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미국식 식단’, 이젠 죄책감 안 갖기로 했다
아이들의 ‘미국식 식단’, 이젠 죄책감 안 갖기로 했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1.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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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한국의 '건강식'만큼 중요한 것

우리 큰애는 피자를 아주 좋아한다. 햄버거도 좋아하고 즐겨 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물도 아주 좋아하고 채소가 가득 들어간 비빔밥도 잘 먹는다. 어렸을 때부터 나물과 채소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둘째는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식을 진행할 때는 분명 가리는 것 없이 너무나 골고루 잘 먹었는데 두 돌이 지나고 유아식, 아니 일반 어른들의 식사와 거의 비슷한 식사를 하게 되면서 오빠를 따라 우연히 치킨 너깃과 감자튀김을 먹어보고는 그 뒤로는 계속 자극적인 튀긴 음식에 눈독을 들인다. 

균형 있는 식사를 못 하는 것 같아 엄마의 마음은 죄책감이 가득하다. 다행히 아직 사탕이나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같은 것은 아예 접해본 적이 없지만, 채소를 잘 먹지 않고 빵이나 맨밥만 먹으려는 둘째를 볼 때마다 엄마는 항상 걱정스럽다.

두 돌 지난 둘째가 치킨너깃을 너무 좋아한다. 채소는 입에도 안 댄다. 식사 시간마다 괜히 마음이 너무 죄스러웠다. ⓒ베이비뉴스
두 돌 지난 둘째가 치킨너깃을 너무 좋아한다. 채소는 입에도 안 댄다. 식사 시간마다 괜히 마음이 너무 죄스러웠다. ⓒ베이비뉴스

◇ 맥앤치즈, 치킨너깃, 햄버거가 아이들 '주식'… 아, 너무 걱정된다

솔직히 미국의 먹거리는 몹시 제한적이다. 한국인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건강하지 않은 음식들도 많다. 아이들의 먹거리는 더욱 신경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 있다 보면 아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먹여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키즈 메뉴는 지나치게 한정적이다. 치즈와 버터를 마카로니에 넣어 요리한 맥 앤 치즈, 치킨 너깃, 햄버거(채소는 한 점도 들어가 있지 않다), 그도 아니면 페퍼로니나 치즈만 얹은 피자류를 제공한다. 유아식을 준비하는 것이 이유식을 만들던 때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 나는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미국 친구 캐서린에게 딸 엘리에게 무엇을 주로 먹이는지 물었다. 

캐서린은 앨리에게 아침 식사로 토스트나 시리얼을 주로 먹이고 점심에는 유기농 치킨 너깃이나 콘도그(우리나라의 핫도그 같은 것), 과일 등을 먹인다고 한다. 저녁에는 파스타와 고기를 간단히 구운 것에 채소를 삶아 곁들여 준다고 했다. 다른 미국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친구들은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간식에 해당하는 음식을 밥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미국식 식단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지금 내가 사는 소도시에는 한국 식료품점도 없고 한국 식당도 없어서 매번 한국식 메뉴를 고집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고기나 생선을 구워서 주 메뉴로 하고 샐러드 등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아이들 식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 둘째는 샐러드에는 손도 대지 않지만 말이다.

가끔 시간이 나면 특식으로 채소를 잘 안 먹는 둘째를 위해서 꼬마 김밥을 만든다거나 채소를 잘게 다져 넣은 밥전을 만들어주는데 성공률은 반반이다. 어느 날은 그래도 좀 먹어주고 어떤 날은 손도 대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의 먹거리도 신경 쓰인다. 그래서 나는 주먹밥이나 샌드위치, 김밥 등으로 메뉴를 바꾸어가며 한식을 위주로 한 점심 도시락을 꼭 싸준다. 피자와 토스트, 그리고 빵만 반복적으로 나오는 급식은 한식에 더 익숙한 큰아이에게 너무나 단조롭다.

한식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지 그렇지만 얼마나 영양 균형이 잘 맞춰져 있는지 늘 깨닫는 요즘이다. 한두 가지라도 채소를 같이 넣어 요리하는 한식과 달리 미국의 음식은 사이드로 따로 준비하는 샐러드 말고는 대개 육류나 탄수화물의 단품으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많다.

◇ "애가 뭐라도 먹는다면, 그걸 그냥 먹이세요. 괜찮아요"

미국의 아이들이 흔하게 도시락으로 싸오는 시판 런처블즈(Lunchables). ⓒ이은
미국의 아이들이 흔하게 도시락으로 싸오는 시판 런처블즈(Lunchables). ⓒ이은

요즘 특히 특정 몇 가지 음식만 고집하는 둘째 때문에 다양한 음식의 샘플과 조리법을 찾아보고는 있는데, 사실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서 이곳의 소아과 의사에게 조언을 받을 겸, 유아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그녀는 의외로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애가 뭐라도 먹는다면, 그걸 그냥 먹이세요.”

먹는 것 때문에 엄마도 아이도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 아이가 스트레스 없이 적당히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녀는 이어 이렇게 덧붙였는데, 내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었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음식이 훨씬 건강하다는 건 사실이에요. 아무도 그걸 부정할 수 없을걸요. 그렇지만 아이가 잘 먹는 음식이 있다면, 지나치게 과식하지 않는다면 그냥 먹게 놔두세요. 채소를 안 먹는다면 아주 작은 한조각 정도만 시도하게 해주고 그래도 먹지 않는다면 억지로 먹이지 말고 그냥 옆에 놓아만 두세요. 

채소를 안 먹는다면 과일을 먹이면 되고, 그마저도 안 먹는다면 과일 스무디나 주스를 만들어 먹이면 되고, 그도 아니면 그냥 더 편하게 시판 스무디나 주스를 먹이세요. 정 필요하면 종합 비타민제를 먹여도 돼요. 아예 안 먹거나 지나치게 많이 먹지만 않으면 됩니다.” 

의사가 보여준 식단에는 그야말로 간식거리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우유 반 컵과 바나나 반 개, 토스트 한 조각과 삶은 달걀 반 개로 구성된 메뉴들. 의사는 아이가 직접 집어 먹고, 느끼고, 씹고, 또 그만 먹고 싶어 한다면 그만 먹게 하라고 했다. 

이런 신세계가 있을까. 가끔 매체에서 접했던 이야기이건만 사실 별로 다가오는 이야기는 아니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담당 소아과 의사가 이제는 장성한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썼던 방법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니 무한한 신뢰가 샘솟기 시작했다.

늘 먹거리에 대한 고민, 또 충분히 신경 써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나도 모르게 나를 따라다녔는데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매일 큰애의 도시락을 싸고 둘째의 식사를 만들면서도 정작 내 아침은 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나도 조금은 가벼워져 보려고 한다.

좋은 먹거리, 균형 잡힌 식사는 참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이도 엄마도 스트레스받지 않는 식사 시간이다. 아이들은 음식을 잘 먹을 때도 있고 또 먹지 않을 때도 있다. 함께 먹고 즐겁게 먹으면 무얼 먹든 어떠하며 얼마나 먹는지가 무슨 큰 상관일까. 한국에 있는 먹거리 고민에 빠진 많은 엄마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이미 너무 잘하고 계신 거예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스트레스 없이 함께 밥 먹어요.”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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