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자기 물건을 가지고 오는 아이
어린이집에 자기 물건을 가지고 오는 아이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1.06.23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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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왜 아이는 물건을 가져오게 됐을까?

아이의 주머니에서 잘잘한 장난감이 나옵니다. 어린이집에 장난감을 가지고 오면 분쟁의 원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가정의 장난감이나 물건을 가지고 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유난히 매번 무언가 챙겨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마음에서 가정에서 물건들을 챙겨올까요? 우리는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어린이집에 물건을 가지고 오는 아이

오감놀이가 끝나고 아이들의 옷을 갈아입히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의 바지를 내리는데 무언가 후두두두 주머니에서 쏟아집니다. 작은 장난감과 블록 조각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이게 뭐니?”

내가 묻자 옆에 계신 선생님이 먼저 대답합니다.

“원장님, 매일 가지고 와요. 이런 거 가지고 오지 마라고 해도 가지고 오네요.”

선생님의 표정에는 난감함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이어진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아이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온지 꽤 시간이 지난 듯합니다. 두어 달 전부터 주머니에 자잘한 물건들과 동전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놀이하다가 꺼내서 분쟁이 되거나 분실이 될까봐 아침에 확인해 가방에 넣어놓도록 하고 있는데 그날은 아이가 이야기해주지 않아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런 거 계속 가지고 오면 원장님이 ‘어머 나에게 주는 선물인가보다.’ 생각하고 갖고 싶어 할지도 몰라. 다음번에 가지고 오면 원장님 줄 수 있어?”

아이가 말을 한참 머뭇거리다가 “네”라고 합니다. 내심 ‘아니오, 다음부터 가지고 오지 않을래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지라 당황한건 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이는 또 주머니가 두둑한 채 등원했습니다. 어떻게 하나 가만히 보니 별일 없는 듯 놀이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생각이었나 봅니다. 놀이가 시작되고 아이가 선생님에게 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왔다고 늘여놓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선생님 손을 잡고 원장실로 왔습니다.

“이전에 약속하셨잖아요. 원장님 드리고 싶었나봐요.”

설마 이렇게 진짜 원장님에게 갖다 드리게 될지 몰랐던 아이의 표정은 밝지가 않습니다. 머뭇머뭇 주머니에서 꺼내 내 책상위에 올려놓고 가는 아이의 표정이 곧 눈물이라도 쏟을 듯 어둡습니다.

“고마워. 잘 가지고 놀게~.”

별것 아니라 생각했던 이런 일이 두세 번이 넘어가자 아이가 담아놓고 간 상자를 보며 생각을 했습니다. ‘왜, 도대체 왜 아이는 나에게 가지고 올 줄 알면서도 주머니에 무언가 가지고 올까.’

아이들은 어떤 마음에서 가정에서 물건들을 챙겨올까요? ⓒ베이비뉴스
아이들은 어떤 마음에서 가정에서 물건들을 챙겨올까요? ⓒ베이비뉴스

◇ 자랑하고 싶어서 가져오는 것일까?

어떤 물건인지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꼬리가 떨어져 나간 작은 공룡 피규어, 클립하나, 100원짜리 동전 두 개, 누나의 머리핀에 붙어 있을 법한 작은 리본, 문구점앞 뽑기에서 뽑았을 법한 플라스틱 장난감 조각, 장난감 자동차의 바퀴하나, 구깃구깃 구겨진 작은 색종이 조각.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빼고는 별로 귀해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어떤 용도로 가지고 오는지 묻자, 딱히 용도는 없다고 했습니다. 흔히 아이들이 가정에서 물건을 가지고 오는 이유인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목적’도 아닌 듯하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랬다면 좀 더 다른 아이들이 관심을 보일만한 물건들을 가져왔을겁니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이것 봐라, 나 이거 있다~!’라는 자랑의 의미로 집안의 장난감이나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면, 주변인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겁니다. 부모의 언어습관을 돌아보고 지지의 표현들을 좀 더 많이 해춰야 한다고 무언가 잘해서 하는 칭찬 외에도 자는 시간 오붓히 둘이 누운 자리에서 나누는 존재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보라 상담해드렸을 듯합니다. 선생님에게도 아이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충분히 너는 사랑받고 있음을 알 수 있게, 거듭 인정의 칭찬을 해주라고 조언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랑할 만한 물건도 아니었고, 교실 내에서 딱히 자랑을 하는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몰래 무언가 챙겨가는 아이’들을 상담할 때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은 아이의 환경이 너무 엄격하지 않나 하는 부분도 점검해봅니다. 가정이나 학급 내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과 원칙이 있어 아이가 자발적으로 무언가 하는 것에 제한이 있는 경우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몰래 몰래 장난감등을 챙겨 넣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가정 분위기와 담임선생님의 성향으로 보아 딱히 그런 이유도 아닌 듯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것은 아이의 ‘불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불안이 불러오는 소유욕이 있습니다. 자폐아아이들이 양손에 길다란 막대기를 꼭 붙잡고 있는 것도 강박이라고 표현하는 불안의 한 요소가 그 원인이기도 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불안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영아들을 생각해보면 어린이집에 첫 등원 시 집에서 자기에게 편안함을 주던 애착이불을 들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고, 집에서 베던 낡은 베개가 없으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깔끔한 새 베개를 사주어도 굳이 집에서 사용하던 낡은 베게와 이불을 가지고 와서 낯선 어린이집에서 안정감을 찾고자 무한 애를 씁니다.

아이가 가정에서 여러 가지 장난감 조각과 동전, 불필요한 플라스틱조각들을 한가득 주머니에 넣어 오는 이유는 ‘불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두 살 위 형은 위에서 말한 정말 오래 사용해서 너덜너덜해진 낡은 이불을 만 1세, 2세를 거쳐 만 3세 봄이 돼서야 그만 가지고 올 수 있었던 아이였습니다. 유난히 어떤 활동을 하거나 선생님과 단둘이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흔히 말하는 ‘동공지진’을 보여주는 불안이 높은 아이. 한 살 위 누나 역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불안의 수준이 살짝 높은 아이였습니다. 원내에서는 지나치게 바른 행동을 하려고 애쓰는 반면 어느 날 부모가 보내준 동영상에는 전혀 다른 고집쟁이 아이가 담겨있어서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만들었던 아이가 둘째 누나였습니다. 부모의 양육태도보다는 기질상 불안이 높은 집안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 도벽은 아닌지 걱정하는 부모님

아이가 왜 그런지 대충 짐작을 하고나서 부모와 통화를 했습니다.

아이가 이런 저런 피규어와 쓸모없어 보이는 플라스틱 조각들을 챙겨와서 원장님에게 주기로 했는데, 이게 두 번 세 번 반복이 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혹시 두어 달 전부터 시작된 아이의 행동을 가정에서도 알고 계신지 물었습니다. 부모님은 어린이집에 그런 것들을 들고가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원장님, 도벽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할아버지 자동차에서 동전 몇 개를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제가 나쁜짓이라고 엄청 혼냈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죠?”라는 말이 돌아왔다.

"도벽이라니요." 말을 꺼낸 내가 더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 4세 아이가 가정에서 플라스틱 조각 몇 개, 망가지 피규어들을 가지고 온다고 ‘도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절대, 그러해서도 안 됩니다. 유아기의 아이들에게 ‘도벽’이라고 쉽게 이유를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내가 본 아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살짝 높은 불안이 이유가 되어 주머니에 무언가 채워야 안정감을 찾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아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으며, 그게 틀리거나 잘못한 일이라고 몰아세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연년생으로 세 명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에 대한 치열함이 마음 한 켠을 아리게 합니다. 얼마나 힘들까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고만고만한 형제자매끼리 이리저리 치고, 치이며 자라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여태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부모’의 시간을 제대로 가져본 적 없을 듯한 부모의 삶도 얼마나 지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아이들을 키워내는 과정 과정이 행복이 돼 주어 힘든 순간을 잊게 만들기도 하지만, 세 명의 아이를, 그것도 터울이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부모가 오롯히 키운다는 것은 힘든 일이 맞습니다.

최근의 가정환경에서 변화된 부분은 없느냐고 묻자, 부모님은 두어 달 전부터 잠자리 분리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2층 침대를 구입해 세 명의 아이들을 별도의 방에서 자는 연습이 시작되었고 가정에서는 매일 칭찬받을 정도로 잘 분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누나와는 떨어지기 힘들어해서 아직 부모와 자고 싶은 일곱살 누나가 부모님방으로 가기라도 하면 울음이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누나가 있으면 밤새 깨지 않고 잘 잔다고 했습니다. 처음 시도한 잠자리 분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가는듯 했는데 이런 변수가 나타난 모양입니다.

◇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아이의 행동

불안이 살짝 높았던 아이가 이런 환경의 변화로 나름 스트레스를 조절하느라 주머니가 불록했다고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스칩니다. 무조건 안된다고 이야기하거나 혼내서 그만가져오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되겠지요.

부모에게는 무척 힘든 일인 줄 알지만 ‘불안’은 채움으로 조금씩 개선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를 야단치는 것 혼내는 것 말고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채워 넣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방향으로는 ‘어린이집에서는 이런 것들이 없어도 잘 놀 수 있어’라는 신념을 심어주는 것, '많이 불안하구나' 하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는 것도 필요해보입니다.

도벽이라고 해석하기에는 연령상 무리가 있으니 '도벽'인 것 같다는 부모의 생각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굳이 따져 묻지 않고 지나가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부모와의 대화가 불안을 낮추기 위해 부모 몰래 무언가 챙겨간 아이를 더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전했습니다. 혼날 일은 아니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과 중에 하나일 뿐인 일로 가볍게 생각하셔도 좋으며,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채워넣는 과정’을 우리 함께, 가정에서도 원에서도 해본다음 아이의 변화를 관찰해보는 것으로 상담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퇴근하려고 일어서는데 아이의 상자에 들어있는 동전과 작은 피규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른들이 부적을 들고 다니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한 번 더 눈을 맞추고, 한 번 더 손을 잡고, 한 번 더 웃어줘야겠습니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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