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통보받은 남편… '위태로운 동거'의 기록
자가격리 통보받은 남편… '위태로운 동거'의 기록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20.12.0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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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자가격리자와 함께한 일주일
남편이 보건당국으로부터 2주간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 ⓒ베이비뉴스
남편이 보건당국으로부터 2주간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 ⓒ베이비뉴스

남편이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보건당국으로부터 2주간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 남편은 당일 검사를 받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우자인 나도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이 두 명 모두 음성이라고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남편은 방역 메뉴얼에 따라 자가격리는 유지해야 하고, 나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권유로 동일한 기간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우리 식구 네 명의 ‘위태로운 동거’가 시작됐다.

남편은 화장실이 달린 안방에 자리를 잡고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 둘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나는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부엌과 거실은 내 공간이 됐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을 더 버텨야 한다. 우리,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재난 상황은 인간의 아주 밑바닥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누군가 “이런 일을 한 번 겪으면 친구 관계가 정리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하더라. 실제로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그 사회의 수준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그리고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의 ’못된‘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24시간 동거에 ’돌입하던‘ 첫날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서로 짜증내지 말자. 서로 탓하는 말을 하지 말자. 그래서 이 상황이 종료되는 날, 가족관계가 더 돈독해지지는 못할망정 ’붙어 있어보니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평가는 하지 않도록 하자.

이 상황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부부는 직장에서 오는 온갖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는데, 이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것은 ’내가 매개가 돼서 더 확산될 수 있다‘는 공포였다. 재난에 대해 대책을 세우기보다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익숙한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오는 공포였다.

작은아이는 상황 발생 초기에 ”내가 우리 학교를 문 닫게 할 수도 있는 거야?“라며 불안해했다. 본인이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은 아이에게 이미 큰 걱정이 아니었다. 마음이 아팠다. 우리 부부가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날, 작은아이는 그날이 대면 수업일이었는데 하루 학교를 쉬었다.

◇ 코로나 팬데믹 시대… '소리 없이' 파괴되는 것들

친구가 결석한 이유가 궁금한 같은 반 아이들이 작은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이는 친구들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엔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을 학교에서 교사가 잘 설명해줬으면 좋았으련만, 나도 경황이 없어 챙기지 못했고, 학교에서 이런 경우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달했는지 잘 모르겠다.

큰아이가 며칠 전, '코로나 팬데믹 시대 정책제안대회'가 있는데 무엇을 중심으로 쓰면 좋을지 내게 물었다. ”네가 직접 겪었으니 네 경험에서 우러나는 글을 써봐“ 했더니, 아이는 수업이 잘 안되는 것도 문제지만 밥을 먹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래도 둘이 같이 있고, 엄마가 카드도 주니까 배달음식도 시켜먹을 수 있고, 냉장고에 고기도 있으니 구워먹고 하면 되지만, 혼자서 생활이 안 되는 아이들이 걱정이야.”

정말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자가격리자가 집에 있어도 월급이 나오니 생계가 유지되고, 나 역시 재택근무를 해도 잘릴 걱정은 없으며, 한 사람을 격리할 수 있는 여분의 방이 있다. 그리고 각자 학습과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과 컴퓨터와 태블릿PC도 구비돼 있다. 그래서 격리의 생활이 가능하고, 서로 화내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두 이럴까?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생계와 돌봄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에 대해 국가와 사회구성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빠른 정보공유와 빠른 격리에 만족할 일이 아니다. “그 다음엔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정보를 공유하고 격리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고, 공동체가 복원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소리 없이 파괴되는 것들을 잘 봐야 한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만으로 비켜가기에 이제는 너무 가까이에 와 있는 일상적인 재난. 그렇다면 이제 모두 나의 일처럼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대책은 더욱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긴급하고 위급한 아이들에 대해 지금이라도 실질적인 돌봄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모두의 안녕을 기원한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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