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화된 만 5세 학제 개편안, 무엇이 진짜 문제였을까?
백지화된 만 5세 학제 개편안, 무엇이 진짜 문제였을까?
  • 기고=신현정
  • 승인 2022.12.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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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유아교육: 앞으로, 아프로(兒Pro)] 4. 타 학제와 차별화된 유아교육: 유아는 놀이하며 배운다!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었지만 아직까지 유아교육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유아교육의 근간을 훼손하는데까지 이르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이들이 1년 일찍 초등학교로 진학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제개편안은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일반인들과 정책입안자들의 유아교육에 대한 인식부족을 여실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합, 즉 '유보통합'이라는 커다란 숙원과제를 두고서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유아교육 정책을 바로세우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베이비뉴스는 한국유아교육학회와 함께, 앞으로 유아교육정책의 근간이 될 유아교육 철학에 대해 여섯 차례에 걸쳐 기획연재를 진행하면서 유아교육의 본질과 유아교육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유아들에게 놀이는 단순히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게 끝이 아니다. ⓒ베이비뉴스
유아들에게 놀이는 단순히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게 끝이 아니다. ⓒ베이비뉴스

최근 교육부에서는 국가가 질 높은 교육을 ‘적기’에 ‘동등’하게 제공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출발점에서 격차 없이 모든 어린이가 시작할 수 있도록 1년 일찍 초등학교로 진입하는 학제 개편 방향을 논의하겠다고 하였다(교육부 보도자료, 2022.07.29.). 만 5세를 대상으로 하는 학제 개편안은 백지화되었으나 우리는 이번 정책 제안에서 유아교육의 주체인 유아의 삶과 배움에 대한 이해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아기부터 차별 없이 공평하게 출발하여 건강한 미래 인재를 육성하려면 유아의 삶의 일부이자 모든 발달의 매개인 ‘놀이’를 통해 전인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에서는 유아의 놀 권리를 명시하며 유아의 건강과 행복에 핵심인 놀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조기교육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영유아기부터 학습을 강조하여 놀이를 단지 학습을 돕는 휴식으로 이해하거나 교육 이외에 자투리로 활용하는 부수적이고 이차적인 시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놀이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오해는 유아들의 진정한 배움의 통로가 되는 놀이를 방해하고 있다. 

진정한 놀이에는 재미와 즐거움, 자유로움, 성취감, 만족감, 평안함과 같은 긍정적 정서가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놀이는 외부의 압력과 명령이 아닌 내적 동기에 의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발성과 주도성을 가지고 있어 자기 목적적으로 생각과 감정을 이끌 수 있다. 또한 놀이하는 유아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만족감을 느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놀이 방법을 자유롭게 변화시키며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한다. 다음에 소개될 유치원 만 5세 유아들의 구슬 길 만들기 사례는 유아의 놀이가 배움의 내용이자 방식이고 배움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미로 구슬 길 놀이를 하던 유아들은 몇 명만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놀잇감에 갈등하며 많은 친구가 같이 놀이할 수 있는 큰 구슬 길을 만들기로 하였다. 유아들은 큰 구슬 길을 만들며 대근육발달과 운동기술을 연습하게 되었고, 구슬의 속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고민하고 구슬과 구슬 길의 속성을 파악하면서 경사로의 각도와 굴곡, 구슬의 크기와 모양, 무게에 따라 구슬이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이에 몰입한 유아들은 자발적으로 주변을 탐색하고 탐구하며 예측과 실험을 반복하면서 문제해결력과 물리적, 과학적 사고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구슬 구르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구슬 길의 기울기를 수정하여 추가한 모습. 구성주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힘 기르기: 상상하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유아. 2021년 구성주의 유아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자료집. pp.87-110. ⓒ김정준, 신현정(2021)
구슬 구르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구슬 길의 기울기를 수정하여 추가한 모습. 구성주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힘 기르기: 상상하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유아. 2021년 구성주의 유아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자료집. pp.87-110. ⓒ김정준, 신현정(2021)
키 작은 친구들도 다치지 않도록 엘리베이터형 구슬 길을 만든 모습. 구성주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힘 기르기: 상상하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유아. 2021년 구성주의 유아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자료집. pp.87-110. ⓒ김정준, 신현정(2021)
키 작은 친구들도 다치지 않도록 엘리베이터형 구슬 길을 만든 모습. 구성주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힘 기르기: 상상하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유아. 2021년 구성주의 유아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자료집. pp.87-110. ⓒ김정준, 신현정(2021)

유아들은 원하던 큰 구슬 길을 만들었지만 높은 곳에 위치한 출발 구멍 안으로 구슬을 넣기 위해 올라가다가 다치는 친구가 발생하고 말았다. 유아들은 키 작은 친구나 동생들도 안전하게 놀이할 수 없을까 궁리하다가 구슬을 담아 올리는 엘리베이터 형태의 구슬 길을 만들게 되었다. 유아들은 자신과 타인의 감성과 조망에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존중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큰 상자로 만든 엘리베이터는 지지대가 부실해서 자꾸 쓰러졌지만 이때도 유아들은 구슬 길 만들기에 완전히 몰입되어 실패에 좌절하지 않았다. 대신 목표를 향해 끈기를 발휘하여 계속 생산적인 놀이를 이어가며 개개인의 유능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책임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유아들에게 놀이는 단순히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게 끝이 아니다. 신체를 발달시키고 정서를 안정시키며 또래와의 사회관계와 의사소통 능력, 인지발달 등 다방면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게 되었다. 놀이가 유아에게 지속적인 배움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성인 중심적인 지시와 강요가 아닌 유아 스스로 흥미 있는 놀이를 다각적으로 생각하여 놀이할 수 있어야 하며 놀이가 무르익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요구된다. 더불어 놀이 과정에서 유아가 학습과 배움의 주체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기다려주는 교사가 필요하다. 

유아교육은 타 학제와 달리 교과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목별로 분절된 수업이 진행되지도 않는다. 이는 유아의 독특한 발달 특성과 학습 방법을 고려한 것이다. 국가적으로 질 높은 교육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해답은 ‘유아는 놀이하며 배운다’라는 명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유아의 자연스러운 놀이가 발달과 배움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성인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조화된 틀 안에서 정해진 놀이시간과 주제, 내용, 방법에 따라 놀이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유아가 자유로움과 주도성을 가지고 확장해 나가는 진정한 놀이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유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와 행복을 보장하면서 미래사회를 준비하고 견인할 동력이 되는 놀이가 살아있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공교육 체제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만 5세를 대상으로 한 학제 개편은 ‘놀이’를 보편적인 가치로 수립하고 있는 ‘유아학교’에서, 유아의 발달과 놀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신념을 가진 전문성을 갖춘 ‘유아교사’에 의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한국유아교육학회 홍보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현정 총신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가 보내온 기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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