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신고도 못한 어느 아이 이야기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신고도 못한 어느 아이 이야기
  • 최대성 기자
  • 승인 2019.03.04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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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난민 가족의 삶-②

【베이비뉴스 최대성 기자】

난민 엄마 살람이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마친 아들 제르마야(4)에게 뽀보를 하고 있다. 살람은 첫째 제르마야(4)와 둘째 제니퍼(2) 그리고 곧 출생 예정인 셋째 아이를 둔 다둥이 엄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난민 엄마 살람이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마친 아들 제르마야에게 뽀보를 하고 있다. 살람은 첫째 제르마야(4)와 둘째 제니퍼(2) 그리고 곧 출생 예정인 셋째 아이를 둔 다둥이 엄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주도에 561명의 예멘 난민이 입국한 지난해, 대한민국은 '혐오'로 들끓었습니다. 인도주의적 난민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정치권의 누군가는 어설픈 온정주의라며 의미를 깎아내렸고, 때맞춰 터진 제주 살인사건에 많은 누리꾼들은 난민을 범인으로 몰아갔습니다. 한 난민 활동가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본 것 같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당시, 베이비뉴스는 난민 아동의 인권에 대해 기획 보도를 했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아동 또는 그의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하지 않고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이 명시돼 있지만, 국내 난민 아동들은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습니다.

이유 없는 난민 혐오와 보장받지 못한 난민 아동의 인권은 결국, 우리가 난민에 대해 잘 몰라서 벌어진 일입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난민 가족의 삶을 사진으로 소개하려 합니다. 가감 없는 이들의 일상을 통해 난민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길 기대합니다.

엄마의 기상송에 제리가 드디어 일어났다. 제리는 제르마야의 애칭.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의 기상송에 제리가 드디어 일어났다. 제리는 제르마야의 애칭.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리 제리 예스 파파, 잇 이즈 슈거 노 파파!"

오전 8시경. 아직 꿈속을 헤매는 아들 제르마야를 안고 엄마 살람이 노래를 부른다. 아이에게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하는 엄마 살람의 노하우. 텔레비전에 나온 동요에 아들 이름을 넣어 개사했단다. 오늘도 엄마의 노래가 통했는지 가까스로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비몽사몽인 채 거실을 서성이는 첫째 제르마야.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비몽사몽인 채 거실을 서성이는 첫째 제르마야.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잠이 가득한 얼굴로 거실을 서성이는 이 아이는 지난 2016년 나이지리아인 아빠와 에티오피아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제르마야다.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한국에서 출생했지만, 아빠 엄마가 난민 신청자란 이유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무국적 아동이 됐다.

제르마야가 엄마에게 텔레비전을 켜 달라고 조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르마야가 엄마에게 텔레비전을 켜 달라고 조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분유를 타는 엄마의 손놀림이 바쁘다. 어느새 뚝딱 만들어진 분유를 아들의 손에 쥐여준 엄마는 곧이어 아이의 외출복을 챙겼다. 그사이 소파에서 리모컨을 발견한 아들이 텔레비전을 틀어달라고 보챈다. "아침부터 텔레비전이라니!",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단호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국내 거주하는 18세 미만 난민아동들 중에서 난민신청자, 인도적 체류자, 난민불허판정 후 체류 기간 초과자를 대상으로 양육비, 보육비, 교육비, 의료비를 연령별 차등 지원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세이브더칠드런은 국내 거주하는 18세 미만 난민아동들 중에서 난민신청자, 인도적 체류자, 난민불허판정 후 체류 기간 초과자를 대상으로 양육비, 보육비, 교육비, 의료비를 연령별 차등 지원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9시에 어린이집 버스가 아이를 데리러 와요." 이른 아침부터 엄마가 서둘렀던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의 등원 때문이었다. 출생신고를 못한 제르마야는 서류상 국적을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 정부로부터 보육비, 의료비 등을 지원받지 못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교육 받을 아동의 권리가 박탈된 것이다. 다행히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2010년부터 국내 거주하는 미취학 난민 아동을 대상으로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제르마야는 난민아동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게 된 운이 좋은 아이 중 한 명이다. 

엄마가 욕실에서 제르마야를 씻기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가 욕실에서 제르마야를 씻기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어린이집 가방까지 챙긴 엄마 살람이 아이의 손을 잡고 욕실로 향했다. 제르마야는 씻기 싫어하는 여느 아이들과 달랐다. 순식간에 엄마에게 씻김을 당한(?) 아이는 한층 말끔해진 얼굴로 욕실을 나왔다. 큰 타올을 두르고 선 제르마야는 아직도 비몽사몽. 그래도 몇 번의 만남에 익숙해진 탓인지 이상한 아저씨의 커다란 카메라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용기를 낸 기자가 "안녕? 제르마야" 하고 인사를 건넸지만, 녀석은 여전히 시크하게 돌아섰다. 

샤워 후 말끔해진 제르마야. 수건을 두른 채 카메라를 외면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샤워 후 말끔해진 제르마야. 수건을 두른 채 카메라를 외면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들 등원시키기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마는 베이비 오일을 정성껏 발라준 후 미리 준비한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시크한 아이인 줄 알았던 제르마야가 엄마 품에서는 장난을 치며 어리광을 피웠다. 노련한 엄마는 바둥거리는 아들을 달래가며 신발까지 신겼다.

엄마가 옷을 입히는 중에도 제르마야는 졸린 지 눈을 비볐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가 옷을 입히는 중에도 제르마야는 졸린 지 눈을 비볐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르마야의 신발을 신겨주는 엄마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르마야의 신발을 신겨주는 엄마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어느새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청 패션으로 몰라보게 차려입은 제르마야가 한숨을 내쉬는 엄마를 향해 사랑스럽게 웃었다. 아들의 깜짝 미소에 금세 행복해진 엄마 살람. 그러나 걱정마저 없어지진 않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제르마야가 엄마를 보며 사랑스럽게 웃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제르마야가 엄마를 보며 사랑스럽게 웃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르마야는 한 살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녔지만, 아직 엄마 아빠도 말하지 못해요." 살람은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들을 바라보며 속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말은 물론이고 영어로도 말하지 않아요. 예전에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말이 늦을 수 있다고 기다리라고만 했어요"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창연 99서울소아청소년과 대표원장은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우리 아이 동네 주치의' 칼럼에서 "3살이 다 됐는데 아이가 하는 말을 반도 못 알아듣는다면 청력결손, 중추신경 이상, 구강 구개 성대의 이상 구강 근육운동의 부조화 등의 의료적인 문제는 없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이창연 99서울소아청소년과 대표원장은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우리 아이 동네 주치의' 칼럼에서 "3살이 다 됐는데 아이가 하는 말을 반도 못 알아듣는다면 청력결손, 중추신경 이상, 구강 구개 성대의 이상 구강 근육운동의 부조화 등의 의료적인 문제는 없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올해 4살이 됐지만, 기본적인 단어조차 말하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였다. 대체 무엇이 제르마야의 입을 닫게 했을까? 살람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이를 잘 보살피지 못한 자신을 더 탓했다. "내가 한국말을 못 해서 그래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한국말을 배워와도 내가 한국말을 못 하니까..." 

아빠에게 안겨 행복한 제르마야.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빠에게 안겨 행복한 제르마야.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사실 아빠는 물론 엄마 살람도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아빠 무나침소는 지금의 가정이 생긴 후 생계를 책임지느라 공부를 놓았고, 엄마는 오래전 동네 교회에서 한국어 수업을 한두 달 받은 게 전부다. 엄마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한국말을 배우고 싶었지만, 난민 신청자가 이용할 수 있는 한국어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난민 아동도 마찬가지. 지역아동센터나 방과 후 교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이 있으나 등록 외국인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등록되지 못한' 제르마야 같은 무국적자 아이들에겐 소용없는 시설이다.

잠들기 전,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잠들기 전,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의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병원 상담을 권하자 살람은 "데려가고 싶지만,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어요"라고 말했다. 가끔 생기는 남편의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아이의 언어장애까지 살피는 일은 이들 부부에게 아주 버거운 일이다.

엄마가 노란색 패딩을 입혀주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가 노란색 패딩을 입혀주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어린이집 등원복 코디의 마지막은 노란색 패딩. 엄마가 패딩을 입히기 위해 무릎을 꿇은 순간, 제르마야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조그만 두 손으로 엄마의 마음을 위로했다.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사랑이 담뿍 담긴 뽀뽀를 선물했다.

이마를 맞댄 엄마와 아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이마를 맞댄 엄마와 아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서둘렀던 탓인지 10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엄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제르마야가 아침부터 소원하던 텔레비전을 켰다. 영어 알파벳이 나오는 프로그램. 엄마는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엄마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엄마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르마야가 어린이집 버스에 오른 후 한국에서 아이를 키누는 난민 부모로서 가장 큰 걱정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힘주어 말했다.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교육을 받아야 미래가 있잖아요. 그래야 삶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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