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딸에게 '삶'을 말하고 싶을 때
열세 살 딸에게 '삶'을 말하고 싶을 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8.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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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경의 그림책편지] 신시아 라일런트 글, 브렌던 웬젤 그림 「삶」

“(모델 일) 올해까지만 해야지.”

“올해까지? 지금까지 (20년) 한 것도 기적이다야.”

이 말 기억해? 너희들이 즐겨보는 <나혼자산다>(MBC)에서 모델 한혜진이 동료이자 언니 김원경과 함께 출연해서 나눈 대화잖아.

그걸 보면서 30대의 엄마가 생각났어. 엄마도 그땐 “나이 마흔이 되면 일 그만둘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거든.

네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직장에 다녔으니까, 일하지 않는 엄마는 잘 상상이 안 가지? 엄마도 그래. 40세 이후에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막연히 그때쯤 회사를 그만두자 그랬는데 지금 나이 42세. 내 마음속 정년을 어느새 2년이나 넘기고 있네.

더 놀라운 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지금은’ 없다는 거야. ‘짧고 굵게’ 아니고 ‘가늘고 길게’ 일하며 살기로 마음이 바뀌었거든. 소속은 어디라도 상관없지만 일은 계속하고 싶고 많든 적든 돈도 계속 벌고 싶어서야.

◇ "엄마처럼 일하고 싶어, 엄마는 좋아하는 일 하잖아"

언젠가 엄마가 퇴근하고 와서 글을 쓰는데 네가 말했어. “엄마처럼 일하고 싶다”라고. 즐겁게 일하는 게 좋아 보인다면서. 그런데 네 말을 들은 순간, 왜 그랬는지 “엄마가 하는 일이 편해 보여? 이거 노동이야. 글 쓰는 노동! 얼마나 힘든데!”라고 목소리를 높였어. 그건 마치 사장님에게 '제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기나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 그런 나를 보며 너는 말했어.

“그래도 엄마는 좋아하는 일 하잖아.”

반박 불가. 그래 맞아. 아직까지는 기사를 편집하고 글 쓰는 이 일이 좋아. 한 회사에서 같은 일을 16년째 하고 있다니, 모델 김원경의 말처럼 엄마도 지금까지 일해 온 게 기적 같아. 모델 일을 하는 그들과 속사정은 전혀 다르겠지만 엄마라고 사회생활의 어려움이 없지 않았어.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그러지 못한 현실에 힘들 때도 있었고, 내겐 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을 때도 있었지.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오해를 받은 적도, 산 적도 있었어. 일하면서 힘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일 때문에 긴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고. 지금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의 엄마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살려고 하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

그래도 너 말대로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이 제법 일치하는 지금의 삶이 가끔은 행운이라는 생각도 해. 그러면서 자연히 너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게 될까, 생각하게 되더라.

열세 살 너는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키워나갈까. 네 꿈이 어느 선생님의 말대로 무슨 무슨 직업으로 불리는 '명사'가 아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동사'이길 바라. 엄마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네 모습 그대로를 응원하겠지만, 그전에 신시아 라일런트가 쓰고 브렌던 웬젤이 그린 시 그림책 「삶」에 나오는 이야길 들려주고 싶어.

「삶」(신시아 라일런트 글, 브렌던 웬젤 그림, 이순영 옮김, 북극곰, 2019)
「삶」(신시아 라일런트 글, 브렌던 웬젤 그림, 이순영 옮김, 북극곰, 2019)

◇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삶'… 자라나고, 또 변한단다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 작은 코끼리가 햇빛과 달빛을 받으며 성장하듯 우리는 모두 자라나. 자라면서 사랑하는 것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산다는 게 늘 쉽지만은 않지. 길을 잃을 때도 있어. 하지만 힘든 시간은 지나가고 새로운 길들이 열리지.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해. 세상에는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아주 많다는 것과 또 누군가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걸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거 아니? 동물들은 삶의 비밀을 알고 있대. 그건 바로 모든 삶은 변한다는 거야.

너의 삶은 어떨까. 10대, 20대, 30대 너의 삶은 어떨까. 변하는 삶 속에서 너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관계없이 너만의 속도로 살길 바라. 변화의 폭이 크든 작든 너만의 중심으로 휘둘리지 않길 바라. 어떻게 변하든 네 모습을 잃지 않기를 바라. 보호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든 주저 없이 말해주길 바라. 집으로 찾아오길 바라. '매일 아침 부푼 마음으로 눈을 뜨길' 바라. 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니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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