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볍씨 아빠의 육아일기
수요일(17일) 저녁. 잘 돌아가던 세탁기가 갑자기 멈췄다. 산하 빨래를 돌리고 있는데 말이다.
부랴부랴 AS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상담원이 친절하게 이렇게, 저렇게 하시라고 알려준다. 물때가 끼여서 그럴수도 있으니 물때 제거를 하라고 해서, 열심히 청소를 했는데 그래도 안된다. 청소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서 AS센터는 영업끝. 다음날 아침 수리기사를 예약했다. 어제도, 오늘도 기사가 왔는데 회로 고장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세탁기는 고장중.
덕분에 요 며칠 동안은 열심히 손빨래를 하고 있다. 물론 힘이 많이 드는 우리 빨래는 집한구석에 쌓아놓고 있다. 그리고 시급하게 빨아야 하는, 산하의 가제수건과 속옷 등만 손빨래를 한다. 손으로 빨고, 헹구고, 삶고, 헹구고, 건조대에 널기까지. 이런저런 반복된 육체 노동을 하면서 드는 생각. 정말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린 참 편리하게 살고 있구나.
지금은 너무나 풍족하다. '돈'만 있으면 너무나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가사 노동에서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육아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육아 용품의 세계는 끝이없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용어들과 장난감, 기타 등등의 제품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모두 특정한 무언가에 특화되어서 편리함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편리하게 사는 것만큼 다른 생산적인 가치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내 몸이 편리해진만큼 아이를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애정을 갖는 것일까? 아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 아이들이 크면, 우리보다는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뭐 이런 생각을 손빨래를 하면서 해봤다.
자본주의 발전은 분업의 발전과 비례한다고 어떤 유명한 경제학자가 말을 했다. 그런데 분업의 발전은 인간 노동의 소외를 가져왔다. 나는 열심히 나사를 조이지만, 무엇을 위해 나사를 조이는지, 무엇을 만드는지,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하게 됐다. 즉 내가 하는 노동은 단지 돈을 벌기위한 행위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됐다는 것이다.
육아에서도 비슷해졌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육아는 내 몸의 힘듦을 통해 아이가 성장하는 것이라고. 나의 다양한 몸운동, 몸활동의 에너지가 아이에게 전이된다는 것이다. 내가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행위들, 아이를 위해서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행위들, 그리고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이런저런 환경을 만드는 행위들은 모두 아이의 정신과 육체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일 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육아에서도 분업이 심화됐다. 아이의 더 많은 육체 놀이는 장난감이 대체하고 있다. 부모와 다양한 관계맺은 문화센터 혹은 어린이집이 대체하고 있다. 아이를 위해 만드는 (맛이 있든, 없든) 음식은 가공식품이 대체한다. 그리고 아이를 위한 환경은 기타 등등의 육아용품이 대체한다. 부모의 온정보다는 '돈'의 힘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과거와 현재의 육아를 직접적으로 비교해서 어느게 나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린 너무 쉽게 나의 육체 노동을 포기하면서, 결과적으로 아이와의 관계맺음을 그렇게 '소비'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소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세탁기 고장으로 말미암아, 손빨래 나흘동안 뭐 이런 생각을 해봤다. 덕분에 나의 허리는 점점 아파온다.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