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개학연기 사태에도 유아교육 학계는 ‘묵언수행’
초유의 개학연기 사태에도 유아교육 학계는 ‘묵언수행’
  • 이중삼·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3.0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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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 학회장들에게 물었더니… 답변 피하거나 '한유총 논리' 반복

【베이비뉴스 이중삼·최규화 기자】

4일 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에 참가한 한 사립유치원.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4일 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에 참가한 한 사립유치원.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4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이 하루 만에 끝났다. 유치원 대란이 우려됐지만, 정부의 초강경 대응과 학부모들의 비판 여론에 막힌 한유총은 그날 오후 5시 개학 연기 투쟁 철회 방침을 발표했다.

정치권은 물론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학부모 당사자들까지 사상 초유의 유치원 개학 연기 사태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 유아교육 전문가로 정책 입안이나 사회적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학계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베이비뉴스는 4일부터 이틀간 유아교육학회 다섯 곳의 현직 학회장들에게 개학 연기 사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학회의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 자격이라는 점을 전제로 현 사태에 대한 분석을 부탁했다. 하지만 다섯 명 중 세 명은 답변을 회피했다. 그 중 한 명은 "답변할 분위기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입장을 밝힌 두 명의 학회장 중 먼저 A 학회장은 정부에 소통 의지를 주문했다. 

그는 “교육기관으로의 사립유치원 위상이 땅에 떨어진 지금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유아교육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이제는 정부가 사립유치원을 포용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며, “사립유치원이 유아교육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측면에서 사립유치원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절차가 있을 때 유아교육의 정체성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유총의 책임을 지적하는 발언은 없었다. '정부의 소통 거부가 개학 연기 사태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한유총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한유총은 4일 '개학 연기 투쟁 철회 보도문'를 통해서도 "교육부와 민주당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제대로 된 협의조차 불가능했다"며 마지막까지 사태의 책임을 정부에게 전가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견해를 밝힌 B 학회장은 “정부는 사립유치원에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말은 지금까지 개인 재산을 넣어 운영했던 원장들에게 월급만 받고 살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 재산을 넣어 운영하는 원장의 경우 생존권 보장을 위해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 정부는 공립유치원을 추진할 때 예산 부족으로 사립에게 유아교육을 맡겼다”면서 “사립유치원 원장의 경우 하루아침에 개인 재산으로 세운 유치원을 정부가 보조금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재산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니까 (교육부) 장관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유재산 보장'이라는 주장 역시 한유총이 이른바 '유치원 3법'을 거부해온 오랜 명분이다.  

B 학회장은 끝으로 “정부도 잘못한 게 있고 사립유치원단체도 잘못한 게 있다”면서 “해결을 위해서는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대화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학계의 침묵 두고 "학계 보수화" "취업률 걱정" 등 분석도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결국 다섯 명의 학회장 가운데 세 명은 답변 자체를 피했고, 답변한 두 명 역시 한유총의 입장을 대체로 옹호하거나 원론적인 '양비론'을 이야기했다. 사상 초유의 개학 연기 사태에도, 한유총 쪽의 책임을 먼저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개학 연기 사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이후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방안'이나 '유치원 3법' 등으로 여론이 집중됐을 때도 일련의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밝힌 유아교육학회는 한 곳도 없었다.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주제에 대해 어째서 전문가들이 오히려 말을 아끼는 것일까. 익명의 한 유아교육 연구자 C 박사는 우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수 없는 유아교육 학계의 분위기"를 지적했다. 주류학계의 보수화가 여러 가지 '다른 목소리'들이 나올 여지를 줄여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학계가 유아교육 정책 실패의 장본인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더했다. C 박사는 “과거부터 유아교육 교육과정 수립에 참여해온 사람들이 지금의 학회장들”이라며, “(사립유치원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것은)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이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는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교육학 연구자 D 박사는 좀 더 단순하지만 분명한 이유를 지적했다. 바로 "교수들은 자기 과 학생들의 취업 때문에 유치원 원장들한테 할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D 박사는 “이미 대학의 최고의 목표는 취업이 됐는데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유아교육과) 학생들을 취업을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며, “(교수들이 한유총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은) 정치성향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학생들 취업률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5일 한유총의 개학 연기 집단행동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백운희 공동대표는 유아교육 학계의 침묵에 대해 "교육철학의 빈곤"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백 공동대표는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몰고 온 초유의 개학 연기 파동을 경험하며 우리 사회는 유아교육 종사자들의 아동인권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부재하며 교육철학이 얼마나 빈곤한지 체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계는 유아교육이 개별 아동의 인권과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함은 물론 해당 공동체의 진보와 존속을 위한 방향성을 만들어가는데 역할을 해야 함에도 이처럼 침묵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없다”면서 “유아교육 정상화를 위한 학계의 자성과 사립유치원 비리문제가 몰고 온 상황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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