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해변을 배경으로 식사하는 한 서양인 가족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둘이나 있었지만, 가족의 식사는 바다 풍경처럼 평화롭고 고요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화보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했죠. 그런데 좀 더 유심히 지켜보자, 엄마 아빠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주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그들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기 시작했고요. 고개 숙여 작은 액정에 시선을 고정한 네 명의 가족. 그림처럼 정지된 그들은 꽤 오랫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아이는 자기가 지금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저 가족은 훗날 이 순간을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마침 그때, 옆에 있던 제 아이가 스마트폰을 달라고 조르더군요. 남편도 어느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요. 눈앞의 그 가족은 다름 아닌, 우리 집 풍경이었습니다.
◇ 여행지서 스마트폰 보는 아이에게 ‘버럭’… 사실 엄마도 화낼 자격 없는데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어떻게 여행했나 싶을 정도로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할 수 있고, 맛집도 사람들의 후기를 실시간으로 검색해 찾아갈 수 있고요. 손쉬운 카메라 기능은 여행의 순간을 바로바로 SNS에 올릴 수도 있게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여행 중에도 온종일 스마트폰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뿐인가요? 아이를 돌볼 때도 스마트폰 만한 게 없죠. 지루한 비행기 안에서도, 떠들면 안 되는 식당에서도, 막무가내로 떼쓰는 아이를 달랠 때도 스마트 폰은 훌륭한 ‘베이비시터’가 되어 줍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 스마트폰 사용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인터넷이 가능하다 보니 남편은 여행 중에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보더라고요. 저 역시 ‘여행 작가’라는 직업이 생긴 후 사진을 찍고 자료를 검색해야 할 일이 자주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여행 중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어났고요.
문제는 아이도 초등학생이 된 후로 엄마 아빠처럼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고, 이것저것 검색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색다른 여행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스마트폰을 주었는데요. 그 후론 모든 풍경을 눈이 아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려고 하더라고요. 사진을 찍어준다며 포즈를 취하게 해 충분히 즐기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방해하기도 했고요. 영상을 보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기 힘들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결국, 저는 답답한 마음에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를 화나게 한 아이의 모습은 그동안 제가 아이에게 보여준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여행 중 부모가 스마트폰을 보다 아이를 위험에 빠트렸다는 사고 소식도 종종 들려오는데요. 부끄럽지만 저 역시 스마트폰을 보다 잠시 아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낯선 여행지의 놀이터에서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와 남편을 아이가 보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던 거죠. 이런 부모의 행동은 세계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 스마트폰 덜 쓰고, '인생샷' 안 찍은 가족여행…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함께 눈을 맞추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떠난 여행에서 각자의 스마트폰만 보며 보내자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 중 스마트폰 사용을 과감히 줄이기로 했습니다.
떠나기 전 필요한 모든 것을 예약하고 검색하자 여행 중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더라고요. 사진도 최대한 빠르게 찍고 아이의 인생샷도 너무 공들여 찍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대충 찍은 사진을 보다가 더 많은 추억을 떠올리고 웃을 일도 생기더라고요.
참, 아이가 질문 하면 학습의 기회라는 생각에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기도 했는데요. 지나고 보니 아이의 끝없는 질문들은 호기심을 채우려는 마음도 있지만, 자신을 좀 봐달라는 신호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또, 정답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하고 집에 와서 찾아보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줄고 정보를 기억하는 시간은 더 오래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의 평소 스마트폰 사용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스마트폰은 습관처럼 무심코 들여다보는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래서 스마트폰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멀리 두기도 했습니다. 아이도 영상을 볼 수 있는 장소나 상황, 시간 등을 정해주었더니 시도 때도 없이 떼를 부리지 않게 되었고요.
일상에서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즐겨 사용하고 있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최대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남편과 아이의 눈을 마주 보려고 노력합니다. 스마트폰을 쥐는 대신 남편과 아이의 손을 한 번 더 쥐려고 하고요. 그렇게 쌓은 추억은 훗날 분명히 더 소중하게 기억될 거라고 믿습니다.
*칼럼니스트 송이진은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활동하는 19년차 방송인이자 50여 편의 광고를 찍은 주부모델이기도 합니다. 아이와 매년 4~5회의 해외여행, 다수의 국내여행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아이와 해외여행 백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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