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사망 사건 후, 아이가 “우리는 안전하냐”고 물었다 
흑인 사망 사건 후, 아이가 “우리는 안전하냐”고 물었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6.15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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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세상의 부조리’를 아이의 언어로 설명하기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 살던 46살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는 비무장, 비저항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체포 과정 중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의 무릎에 8분 46초간 짓눌려 질식해 사망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10대 소녀가 동영상으로 남겼고, 그 영상은 전 세계인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으면서도 때때로 묵인됐던, 흑인을 향한 공권력의 차별과 억압 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는 곧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로 번졌다. 시위는 일부의 약탈과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하면서 미국 현지 시각 5월 31일 기준, 미국 전역 25여 개의 도시에 통금령이 내려진 상태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시위와 함께 폭동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인종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그동안 화려한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미국의 빈부격차와 계급 분화의 어두운 단면들이 극단적인 상황과 맞닿으면서 점점 더 드러나고 있는 느낌이다. 지도자의 역할과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체감하는 하루하루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곳은 백인 인구가 75% 정도를 차지한다. 총인구는 10만 명이 채 되지 않으며, 인구밀도도 높지 않은 조용한 카운티(County, 미국의 행정 구역 단위)이기에 대규모의 시위나 폭동은 없다. 단, 지난 6월 3일 시청 앞에서 평화 시위가 일어났고, 시장과 경찰서장은 시위대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시위대의 뜻에 동조한다는 것을 표했다. 미국에서 한쪽 무릎을 꿇는 행동은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디어나 다른 지역, 특히 대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듣는 소식은 어지럽기 그지없다.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잘 하는 편인 초등학교 2학년 큰아이는 현재 세기말(?!)적인 미국 상황 탓인지 옛 영화 '터미네이터'에 빠져있다. 이 그림은 아이가 그저 로봇이 좋아 그린 것이지만 혼돈에 빠진 현재 상황을 표현한 것만 같다. 엄마의 느낌일 뿐일까? ⓒ이은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잘 하는 편인 초등학교 2학년 큰아이는 현재 세기말(?!)적인 미국 상황 탓인지 옛 영화 '터미네이터'에 빠져있다. 이 그림은 아이가 그저 로봇이 좋아 그린 것이지만 혼돈에 빠진 현재 상황을 표현한 것만 같다. 엄마의 느낌일 뿐일까? ⓒ이은

이 혼란을, 정확하게는 이 혼란을 일으킨 이 사회의 구조화된 불합리함을 어떻게 바라보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나는 그것이 제일 난감하다. 함께 뉴스를 보던 큰아이는 약간 불안해 보였고, 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전’한지”를 물었다.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밖에 거의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밖에 나가는 것이 더 위험해졌는지. 우리가 사는 동네에도 폭동과 약탈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안전한지. 아이의 눈동자에 불안감이 어려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우리는 완전히 안전하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불안을 거두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너는 아이니까 아직 몰라도 되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이미 인종의 차이를 안다. 하지만 내게 학교 친구를 설명할 때 단 한 번도 “누구는 백인이야”, “누구는 흑인이야”라고 소개한 적은 없다. 그저 친구의 이름을 이야기하고 “할리도 나처럼 여동생이 한 명 있어. 야구를 좋아하고 가끔 스케이트 타는 것도 좋아한대”라며, 친구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주로 이야기한다. 

아이에게 친구들의 인종은 아직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는 사회시간에 배워서 과거엔 노예제도가 있었다는 것도, 오랜 기간 흑인이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아시안도 종종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인종갈등과 인종차별에 관해서 이야기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왜 세상이 불합리한지, 왜 차별과 불평등이 생기는지에 설명하기,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정확히 알려줄 수 없을까 봐, 그것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최악의 설명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 때문에 나는 요즘 많은 그림책과 어린이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있다. 이 불평등과 불합리를 가장 적합한 아이의 언어로 아이의 마음으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은 것이다. 

NBC와 지역뉴스 채널에서조차 아이들에게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에 대한 기획 영상을 내보내는 것을 보면 비단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다. 좋은 것, 즐거운 것만 보여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차근히 준비해서 큰아이가 우리가 사는 이곳의 어두운 곳과 가려진 곳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조금이나마 그것을 바꿔나갈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아이와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볼 생각이다. 엄마도 아이도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고 또 질문할 시간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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