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78년 9월 19일 잠실소방서에서 발견됐습니다
저는 1978년 9월 19일 잠실소방서에서 발견됐습니다
  • 기고=줄리아 모피트
  • 승인 2019.07.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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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미국으로 입양된 줄리아 모피트(Julia Moffitt, 강주현)

41년 전 미국으로 입양된 줄리아 모피트(한국 이름 강주현) 씨는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몇 년 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친가족 찾기에 지쳐가는 자신의 의지를 다지며 직접 쓴 글을 전해왔습니다. - 편집자 말 

ⓒ줄리아 모피트 씨의 어린 시절 모습과 현재 모습. ⓒ325Kamra(한인혼혈입양인연합) 제공
ⓒ줄리아 모피트 씨의 어린 시절 모습과 현재 모습. ⓒ325Kamra(한인혼혈입양인연합) 제공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줄리아 모피트(Julia Moffitt)입니다. 저는 지금 요가 강사로 일하면서 7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정보가 부족한 긴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보내준 신상정보가 매년 달라져 정보를 직접 수집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저와 관련된 시설에 끈질기게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저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제 정보는 1978년 9월 19일 새벽 5시 45분경에 서울 잠실소방서 출입구 계단에서 한 경찰관이 저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18일 저는 미국으로 입양됐습니다.

이 정보는 2년 전에 저를 발견한 경찰관을 찾았을 때 알게 됐습니다. 그는 저에게 매우 친절했지만 그해에만 버려진 아이가 33명이나 됐기 때문에 저를 특별히 기억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위생과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생후 9개월로 추정된다고 기록돼 있었습니다. 제 생일은 1978년 1월 16일로 돼 있었고, 아무런 정보 없이 버려져 사회복지사가 자기 성 씨를 따서 제 이름을 강주현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제가 그때 젖병으로 분유를 먹을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제가 버려진 날 밤까지 저는 모유를 먹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회복지자의 의견을 토대로 추측하자면, 제 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에 친어머니와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입양 전에, 고아원에 머무르지 않고 외아들이 있는 위탁가정에 머물렀습니다. 8년 전 위탁모를 만났는데 그는 저를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 저를 아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1978년 서울 잠실 또는 강남 지역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지난해 여름 지인을 통해 미아는 물론이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는 일로 유명한 경찰관이자 현재 천안에 있는 한 대학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교수님은 제 정보를 들여다보시고, 친어머니가 저를 버릴 때 젊었다면 지금 60세가 넘지 않았을 것이어서 아직 살아계실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습니다. 친어머니가 저를 잘 돌봤던 것으로 보여 제 이야기가 알려지면 친어머니가 저를 위해 나설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1978년도 서울 잠실과 강남 지역은 가난한 지역이었고, 이 두 지역은 지하철도 설치되지 않은 농경지였다고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아기와 함께 이동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고, 새벽부터 대중교통이 운행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저를 버린 사람이 전날 밤부터 이동해 기다렸다가 버린 게 아닌 이상, 저는 잠실 또는 강남 지역 출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그 지역의 여러 교회가 목요일마다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자원봉사를 한다는 사실을 듣고 저도 그 봉사를 해볼까 고민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친어머니의 상황은 그때 당시 젊었을 것이고, 미혼이거나 시댁 쪽이 여자아이를 원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었든 간에 친어머니는 가난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친어머니와 가족을 찾으면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금기로 여겨지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제가 TV에 나가지 않은 이유는 친가족들이 TV를 보고 수치스러움을 느껴 저를 보지 않을까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친가족들이 절 만나고 싶지 않거나 저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친가족들을 찾는다고 해도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저는 과학의 힘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한국 경찰 여성청소년 수사계에 제 DNA 정보를 넘겨 온라인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먼 친척들만 연결됐습니다.

문제는 DNA 정보를 통해 가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이러한 정보가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는 경찰서에서 무료로 DNA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소용이 없는 일이 됩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가족들을 찾았습니다. 어떤 해에는 소득이 있기도 했지만 어떤 해에는 아무것도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지쳐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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