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죽어도 될 내 사람이... 갔구나"
"안 죽어도 될 내 사람이... 갔구나"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3.03.14 17:2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 '남은 자의 슬픔' 최윤수 씨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하늘로 보내는 것만큼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있을까. 한평생을 약속한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밀려드는 그리움과 외로움은 남은 자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특히나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선 견뎌내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

 

최윤수(41) 씨는 예고 없이 떠나간 아내의 빈자리를 술로 대신 채우며 버텨왔다. 호흡곤란으로 몇 해를 고생하다 폐가 서서히 굳어가더니 끝내 원인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 아내 없는 세상을 외면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일만 해왔던 그다. 그때까진 아내의 죽음이 “정말 운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가 죽고 1년 뒤인 2011년에서야 아내의 죽음이 ‘운’ 탓이 아니라 ‘가습기살균제’ 탓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가 죽은 지 3년이 되던 지난 12일, 최 씨는 아내가 있는 곳을 찾았다.
 
◇ 가습기살균제 탓에 죽은 아내를 찾다

 

“작년 아이들과 왔을 땐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오늘은 날이 참 좋네.” 곧 비가 퍼부을 것 같은 흐린 날씨 속에서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수원에서 한 시간 반을 달려 올해 처음으로 아내가 자리한 경기도 양평의 하늘숲추모공원을 찾았다. 이날은 아내가 떠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평일이라 그런 지 이곳을 찾은 이는 최 씨 뿐이었다.

 

최 씨는 차 트렁크에서 성경책을 꺼내들더니 단숨에 계단을 넘어 산길로 올라갔다. 기자가 숨이 차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단걸음에 산을 오른 그는 한그루의 참나무 앞에 멈춰 섰다. 이 나무에는 ‘주님 안에서 편히 쉬세요’라는 글자 밑으로 최 씨의 아버지 이름과 아내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나무패가 붙어있었다. 이곳 추모공원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는 2년 가까이 기다린 뒤, 아버지와 아내를 한 나무 아래 함께 묻었다.

 

아내의 기일, 이미 누군가 왔다 갔는지 시들해진 노란 소국이 나무 앞에 놓여 있었다. “처형이 왔다 갔나 보네요.” 그는 나무 앞에 성경책을 내려놓고 선채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양 손을 맞잡은 그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최윤수 씨의 아내와 아버지가 함께 묻혀 있는 나무. 나무 앞에는 아버지와 아내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나무패가 걸려 있다. 최 씨의 아내는 가습기살균제로 세상을 떠났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최윤수 씨의 아내와 아버지가 함께 묻혀 있는 나무. 나무 앞에는 아버지와 아내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나무패가 걸려 있다. 최 씨의 아내는 가습기살균제로 세상을 떠났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어느 병원도 '왜'라는 물음에 답하지 못해 

 

아내는 5살, 3살 두 아이를 남겨 놓고 지난 2010년 3월 12일 눈을 감았다. 첫 아이를 낳고부터 아내는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2007년 아주대병원에 입원하면서 산소 치료 등을 받기 시작했고 퇴원하고는 먹으라는 약도 처방받아 먹었다. 그러나 잠시 뿐, 아내의 호흡곤란 증세는 나날이 심해졌다. 아내가 아픈 이유, 치료하는 병원에서도 알지 못했다. 그저 “환경문제일 수 있으니 환경을 바꿔보라”는 말만이 돌아왔다.

 

이후 의사인 사촌 여동생의 소개로 서울아산병원을 찾았지만 전 병원과 마찬가지로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원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담배를 피우니 간접흡연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더라고요. ‘금연해라’, ‘침대, 커튼, 소파 등 환경을 바꿔라’는 말 뿐이었죠. 무당(이 하는 말) 같은 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사 말대로 침대, 커튼, 소파 등을 전부 버렸다. 혹시 새집증후군일까 싶어 입주한 지 2년도 안 된 집을 두고 낡아서 쓰러질 것 같은 30년 된 주택을 월세로 1년 계약해 들어가 살기도 했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갈 계획도 했다. 아내의 건강만 괜찮아진다면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더욱 심각해진 증세는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듯 했다. 아내의 증세가 심해질수록 안방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최 씨는 “안방 문을 딱 열면 가습기를 강하게 틀어놔 방안이 온통 수증기로 뿌옇게 됐다. 아내는 몸이 더 아파질수록 (습도조절을 위해) 가습기를 더 틀었다. 그 때 문득 ‘혹시 너무 습해서 곰팡이 때문에 아내 몸이 나빠지는 건 아닐까’란 생각에 병원에 물어보기도 했지만, 환경부터 빨리 바꾸라는 말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아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원도, 최 씨도 어느 누구도 끝내 아내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정확한 진단은 없었다. 과민성폐렴, 간질성폐렴, 원인미상 폐질환 등 보험문제로 서류를 뗄 때마다 아내의 진단명은 달라졌다. 그저 운이 없어 단명했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2011년 방송을 통해 아내의 죽음이 가습기살균제와 연관돼 있단 사실을 알고는 억울함에 치를 떨었다.

 

그는 “뒤늦게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안 죽어도 될 내 사람이 어처구니없이 갔구나 싶어 너무나 억울하다”고 털어놨다.

 

◇ 사과도 보상도 없는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차라리 몰랐으면 편했을 것을···. ‘아이들 불쌍해서 어떡하느냐’, ‘남은 인생 어떡하느냐’며 혀를 차는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었다. 아내가 죽은 사실을 잊기 위해 “일이 힘들어서 집에 들어가면 잠자느라 정신없는 일”이라는 친한 형의 소개로 생전 먹어본 적 없는 닭발 장사를 시작했던 그다. 경제적인 이유보다도 아무 생각 없이 바쁘게 일할 수 있겠단 생각에 새벽까지 정신없이 일해 왔다. 그런데 마트에서 몇 봉지 가득 사서 날랐던 옥시레킷벤키저(대표 거리브 제인)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사실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안방 가득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던 수증기 속에 있던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지 최 씨는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란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마음이··· 참··· 어떡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후 아내가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샀던 마트에 찾아가 구매 내역서를 받았으나, 기간이 지나서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가습기살균제 구매 내역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아이를 낳고 자주 찍었던 사진들 중에서 가습기살균제가 우연히 찍혀 있는 사진을 발견하고는 이를 피해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기업은 지금껏 사과 한 마디도 없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2012년 10월 8일자로 집계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는 사망 78명, 폐질환 147명, 폐심장이식 7명으로 총 232건이다. 거기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접수된 사례까지 합치면 약 350건에 달한다. 최 씨처럼 원인을 모르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까지 더하면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더욱 심각하지만, 이들에 대한 보상이나 사과는 전혀 없었다.

 

최 씨가 아내가 묻힌 나무 옆에 앉아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 최 씨는 “뒤늦게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안 죽어도 될 내 사람이 어처구니없이 갔구나 싶어 너무나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최 씨가 아내가 묻힌 나무 옆에 앉아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 최 씨는 “뒤늦게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안 죽어도 될 내 사람이 어처구니없이 갔구나 싶어 너무나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현재 최 씨의 몸무게는 63kg. 장사를 시작하면서 10kg 넘게 빠졌다. 두 아이들은 의왕 어머니 댁에서 살고 있다. 새벽 1시 혼자 덩그러니 누워 잠을 청하려 해도 새벽 6시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눈이 피곤해 아파와도 잠을 잘 수가 없다. “가습기살균제 일을 알고부터는 잠을 못 잔다”는 그는 결국 술의 기운을 빌려야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다고.
 
“나중에 나도 죽거든 여기 묻힐 걸 생각해서 이 나무를 골랐죠.”

 

최 씨는 아내가 있는 나무 곁을 서성거리다가 나무 옆에 앉아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혼자 와서 펑펑 울다가는 이 곳, 그는 아내 곁에 묻히길 원했다. 나무는 연리근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연리근은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합쳐져 한 그루가 된 나무를 말한다. 아내가 있는 나무도 뿌리는 하나, 줄기는 두 갈래로 뻗어있었다. 이 나무는 최 씨가 직접 고른 나무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부부의 연, 부부의 뿌리는 하나이길 바라는 최 씨의 바람처럼 나무는 꼿꼿하게 서 있었다.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jhwa**** 2013-03-15 09:38:00

마음이 너무아프네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가습기 살균제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