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뚫겠다는 딸 안 말린 남편 마음이 궁금했다
귀 뚫겠다는 딸 안 말린 남편 마음이 궁금했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10.08 12: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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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딸의 첫 귀 뚫기를 함께하며

"엄마는 귀 언제 뚫었어?"

"고등학교 수능 끝나고 뚫었나? 여하튼 대학 갈 때 뚫었지. 그때만 해도 귀 뚫는 건 중고등학교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어. 그런데 왜?"

"응, 친구들이 요즘 많이 뚫어서…."

"그렇구나. 너도 하고 싶어?"

"응!"

"그래, 그럼 하면 되지 뭐."

화장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열세 살 진이가 귀는 뚫고 싶다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을 만큼 의외였다. 그날 이후로 귀 뚫기에 대한 질문이 더 많아진 아이. 귀는 뭐로 뚫는지(엄마 어렸을 땐 총으로 뚫었는데), 얼마나 아픈지(아프면 안 할 거냐?), 한번 뚫은 귀는 언제 막히는지, 엄마는 귀걸이도 안 하는데 왜 안 막히는지, 피어싱은 왜 하는지, 귀걸이랑 피어싱은 뭐가 다른지 등등. 참 궁금한 것이 많았다. 

"진아, 그렇게 궁금해하지 말고 일단 해 봐."

"언제?"

"내일 해, 그냥."

"그럴까? 그래, 그럼 내일 할게."

◇ "다른 집 아빠들은 안 그러던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아?"

남편에게 말했더니 이미 알고 있단다. 심지어 진이가 손톱 크기만 한 링 귀걸이를 하고 싶어 한다고. 그런 이야기는 언제 또 아빠한테 한 건지. 하지만 내가 정말 궁금했던 건, 딸에게 귀를 뚫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크게 감정 변화가 없는 남편의 속마음이었다.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친구는 열네 살 딸아이가 여름에 무릎이 드러나는 짧은 반바지를 입는 것도, 입술에 틴트를 가볍게 바르는 것도 마땅치 않아 하는 남편 때문에 아이와 갈등이 잦다고 했다. 아빠와 딸 사이를 중재하느라 곤란할 때가 많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맘때 여자아이들이 한창 외모에 관심 있어서 그러는 것을 남편은 왜 이해 못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런데 친구의 남편만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미디어 속에서도 그런 아빠들의 모습은 자주 등장하니까.

KBS2TV '살림하는 남자들2'에서 본 아빠 김성수도 그랬다. 염색하고 싶은 딸 혜빈이에게 김성수는 "지금은 안된다"며 딱 잘라 말한다. 그런데도 아빠 몰래 염색을 하고 나타난 딸에게 김성수는 "이렇게 염색하고 짧은 치마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라고 화를 낸다. 그러나 원데이 염색인 것이 드러나면서 김성수의 화가 다소 풀어지긴 했지만. '(겨울방학 때) 귀를 뚫고 싶다'는 혜빈의 말에 한숨을 쉬는 아빠 김성수의 모습은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이게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한숨을 푹푹 쉴 만한 일인가 싶어 포털에 '귀 뚫기'를 검색해 봤다(뜻밖에 '영어 귀 뚫기'가 나와 크게 한번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귀 뚫기를 아빠가 허락하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사뭇 진지한 글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다. 내가 남편의 속마음이 궁금했던 것은.

드디어 지난 주말 진이와 남편과 나, 아홉 살 윤이까지 네 식구가 모두 이어링 숍에 갔다. 가게 안에 '넌 안 해도 예뻐, 근데 하면 더 예뻐'라는 네온사인이 눈에 띄었다. 주인장 센스에  큭큭 웃음이 났다. 그런데 이런, 귀를 뚫는 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피어싱과 일반 귀 뚫기. 귀만 뚫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미처 생각 못 한 진이도 당황한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남편이 직원에게 물었다.

"피어싱이랑 일반적으로 귀를 뚫는 거랑 뭐가 다르죠?"

"일단 핀 두께 차이가 있고요. 뒤에 실리콘으로 마감하는 거랑 쇠볼로 마감하는 게 다른데요. 귀 뚫기를 하고 실리콘으로 막는 경우, 잠버릇이 심하면 빠질 수 있어요. 피어싱은 그럴 일이 별로 없고요. 피어싱을 해도 일반 귀걸이를 할 수 있고,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해요."

'잠버릇이 심하면 빠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피어싱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잠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귀를 뚫고 나왔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오는 아이. 직원은 이후 관리 방법을 설명했다. 남편은 신기하리만큼 직원에게 많은 걸 물었다.

귀를 뚫는 기구는 뭘 사용하는지, 지금 착용한 귀걸이는 언제 교체할 수 있는 건지, 붓고 빠지고를 자연스럽게 반복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는데 혹시나 염증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가만히 들어보니 귀 뚫기 전에 진이가 다 궁금했던 내용들이었다. 뭐지? 남편은 왜 다른 아빠들이랑 다른 거지? 나중에 남편에게 직접 물어봤다.

해보고 싶은거 해봐서 좋다는 딸 진이. 얘, 귀는 뚫어줬으니 귀걸이는 네 용돈 모아서 사라! ⓒ최은경
해보고 싶은거 해봐서 좋다는 딸 진이. 얘, 귀는 뚫어줬으니 귀걸이는 네 용돈 모아서 사라! ⓒ최은경

◇ '간섭보다 관심'이라는 진리를 직접 몸으로 보여준 아빠, 당신 멋있다! 

"자긴 진이 귀 뚫는 거 안 싫어?"

"응. 안 싫어."

"친구 남편은 딸애가 짧은 반바지 입는 거, 화장하는 거, 귀 뚫는 거 등등 다 싫어한다는데 자긴 좀 달라서 속마음이 궁금했어. 혹시 불편한데 참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난 진이가 좀 내성적이니까… 그렇게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이것저것 해 보는 거는 괜찮다고 생각해. 진이는 또 싫은 건 안 하니까."

묻길 잘했다. 묻지 않았으면 남편의 깊은 마음을 모를 뻔했다. 아이들에게는 간섭보다 관심이 중요하다더니 남편이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줄 줄이야. 그런데 이거 역시 남편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딸애 말을 들으니 최근 귀를 뚫은 친구 중에(3명이나 되는데!) 부모님이 반대한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단다.

귀를 뚫고 나온 진이는 해보고 싶은 거 해봐서 좋단다. 친구들 말 듣고 긴장 좀 했는데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 표정이 더 씩씩하고 당당해졌다!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빨리 한 달 정도가 지나서 귀가 잘 아물면 마음에 드는 귀걸이로 바꿀 거라는 아이 앞에서 딱 한소리만 했다.

"귀는 뚫어줬으니 귀걸이는 네 용돈 모아서 사라~비싸더라(큭큭)."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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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ya**** 2019-10-08 13:03:42
오~ 제가 쓴 글인줄 알았어요. 이제 귀를 4개 이상은 뚫습니다. 더더더 의연해지셔야합니다. ^^ 아빠가 멋지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