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의 이야기입니다.
둘째 빈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부모 참여수업이 열린다고 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내는 한 달 전에 약속된 여행이 있네요. 지인들과 강릉을 가기로 한 것인데요. 비가 오지만 아내의 계획은 연기되지 않습니다. 물론 빈이의 참여수업도 연기되지 않고요. 주말 아침이면 “유치원 안 가는 날이지? 그럼 놀까!” 하는 빈이도 오늘은 포기한 듯 “아빠, 오늘 유치원 언제 가?”라고 묻습니다. 아빠를 닮은 녀석은 여전히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립니다. 친구의 부모를 보면 인사하는 대신 얼음이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이 순간에는 활기차게 등원을 준비합니다.
같이 우산을 쓰고 길을 걷는 동안 빈이는 아빠를 위해 종알종알 유치원 소개를 합니다. 신발장의 위치와 거기에 붙은 친구들의 이름과 사진을, 교실에 가지런히 정리된 책과 장난감의 위치는 물론 쓰임새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빈이의 설명을 듣고 눈으로 확인하니, 이내 선생님이 오셔서 곧 있을 참여수업에 관해 설명해줍니다. 담임선생님이 수업하는 것은 2학기에 이뤄지고, 이번에는 노래와 율동으로 놀이하는 코앤코뮤직과 영어 수업을 한다고 말이죠.
빈이는 노래와 율동 대신 침묵과 무반응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더디게 흘러 결국 1시간 30분이란 약속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참여수업에 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고요?
우선, 아이의 일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끔 놀이터에서 만난다는 친구 서진이의 얼굴도 보고, 종종 빈이가 간호사가 되고 싶을 때 환자가 되어준다는 뽀로로 인형과 청진기로 함께 병원놀이도 했습니다. 또 집에서 웅얼웅얼하다가 “아이 러 뷰~” 하던 노래가 영어 동요인 「스키다마링크(Skidamarink)」라는 사실도 알게 됐죠.
더욱이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확 줄었습니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에게 차분히 설명하는 모습에서, 소극적인 아이를 다정히 기다리는 모습에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마음도 갖게 됐답니다.
둘째, 집에서 와는 다른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수업시간 동안 빈이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종알종알 부르던 노래인데도 말이죠. 참여수업에 가는 부모는 대개 선생님의 질문에 우리 아이가 손을 들고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대답은커녕 삐죽이는 모습이라면, 심지어 부모의 무릎 위에 오르려는 모습마저 보이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다행히 예전처럼 낯선 어른의 출현에 뒤로 숨는 일은 없지만, 자신 있게 일어나 말하기란 여전히 힘든 모양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참여수업에 가는 저에게 아내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보고만 오라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수업시간 동안 마음을 비워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내의 조언 덕에 부모 앞에서 꺼내놓지 않았던 아이의 속마음을 보게 되었답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핍니다.
'아내가 외출하면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또 무엇을 하며 지낼까?'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은 지나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비록 거실에 과자 부스러기와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더라도, 또 설거지해야 하는 식기가 주방에 쌓여있더라도 아내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고 있네요. 얼마 만에 보는 아내의 미소일까요?
모처럼 빈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낸 즐거움과 어색함을 쏟아놓는 남편, 엄마 아닌 아빠와 함께여서 부족하지만 나름 괜찮았던 일들을 재잘거리는 빈이, 유치원에 가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참여수업을 재연하는 빈이와 아빠의 모습을 본 첫째 은이의 감상까지 이어지자 아내는 또 한 번 웃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탁 트인 바다와 시원한 풀장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은 아니지만, 2시간이 되지 않는 참여수업은 제가 몰랐던 아이의 일상으로 퐁당 들어가는 매력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잊지 못할 추억도 생겼고요.
아주대병원 조선미 교수는 저서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2015, 북하우스)에서 “마음 읽기는 사람과 사람 간에 진정한 소통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 아이의 성장을 돕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마음 읽기는 일상에서 꾸준히 이어져야 하겠지만, 저처럼 부족한 아빠에겐 참여수업에 함께 하는 것이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아빠들에겐 2학기에는 반드시 참여하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참, 이번 수업엔 11명의 아이가 참여했는데요. 부부가 함께 참여한 3쌍을 제외하곤 엄마가 4명, 아빠가 4명 참석했습니다. 이를 두고 양육에서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동등해졌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빠의 참여가 많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