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엄마 아니야"라던 어떤 엄마를 떠올리며
"나는 좋은 엄마 아니야"라던 어떤 엄마를 떠올리며
  • 칼럼니스트 김경옥
  • 승인 2019.06.27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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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식물도 좋은 말 들어야 잘 자라는데, 하물며 아이는

지난주에 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전주는 재작년에 다녀온 적 있는데 그때 한옥 대청마루에서 마당에 핀 꽃을 구경하던 황홀함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도 역시 전주였다. 

한옥 숙소에 자리를 잡고 짐을 푸는데 옆방이 소란스러웠다. 벽을 넘어 들은 첫소리는 "야!"였다.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소리였다. 이후에도 아이 엄마는 계속 “야!”라고 아이를 불렀다.

다섯 살과 여섯 살 자매가 그 방에서 나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마당에 심은 감나무를 올려다보며 좋아했다. 이제 막 영글었다가 힘없이 떨어진 초록색 감을 던지며 웃었다. ‘쟤들 참 예쁘게도 생겼네, 우리 아이랑도 놀아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한동안 아이들이 뛰노는 걸 바라봤다.

그날 저녁이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돌멩이를 골라 줍고 있었다. “언니, 이거 예쁘지.” 동생이 말했다. “이게 더 예쁜데?” 언니가 답했다. 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기어이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여기 예쁜 돌 진짜 많다~”라고 말했다. 아이 둘은 ‘뭐지?’ 하는 눈빛으로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무안했지만 이런 순간을 견뎌야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다.

별똥별을 찾는다던 아이에게 ‘별똥별 보면 나에게도 얘기해달라’고 계속 친한 척하니까 새초롬하던 아이들이 내 옆으로 슬슬 다가오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뱅뱅 돌다가도 내 앞으로 와서 씨익 웃고 지나가고, 예쁜 돌을 주우면 손을 들어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때였다. 아이들의 엄마가 날카로운 소리로 말했다.

“야! 거기서 깝죽대지 말고 이리 와!”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김경옥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김경옥

내 귀를 의심했다. '깝죽?' 누구라도 들으면 기분 나쁠 그 표현을 심지어 아이들에게 쓰고 있었다. 나 때문에 괜히 아이들이 혼난 것 같아 미안하고 씁쓸해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엄마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 떠들어댔다. 놀라울 일도 아니라는 듯. 그 후에도 아이들 엄마의 가시 돋친 말은 계속됐다.

“야! 빨리 들어가 자!”

부모는 한옥 마당 테이블에 맥주캔을 따놓고 미주알고주알 대화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알아서 들어가 자라고. 아이 옆에 누워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만이라도 자는 척해주는 그런 과정도 모두 생략됐다. 아이의 놀이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깔끔하게 놀이를 끝낼 수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그러다 애들 엄마가 말했다.

“야! 나는 다른 엄마들처럼 좋은 엄마가 아니야. 너희도 좋은 딸 아니고.”

옆에 있던 아이 아빠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해진 차에 아빠가 이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내가 너네 때문에 암 걸리겠다!”

그 말을 들은 다섯 살 막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화나요. 아빠도 화나요. 나도 화나요. 우리는 다 화나요.”

그리고 막내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마당을 통통 뛰어다녔다. 아주아주 씁쓸하고 안타까운 밤이었다.

나중에 숙소 사장님께 그 가족의 얘기를 듣게 됐는데, 엄마가 사장님께 하소연하듯 그랬단다.

“저는 애들이 싫어요. 아이들 돌보는 것도 싫고 힘들고 귀찮아요.”

그제야 중간중간 방에 들어가 누워있던 그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마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키우는 방법도 다르다. 내 방식과 같지 않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분을 붙들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가 이 다음에 크면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엄마 아빠가 나를 지지해주는 그 힘으로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텐데, 괜찮겠냐고.

화초가 좋아지고 화분 키우는 것에 관심이 가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연둣빛 싹이 용케도 나오는 걸 보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식물도 좋은 말을 들어야 잘 자라더라. 그런데 사람은 오죽할까. 게다가 그게 아이들이라면.

아이들이 한참 놀다가 엄마를 쳐다봤는데 엄마가 인상만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얼마나 매 순간 위축될까. 사회인이 되어서도 누군가의 한 마디 질책에 ‘내가 뭐 늘 그렇지… 누가 날 좋아해 주겠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괴로움에 빠지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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