때 다시 읽고 그 느낌을 떠올리면 되는 거였다. 권 작가에게 중요한 팁을 얻은 것 같았다. <꽃할머니> 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었다.

그림책 '꽃할머니' 속 이미지. ⓒ사계절
그림책 '꽃할머니' 속 이미지. ⓒ사계절

이 책을 처음 제안한 건 일본 그림책 작가들이었다고 한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한중일 평화프로젝트 '평화 그림책 시리즈' 작업 중 하나였는데 책을 내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그림책을 내겠다고 한 일본의 한 출판사가 일본 우익들의 반대로 출판을 거부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렇다고 일본에서의 상황이 나아지길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기다릴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2005년 이후로도 몇 분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하늘로 가셨고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는 2018년 5월 10일 현재 28명뿐이다. 결국 「꽃할머니」는 2010년 6월 한국에서 먼저 그리고 이어 중국에서 출간됐다. 이 그림책의 실제 주인공 심달연 할머니도 그해 12월 별세했다.

그리고 8년 만인 오는 2018년 5월 일본에서 「하나바바」(일본 아이들이 할머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라고)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기념식을 열었다는 소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알고 보니 이 그림책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더 피하고 싶지는 않다. 책에서 권윤덕 작가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통에 공감해 가는 과정은 평화에 대한 사랑을 길러가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어른이 함께 읽으면서, 그 감동이 아이들에게 좀 더 자연스레 전달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