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아이는 놀면서 세상을 배운다
세월이 암만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상상놀이를 하며 자라는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상상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마법사, 공주, 영웅 등 수많은 인물 또는 대상이 되어 끊임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끝이 없는 놀이들을 펼쳐내곤 한다.
우리 집 세 아이들도 정말 많은, 무수한, 쉼 없는, 끈질긴, 상상놀이를 했다. ‘끈질긴’ 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세 아이들의 끝날 줄 모르는 상상놀이가 아무리 아이를 배려하고, 그들의 동심을 이해하고, 좋은 엄마가 되고자 노력했던 나에게도 때로 너무 힘이 들고, 때론 무서웠고, 화가 나고, 또 그런 아이들이 한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한번 시작하면 한 시간은 약과요 두 시간은 기본인 상상놀이에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 그 허구의 세계에 대한 즐거움을 잃어버린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있지도 않은 괴물에 놀라고, 형체도 없는 음식을 맛나게 먹고, 뵈지도 않는 화살을 맞고 쓰러져야 했던 시간들! 가끔씩 장난감 칼을 들고 싸우기도 했는데, 와~, 어쩜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지!
뭐,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하지만 이 나이에, 이렇게 힘들게 장단을 맞춰주고 나면 보람이라는 것도 좀 있어줘야 하는데, “이제 많이 놀았으니까 그만할까?”라고 물을 때마다 절대 그냥 수긍하는 법이 없는 아이들! 이렇게 열심히 놀아주는 엄마에 대해 감사해 하기는커녕 더 놀고 싶다고 대성통곡 하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이렇게 울릴 거, 괜히 시작했나봐!’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들의 상상놀이가 무서울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한참 개를 좋아하던 시절, 아이들끼리 서로가 개가 되기도 하고, 주인이 되기도 하여 털실을 목에 묶고 산책이랍시고 개처럼 끌고 다닐 때, 여차하여 힘 조절을 못해서 목이 조여 버리는 것은 아닐까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그래서 산책하는 개와 주인 옆을 나도 함께 졸졸 따라다녔다.
또 얼마간은 자기가 개라며 네 발로 걷고, 그릇 속의 음식을 입으로만 먹으며, 버젓이 할 줄 아는 말도 낑낑거리거나 멍멍거리는 소리로만 의사를 표현하던 시절, 이거 정말 정신적인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여 얼마나 또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아이가 셋이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아서 그런지 세 아이들은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상상놀이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러던 것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그러니 얼마나 긴 세월동안 상상놀이를 했는지! ‘요즘은 좀 뜸하군.’ 싶으면 어느새 또 다시 상상놀이를 해대는데 아~ 그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암담하고 착잡했던 시간들! ‘허구한 날 저러고 놀다가 나중에 공부는 잘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이제 좀 그만해!”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소리 지른 죄책감에 ‘나는 신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어.’라는 말로 나 자신을 위로하기도 수십 번.
그런 고민들과 어려움, 힘든 시간들을 지나 세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때 나의 그 많은 감정들은 기우였음을 깨닫게 된다.
상상놀이를 많이 하고 자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스트레스가 적다고 한다. 또 상상놀이를 통해 여러 가지 상황을 경험하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제해결능력과 자신의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연습,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새로운 단어와 표현에 노출되어 언어구사력과 창의적인 사고력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또 상상놀이를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현재 아이가 겪고 있는 문제, 상황, 하고 싶은 것들을 알게 되어 엄마와 더 밀도 있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이의 상상놀이를 응원하자. 엄마인 내 눈에는 쓸데없고, 시간만 낭비하는, 의미 없는 행위 같아 보여도 지금 아이는 놀이라는 표현방법으로 자신을 성장시킬 아주 많은 요소들을 연습하고, 배우고 익히며, 무엇보다도 즐겁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서안정은 「세 아이 영재로 키운 초간단 놀이육아」,「리더십을 키워주는 공주박물관」,「리더십을 키워주는 우리공주박물관」을 쓴 작가이자 주부이다. 똑똑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열망에 천 권이 넘는 육아서를 읽었고, 그것을 적용하는 동안 무수한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얻었다. 현재 그 깨달음들을 나누고자 전국의 도서관 등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