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안 보내도 괜찮아"… 이제야 내 편이 생겼다
"학원 안 보내도 괜찮아"… 이제야 내 편이 생겼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11.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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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영유아 사교육 오해와 진실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7년 전, 큰아이가 일곱 살 무렵이었나. 아이를 낳은 뒤 나는 한 출판사에서 전집을 시시때때로 사들였다. 교재 내용도 교구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 시기마다 홈스쿨을 병행했다.

그날은 영어 홈스쿨이 있던 날. “어머니 여기 좀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라며 선생님이 아이 방에서 나왔다. 방 안에는 아이가 큰 대(大) 자로 누워 울면서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고 있었다. 

선생님은 당황하기보다는 달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이상하고 묘했다.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일하고 살림하는 엄마지만 ‘아이를 방치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무언가를 시키고 있다’는 데 안도했을 뿐, 아이가 선생님과 어떻게 교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다는 걸.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걸.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계속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내 아이를 알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내 아이를 더 잘 알고 싶었다. 아이가 읽던 그림책을 같이 읽기 시작했다. 아이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됐다. 아이와 함께 걸음을 맞춰 나가는 게 좋았다. 아이 앞이 아니라,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게 됐다. 그 시간이 7년이다.

◇ "선행학습 안 해도 괜찮아"라는 친구가 한 명만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학원에 보내자”라며 내 손을 잡아끄는 사람들은 많았다 ⓒ베이비뉴스
“지금이라도 학원에 보내자”라며 내 손을 잡아끄는 사람들은 많았다 ⓒ베이비뉴스

큰아이는 처음부터 학원에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여느 엄마들처럼 살살 달래고 구슬리지 않았다. 억지로 학원을 보내지 않고 초등학교 6년을 잘 버티고 졸업했다. 버텼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나는 때때로 불안했지만, 아이를 보면서 견뎠으니까.

불안할 때마다 생각했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선행학습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켜줄 친구가 곁에 한 명만 있어도 좋겠다고. 서로 격려하다 보면 아이를 앞서 가지 않으면서, 아이가 이끄는 대로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학원에 보내자”라며 내 손을 잡아끄는 사람들은 많았지만(물론 나와 내 아이를 위한 걱정에서 한 말이라는 걸 잘 안다), 나와 아이의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언젠가 후회할 거’라는 말이 생략된 표정들을 많이 봐왔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육아전문지 베이비뉴스 취재팀이 교육 전문가들에게 사교육 시장에 널리 퍼진 11가지 오해에 대해 묻고 들은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김영사, 2020년)의 출간 소식이 반가웠던 건 그 때문이다. 이제야 내 편이 생긴 것 같았다.

책 속에서 이기숙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조기교육은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며 조기교육보다 적기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다. 그러며, 부모와 자녀 사이의 건강한 관계가 그 어떤 교육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많은 영유아 부모들이 조기교육을 선택하는 까닭은 뭘까요? 바로 ‘불안’ 때문입니다. 친구들과의 성적 경쟁에서 한번 뒤처지면 앞으로도 계속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 그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모 자신부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44쪽) 

◇ 아이 뒤에서 기다려주는 일이 덜 불안하고 덜 외로웠을 텐데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일이 덜 불안하고, 덜 외로웠을 것 같다. 조금 안심도 했을 것 같다.

책에는 이 외에도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말들, “3세 이전에 사람의 뇌 80%가 완성된다면서요”, “어릴수록 영어도 잘 배우잖아요”,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은 떼고 산수도 끝내야 한다던데요”, “영재 검사를 빨리 해보라던데요” 등에 대해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전문가에게 직접 물은 내용들을 담았다.

'옆집 엄마' 말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아이 공부를 언제, 어떻게 시켜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거리들을 던져준다. 

"‘혹시 우리 아이가 영재 아닐까?’ 부모들이 흔히 하는 생각입니다. 아이가 영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또는 영재성을 발견 못 하고 놓칠까 하는 걱정 때문에 영재 검사와 영재교육에 관심 갖는 부모들도 많지요. 하지만 영유아기 영재 검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영유아기 때 실시한 지능검사 결과는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같은 아이라도 오전과 오후의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올 정도예요."(211쪽) 

이 대목은 일부러 표시까지 해뒀다. 곤충백과 한 권을 외울 만큼 곤충을 좋아하는 여덟 살 아이를 둔 친구 때문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더 많이 경험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친구에게 시댁 식구들이 ‘그보다 얼른 영재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더라’는 말을 들어서다.

'아이의 성향과 소질,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엄마인 나인데,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니 자신이 고집만 피우다가 아이의 영재성을 놓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에게 "그렇지 않다"라고 "지금 충분히 너무 잘하고 있다"고, '영재교육의 허상'을 지적하는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말을 빌려 응원해주고 싶었다. 과거의 내가 그런 존재를 바랐던 것처럼.

◇ 가을에 가장 예쁘게 피어날 '코스모스' 같은 아이들에게

코스모스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베이비뉴스
코스모스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베이비뉴스

이 책을 읽고 사교육 시장에 퍼져 있는 잘못된 오해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고 해서, 공부 고민이 완전히 해결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도 지적했듯 아직 우리나라에는 대학 서열화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20년 뒤 입시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태교로 경쟁을 하는 사회에서는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위에서부터 바로잡아야 해요. (…) 결국 핵심은 대학 서열화입니다. (…) 이걸 공교육에서 바로잡지 못하면 대학교부터 유치원까지 도미노처럼 다 무너지게 됩니다.”(164쪽)

그렇다고 이 공고한 대학 서열화가 저절로 없어질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부모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옆집 엄마의 '카더라' 통신에, "그거 아니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그 작은 용기가 모여 변화를 이끌어낼 테니까. 이 책이 그 용기에 힘을 실어줄 거다. 적어도 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든든해졌다. 

요즘 아이들과 즐겨보는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자신의 앞날을 불안해 하는 손녀 달미(배수지 역)에게 할머니(김해숙 역)가 해준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나와 내 아이들에게, 그리고 사교육에 대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라 옮겨 적는다. 

"달미야, 넌 코스모스야. 아직 봄이잖아. 천천히 기다리면 가을에 가장 예쁘게 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초조해하지 마."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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