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아빠 되고 싶지 않은데… ‘도손이 아빠’가 울컥한 까닭
독한 아빠 되고 싶지 않은데… ‘도손이 아빠’가 울컥한 까닭
  • 기고=윤희만
  • 승인 2019.10.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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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제대로 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전북부모회 '한걸음' 윤희만 씨

지난 7일 제대로 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전북부모회 '한걸음'이 출범했다. 한걸음에서 활동하는 ‘도손이 아빠’ 윤희만 씨가 한걸음 출범의 소회와 부모들의 바람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 편집자 말

지난 8월 12일 열린 ‘전북 공공어린이재활센터 유치 촉구 기자회견’ ©윤희만
지난 8월 12일 열린 ‘전북 공공어린이재활센터 유치 촉구 기자회견’ ©윤희만

지난 8월 12일, 아침부터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참여해줄 수 있겠냐고. 무슨 기자회견이냐고 물으니 전북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라고 한다. 아내는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니 꼭 나오라고 재촉한다.

전북도청 앞에는 20여 명의 인원이 모여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낯익은 어머니들. 학령기 이전 장애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서 예전에 만난 분들도 보인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전북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오랜만에 만나 어머니들의 사연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병원을 이리저리 전전하는 ‘병원난민’ 생활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입원치료를 받는 게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부터 전북지역 종합병원에 어린이재활 시설이 형편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들, 특수학교에서 아이들 치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이야기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불현듯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이가 아빠 팔을 딛고 어깨까지 오르려는 모습에, 나는 대견하다고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가 경직이 심해서, 일명 ‘뻗침’이라는 잘못된 힘주기를 하던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웃었던 어리석은 아빠의 모습 말이다.

엄마는 아이를 업고 여기저기 다니며 아이 치료에 대한 정보를 귀동냥으로 듣고, 인터넷으로 듣고, 재활치료센터에서 듣고 하는 사이, 아빠는 그저 대학병원만 다니라고 재촉했던 그때의 기억들. 어쩌면 아이의 재활치료에 대한 엄마의 절박함을 아빠는 얼마만큼도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도 그날은 기자회견을 하러 모인 어머니들이 어떤 심정인지, 그분들의 하소연이 무엇인지,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아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치료횟수는 줄어들고, 부모들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학령기에 접어들면 아이를 어디에 보내야 하는지, 결국 그때 결정의 순간에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가족의 심정을 이제는 조금 이해한다.

전북도청 앞에서 제대로 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로, 부모모임을 만들고 실태조사 발표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매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홀로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가족이 아니라 모여서 함께 의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모임이 부모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동안 남들이 만들어놓은 치료실을 좀 더 활용하는 것밖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던 부모들이, 몸이 불편하고 맘이 불편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새롭게 바뀌어야 할 것들을 요구하고 있다.

권역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그 첫 번째는 2021년 12월 개원을 목표로 대전에 만들어질 계획이다. 규모는 입원 50병상, 낮 20병상으로 모두 70병상. 장애아동 가족들이 요구해온 100병상보다는 30병상 작은 규모지만 공공분야 최초의 어린이재활병원이라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지난 7일 열린 제대로 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전북부모회 '한걸음' 출범 기자회견 ©윤희만
지난 7일 열린 제대로 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전북부모회 '한걸음' 출범 기자회견 ©윤희만

◇ “더 이상 서울에 있는 병원들을 난민처럼 떠돌지 않기를”

3년 전쯤 대전에서 어린이재활치료 부모모임인 ‘(사)토닥토닥’을 운영하는 ‘건우 아빠’ 김동석 이사장을 처음 만나고 공공어린이재활병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좋은 말이긴 한데, 그것보다는 내 아이가 당장에 어디선가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주위의 무관심 속에서도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결국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현실로 만들어낸 건우 아빠와 대전 토탁토닥 분들께 감사하고, 함께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며칠 전 전주의 한 방송에서 공공어린이재활병원과 관련해 인터뷰를 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인터뷰 촬영이 중단됐다. 슬퍼서일까? 어떤 감정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장애 아이들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점잖은 부모로 기억되고 싶은데 결국 아이를 위해서 뭔가를 요구하다 보면 독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울컥했다.

지난달 26일 보건복지부는 2019년 권역별 공공어린이재활센터 건립사업 공모 결과, 전주시(전북권)와 춘천시(강원권)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전북권은 2021년 개원을 목표로 전주시 예수병원 인근에 부지를 마련해, 낮 병동 21병상 규모로 어린이재활센터를 건립하고 운영은 예수병원에 위탁한다는 계획이다.

공공어린이재활센터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에 비해 규모가 작고 외래 중심으로 운영된다. 전북에는 1만여 명의 장애아동이 있는 데 반해 소아재활병원은 4곳뿐이다. 타 지역과 비교해 가장 적을뿐더러 이웃인 전남(10곳)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전북의 장애아동은 서울 등 수도권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7일 제대로 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전북부모회 ‘한걸음’의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며 “(어린이재활의료센터 건립 확정이) 단비 같은 소식이긴 하나 장애아동과 부모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질 좋은 공공어린이재활시스템’이 가능할지는 의구심이 든다”고 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방송 인터뷰에서, ‘전북에 세워지는 공공어린이재활센터가 어떤 역할을 했으면 하나요?’라는 아나운서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아이의 재활치료를 위해 서울의 병원들을 난민처럼 떠돌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북에도 장애아동들을 위한 번듯한 치료시설과 교육, 돌봄 시설을 만들기를 요구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공공어린이재활센터 설립이 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어린이재활치료 시설 확충의 시작이 돼야 한다는 거예요.”

재활치료를 받는 어린이와 그 부모들이 모든 짐을 홀로 짊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가, 지역이 함께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종합적인 치료와 돌봄 지원, 안내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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