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놀려고 학원에 가야 해?" 애 말이 틀린 게 없다
"굳이 놀려고 학원에 가야 해?" 애 말이 틀린 게 없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02.1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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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아이 앞에 서지 않기

예비 중학생 큰아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너무 많은 학원에 다니다가 질려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는 초등학교 내내 예체능이 아닌 학원은 거부했다. 한때는 미술학원마저 거부했다.

저학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고학년이 되자 더 완강하게 거부했다. 친구들이 학원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다. 매일 숙제에 치이는 걸 봐서 그런지 아이는 한사코 학원에 가는 것만은 거부했다. 자신의 판단보다 선생님 뜻에 맞춰 공부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학습지까지 마다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가진 성품 중에 돋보이는 게 있다면, 선생님도 인정한 성실함. 저학년 때부터 수학 연산과 한자 학습지를 꾸준히 했다. 4학년부터는 문제집도 한 권 정도 풀게 했다. 조금 풀다 만 것도 있고, 다 푼 것도 있다. 딱 아이다운 진도였다.

곧 중학생이 되는 큰아이는 초등학교 6년 내내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대신 성실한 성품을 기본으로 학습지와 문제집을 꾸준히 풀어왔다. 알아서 잘 하는 너. 그런데 엄마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베이비뉴스
곧 중학생이 되는 큰아이는 초등학교 6년 내내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대신 성실한 성품을 기본으로 학습지와 문제집을 꾸준히 풀어왔다. 알아서 잘 하는 너. 그런데 엄마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베이비뉴스

진도가 더디긴 한자도 마찬가지. 한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당연히 하는 급수 시험도 아이는 한사코 거부했다. 굳이 시험을 보게 할 이유도 없어 그냥 뒀다. 몇 년을 그냥 학습지만 풀다가 2년 전엔가 처음으로 6급 시험을 봤다. 이런 경험도 필요하다는 조언에서였다. 잘 봤다. 아이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어깨에 자신감 하나가 얹어진 듯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사교육 학원은 안 다녔지만,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아직은 초등학교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아직 늦지 않았으니 학원을 빨리 알아보라'고 말한다.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혁신학교. 시험이 없다. 아이의 학습 수준은 단원 평가와 선생님 상담, 그리고 1년에 네 번 나오는 통지표만으로 예측할 뿐이다. 통지표를 가져오는 아이 얼굴엔 늘 자신감이 넘쳤다.

아이는 영어 학원에 다니지 않았지만, '학교' 영어 수업 성적에 불만은 없었다. 아이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내 마음도 그러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나 영어 단어를 외우지 않아 기본적인 단어도 쓰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불안을 한 줌씩 삼켜야 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기죽이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는데 6학년 2학기 겨울 통지표를 받아온 그날은 무심결에 속말이 나와 버렸다.

"네가 너희 학교에서 잘한다고 아주 잘하는 건 아닐 수도 있어."

◇ 문제는, 학원 안 간다는 아이가 아닌 늘 괜히 불안한 '나'였다 

헉! 아차 싶었는데, 그 말을 들은 아이 반응이 의외였다.

"나도 알아."

"너도 알아? 뭘 아는데?"

"우리 학교에서 잘한다고 아주 잘하는 건 아니라는 거 말이야."

내가 아는 건, 이 아이도 다 알고 있구나…. 뭔가 알 수 없는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이제껏 불안하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 지난해 1월 방학 때는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어 좋다고 했다. 그 나이에 스트레스받을 일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아이 앞에서 영어 학원에 다니자는 말을 꺼내려던 나는 그 말을 도로 쏙 집어넣어야 했다.

아이를 학원으로 이끄려는 시도는 이렇게 번번이 아이 앞에서 좌절된다. 꼬시려는 마음이 포기된다(사실 꼬시는 기술이 없기도 하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학원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냥, 싫으니까" 이런 수준에서 아이는 좀 더 논리적으로 대답했다.

"학원을 가지 않고도 공부하는 데 문제가 없어. 6학년 때 학원 다니는 아이들보다 단원 평가 성적이 좋을 때도 있었고. 중학교에 가서 공부하다 어려움이 있으면 학교 선생님을 찾으면 되지."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학원에 가면 친구들과 놀 수도 있잖아."

"그렇게 노는 거 말고 나는 학원 아닌 곳에서 노는 게 더 좋아. 지금처럼 가끔씩 밖에서 놀면 돼. 그러니 굳이 놀기 위해 학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트집 잡고 싶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고 나다. 내 불안은 내가 해결하면 된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면서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잘하고 있다고, 지금도 괜찮다고 스스로 격려하면서. 그러는 동안 아이는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천하고 있을 테지. 나는 그저 아이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아이표 영어」의 저자 '아이걸음' 정혜연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아이 앞에 서서 다른 아이를 따라가지 말고, 아이가 앞에 서고 (엄마가) 따라가야 한다'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엄마의 사랑과 인정을 담보로 아이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멈춰야 한다'라고. 내 의지대로 아이를 이끌겠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찾아 읽고 싶은 문장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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