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 드디어 한글을 익히기 시작하다
여덟 살 아이, 드디어 한글을 익히기 시작하다
  • 칼럼니스트 김보민
  • 승인 2021.05.31 13: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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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해외서 자라는 아이의 한글교육

큰 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는 만 4세가 되던 해에 싱가포르로 이사를 왔다. 아이의 말이 폭발적으로 느는 시기였다. 본인이 듣고 배운 말로 감정과 생각을 곧잘 표현했고, 알고 있는 노랫말을 자신의 이야기로 바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고, 같은 소리가 나는 말을 나열하며 소리 놀이를 하곤 했다. 

이렇게 말을 하며 놀 줄 아는 아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싱가포르에서 꽤 애를 먹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과 같이 놀고 싶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함께 놀 수가 없었고, 엄마 아빠를 제외하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과 자신도 이 곳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답답해했다. 가끔 길에서 한국말이 들리면 아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자고 할 정도였다. 익숙한 말을 편하게 나눌 수 없어 아쉬워하던 시간들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 영어 단어 네 개를 알려줬다. 워터(water, 물), 토일렛(toilet, 화장실), 피피(pee, 쉬), 푸푸(poo, 똥). 생존을 위해 알아야 하는 단어들이라 여긴 말들이었다. 유치원을 향하는 아침마다 이 네 단어를 같이 읊조렸다. 정작 유치원에서 이 단어가 유용했는 지는 잘 모르겠다. 

동네 유치원을 1년 6개월 다니고 다른 곳으로 옮길 때였다.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가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주시는 급식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그 분이 나를 알아보시더니 멀리서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급식 선생님은 간식 시간마다 우리 아이를 지켜보셨다며 처음 몇 개월동안 간식 시간에 친구들과 이야기도 못 나누고, 선생님들 이야기에 눈치로 행동하는 아이가 짠했다고 했다. 그러다 조금씩 친구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 수 있게 된 아이가 대견하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아이를 꼭 안아 주시며 잘 했다고, 멋지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 주셨다. 

유치원을 다녀오는 아이에게 재밌었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재밌었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기에 아이의 적응이나 언어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그 시기를 다시 돌아보니 그 작은 아이가 속으로는 얼마나 힘들고 부담스러웠을까 싶다. 본인이 겪는 어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는 것도 어려웠을 수 있고, 엄마가 하라고 하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싫다는 말을 못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글자를 익히는 것보다 그림에 색칠하는 것에 지극정성이다. 낙타는 혹에 물을 가득채워 다닌다며 파란색으로 색칠을 했다. ⓒ김보민
글자를 익히는 것보다 그림에 색칠하는 것에 지극정성이다. 낙타는 혹에 물을 가득채워 다닌다며 파란색으로 색칠을 했다. ⓒ김보민

아이가 이 곳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무렵, 넘어야할 새로운 산이 등장했다.

바로 큰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  

아이가 한국 나이로 다섯 살 시기는 싱가포르 생활에 적응도 해야 했고, 이제 막 태어난 둘째도 키워야 해 한글을 가르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됐을 때에는 취업을 하고 아이와 같이 생활하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일곱 살이 됐을 때에는 코비드 일상에서 새로운 숙제 하나를 해낼 ‘나의’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해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인 여덟 살이 됐다. 

올 해 초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한국에 계신 어머니 댁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조급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한글은 일찌감치 익히고 학교에 들어갔을텐데 정말 낫 놓고 기역도 모르는 아이인 것을 보고 어찌해야하나 걱정이 앞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싱가포르에도 아이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 한국국제학교에서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한국어 수업, 학습지 방문교사 등등이다. 한 곳은 너무 멀고, 또 하나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가 수십년을 활자중독자처럼 글을 읽고 쓰고 살았는데 아이 한글 하나 못 가르치겠어?”

그리해 집에서 아이와 내가 함께 하는 한글 수업이 시작됐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아이에게 뭐든 가르쳐본 부모라면 한번쯤 해봤을 생각을 나도 했다. ‘왜 이렇게 이해를 못하나’, ‘왜 했던 설명을 또 하게 하나’, ‘다른 아이들은 곧잘 한다던데 우리 아이는 왜 쉽게 못 따라오나’, ‘이래서 남의 자식을 가르쳐도 내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하나’ 등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느 날, 아이와 마주 앉아 한글 공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한글이 어려워? 한글 배우기 싫어?"

"응, 아주 많이 어렵고 배우기 싫어." 

"왜 한글은 더 어려운 것 같아?"

"한글은 지금 필요가 없어. 학교에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랑 놀 때 쓰지도 않아. 한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오셔서 쓸 일도 없고 엄마랑 단 둘이 하니 재미도 없지." 

"그럼 나중에 한국에 가면 사람들이랑 어떻게 이야기를 할거야? 한국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고, 한국말을 써야하는데?"

"한국에 가면 손이나 몸으로 말할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몸짓으로 할 수 있어."

커다란 돌덩이가 마음과 머리에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에게 한글은 지금 당장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공부였다. 하긴 학교에서 공부할 때,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 때 한국어는 필요가 없다. 집에서 한국어로 나누는 대화는 늘 한정적이다. 그나마 다양한 한국어 단어와 표현을 듣고 습득하는 시간이 책 읽는 시간인데 그마저도 영어책을 한글책보다 더 자주 보게 됐다.

아이에게 한국어는 어떤 언어여야 할까? 엄마 아빠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언어, 아이가 나고 자란 시간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같은 언어, 언젠가 돌아갈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속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언어이다.

아이에게 한글 공부는 어때야 할까? 여덟 살이 됐다고 무조건 한글을 잘 쓸 수 있어야 할까? 한글은 읽고 쓰지 못하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면 이해하고 느끼기를 즐기는 아이에게 필요한 한글 공부는 무엇일까? 

나의 공부가 아닌 아이의 공부, 나의 목표가 아닌 아이의 목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습의 첫 시작이 아닐까. ⓒ김보민
나의 공부가 아닌 아이의 공부, 나의 목표가 아닌 아이의 목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습의 첫 시작이 아닐까. ⓒ김보민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을 버렸다. 여덟 살 상반기에 무조건 아이가 한글을 읽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은 아이가 아닌 나의 목표였다. (아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목표를 내가 대신 세워준 셈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계획을 버렸다. 언제 한국에 돌아가 살 지도 모르는데 그 날을 위해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하는 것은 내가 60세 이후의 삶을 위해 매일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살아온 세월이 있어 고려할 수 있는 계획이지만 아이는 그런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무리다.) 나와 함께 공부를 할 때 아이의 태도에 대한 지적을 그만하기로 다짐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알기에 집에서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잔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고 우리 사이가 멀어져서는 안 된다.) 

현실적인 목표와 배움의 과정이 필요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읽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한글 교재는 하루에 1장, 15분을 넘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한글을 배운다. 첫 5분은 복습을 하는데 복습 시간이 아니라 예습 시간처럼 보일정도로 아이는 헤맸다. ‘아, 야, 어, 여’에서 시작해 ‘라, 랴, 러, 려’까지 오면서 ‘다, 댜, 더, 뎌’에서 아이 눈이 반짝였다. 모음의 패턴에 익숙해지고 자음에 따라 소리가 바뀔 뿐 입 모양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오늘도 아이는 한글을 배운다. 끝이 없는 이 여정을 여유를 가지고 즐겨보자고 둘이서 다짐한다. 이제 시작이다.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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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 2021-06-17 15:14:12
싱가포르 이직 준비하며 구글링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칼럼을 다 읽어버렸습니다. 좋은 글 감사하고, 가족분들 모두와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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