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뒤를 따라 걷는 산책… '교육'은 그런 것
아이의 뒤를 따라 걷는 산책… '교육'은 그런 것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0.11.2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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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왕좌왕 초보 양육자를 위한 책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

타인의 인생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성격이라, 육아도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즉, 다른 집 아이와 우리 집 아이를 비교하면서 아이를 정서적으로 괴롭히는 일만큼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19개월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데, 동네 친구의 18개월 아기가 우리 아기들보다 말을 훨씬 더 잘하는 것이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많이 안 해줘서 그런가, 책을 덜 읽어줘서인가, 기관에 안 보내서인가. 세상에,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트인다는 모국어라는 첫 번째 관문에서 이렇게 보기 좋게 무너지다니. 대학 입시까지 펼쳐질 기나긴 여정에서 불안해지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사교육걱정없는세상·베이비뉴스, 김영사)는 나처럼 우왕좌왕하는 초보 양육자에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그러나 요즘 양육자들이 근거 없는 ‘힐링 멘트’에 넘어갈 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책은 자식이 걸린 문제를 두고 아무 말이나 덜컥 믿어버리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교수, 연구원, 교육 분야 강사 등의 전문가들을 꼼꼼히 인터뷰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내민다.

다른 집 아이와 우리 집 아이를 비교하는 일만큼은 하지 않겠다 자신했지만,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베이비뉴스
다른 집 아이와 우리 집 아이를 비교하는 일만큼은 하지 않겠다 자신했지만,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베이비뉴스

◇ 불안해 말라는 말, 근거 없는 ‘힐링 멘트’가 아니었다

책은 조기 교육보다 중요한 건 적기 교육이라는 말로 포문을 연다. 조기 사교육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어디에도 없다. 과도한 사교육은 아이의 학습 몰입도를 낮추고, 산만함을 높이며 자신감을 빼앗는다. 영유아기 때부터 양육자와 관계를 튼튼하게 닦아놔야 사춘기를 잘 넘길 수 있는데, 억지로 시키는 사교육은 양육자와의 관계를 망칠 뿐이다.

그러나 영유아 사교육 시장의 선전 문구는 영리하다. 적기 교육의 그 적기가 3세 이전이라고, 3세 이전에 사람의 뇌 80%가 완성된다고 하는데, 웬만한 강심장 부모가 아니고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에 의학 교수들이 대답해준다. 그건 상업적 호도일 뿐이라고. 3세 이전에 완성되는 것은 시각, 청각, 모국어, 정서 등 경험기대적 발달이고 학습, 독서, 외국어 등 경험의존적 발달은 시기가 따로 없다고 한다. 경험의존적 발달에서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노출되는 시기가 아니라 노출되는 시간의 길이다.

3세까지는 감정의 뇌가 발달하기 때문에 지적 자극보다 중요한 것이 감정적 충족이다. 즉,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 2세 전에 한글 교육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알고 ‘내가 너무 무지한가’ 자책하다가, 이 대목을 읽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들은 한글을 시작한다는데 뽀뽀하고 살 부비는 데 육아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무식한 엄마가 됐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달까. 나의 무식함을 그럴 듯하게 꾸며줄 과학적인 근거를 얻었다(!).

만 2세 전은 너무 이르다고 해도 취학 전에는 한글을 떼야 하지 않을까. 내 여동생이 딸에게 한글을 미리 가르치지 않는 걸 보면서 말은 못하고 내심 불안해했던 극성 이모가 나다. 조카는 한글 사교육을 따로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취학 전에 한글을 뗐는데, 그 모습에 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책은 이런 극성 이모의 근심도 달래줬다.

말하기와 듣기는 교육받지 않아도 할 수 있지만, 읽기와 쓰기는 학습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한글 교육을 받으려면 ‘인지’의 나이가 자라야 한단다. 너무 불안하다면 7세가 끝날 때쯤이나 초등학교 입학 한두 달 전에 가르친다고 해도 절대 늦지 않단다. 그때쯤이면 금방 한글을 뗄 수 있는데, 한글을 받아들일 정도로 인지적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에 한글 교육을 시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 “이중언어자로 키울 생각 없나?” 지금 그 질문을 듣는다면

뭐니뭐니 해도 영유아 사교육의 꽃은 영어다. 5세 이전에 외국어를 배워야 모국어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이 속설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전공하지 않은 분야는 무조건 전문가의 말을 신뢰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5세 이전이 ‘결정적 시기’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깨끗이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 결정적 시기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됐다.

논문에서 말하는 결정적 시기란 '영어권 국가에 언제 이민을 왔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해당 언어에 노출되는 ‘양’이 ‘질’을 결정한다. 즉, 한국에서 살면서 영어권 국가에 이민 온 것 같은 절대적 노출량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이중언어자가 되기 힘들다.

한 지인이 나에게 “아이들을 이중 언어자로 키울 생각이 없냐”고 물었을 때,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한 나머지 “애들 영어가 문제라기보다 제 영어 수준이 낮아서…”라고 얼버무린 적이 있다.

대답이 너무 궁색해서 두고두고 혼자 얼굴을 붉혔는데, 이 대답 또한 완전 바보 같은 대답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집에서 양육자가 영어 사용 환경을 제공해줄 수 없다면, 아무리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 유치원)에 보낸다고 해도 그 효과는 비용 대비 극히 미미하다고 책은 말한다.

또한 “모국어 그릇에 영어 담긴다”라는 말처럼 모국어 발달 전에 또 다른 언어를 배우면,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모국어 수준만큼의 영어밖에 배울 수 없다고 한다. 조기 영어 교육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중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영어도 잘한다는 말도 충격적이었다. 영어를 잘하는 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지가 아니라, 전반적인 학업 성취도가 얼마나 높은지라는 것이다.

모국어 발달 전에 또 다른 언어를 배우면,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모국어 수준만큼의 영어밖에 배울 수 없다고 한다 ⓒ베이비뉴스
모국어 발달 전에 또 다른 언어를 배우면,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모국어 수준만큼의 영어밖에 배울 수 없다고 한다 ⓒ베이비뉴스

◇ 아이가 앞장서 보여줄 배움의 길은 얼마나 눈부실 것인가

결국, 책이 말하는 핵심은 영유아 시기에는 실컷 놀아도 된다는 것. 요리도 못하고 살림도 젬병이고 돌봄 노동에도 소질이 없는 내가 양육자로서 유일하게 열심히 하는 일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갖 공원과 숲을 쏘다니는 것이다. 사실은 집에만 있으면 내가 답답해서 나서는 외출길이지만, 책을 읽은 후에는 아이들을 자연과 접하게 해주는 일이라는 근사한 이유를 얻었다.

공원과 숲을 다니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걷고 싶은 길로 아이는 절대 따라와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어김없이, 아이가 가는 길을 내가 뒤따라가야 했다. 그래서 내 사진첩에는 아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찍은 아이의 뒷모습 사진이 가득하다.

이 책은 교육 또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교육은 아이 중심이 돼야 한다. 양육자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아이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양육자가 보조해줘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해야 자기 주도성이 생기고, 자기 주도 학습을 해야 교육의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니!’ 하고 당황스러웠다가, 나중엔 ‘그러면 영유아기 사교육비를 안 써도 된다는 말이잖아?’ 하고 현실적인 생각에 은근히 신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엔, 기대가 됐다. 아이가 앞장서 나아가 보여줄 배움의 길은 얼마나 눈부실 것인가. 공원과 숲에서도, 내가 가고자 했던 길보다 아기의 아장아장 서툰 발걸음을 뒤따라간 길에 늘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영화관에 갈 시간이 없어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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