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리집 보물 넷, 사람 만들기
봄이 왔다. 우리집 삼형제들은 겨울에도 바깥놀이를 즐겨하는데, 봄이 오면 잠자리채부터 들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잠자리는 아직 아기이고, 여름이 되어야 날아다닌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말이다. 따뜻한 날이 계속 이어지자, 역시나 삼형제들이 하교, 하원 후에 집에 안 들어오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올 때면 꽃잎이며 나뭇잎이며, 작은 솔방울들을 이것저것 주워와서는 엄마 머리에 꽂아주겠다고 난리를 치고, 잘 간직하겠다며 신발장에 진열해놓았다. 할수없다. 이제 두 달밖에 안 된 아기를 들처업고 삼형제와 바깥나들이를 감행했다.
엄마의 임신 후반기과 몸조리 기간 동안 아빠하고만 외출했던 삼형제, 엄마와 함께 나가자니까 좋단다. 아기를 포대기로 잘 업고, 아빠 옷을 덧입어 푹 씌워서는 제일 먼저 하교한 첫째를 앞세워, 하원하는 둘째 셋째는 가방을 멘 채로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바람이 아직 많이 불긴 하지만, 햇볕은 따사롭다. 드디어 봄이 오는구나.
아이들과 집앞 나무들 이름 맞추기를 했다. 말이 트이면서부터 가르쳐주었던 현관 앞의 주목나무, 둘째는 주먹을 내밀며, "주먹나무!" 라고 소리친다. 큰아들이 아는 체하며 "붉을 주, 나무 목! 주목나무야." 하고 가르쳐준다. 둘째도 질세라 "이 나무, 겨울에 빨간 열매 열리지~" 하며 아는 체를 한다.
아이들이 현관 앞쪽 길에 울타리목으로 심어놓은 회양목을 보며, 도장나무가 연두색 꽃이 피었다며 좋아한다. 나무가 단단해 도장을 만든다는 도장나무의 이름이 회양목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알려주었다. 주목나무와 회양목이 사계절 푸른나무라는 설명을 해주고 나니, 이내 꽃나무들이 우리를 반긴다.
제일 먼저 살구나무. 이사와서 첫 해에는 진한 향기를 맡고서 매화인가 했었는데, 도감을 찾아보니 살구나무였다. 인터넷에서 살구나무와 매화의 차이점도 찾아보았었다. 아니나다를까 여름이 되자 노오란 살구가 주렁주렁 열렸다. 큰아들은 이사와서 4년 넘게 꽃과 열매를 보아온 친숙한 살구나무. 그래도 질문을 해보면 금방 대답을 못 하고 망설인다. 노란 열매가 열리는 나무라니까, "살구나무!" 하며 소리를 질렀다.
다음으로, 역시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산수유나무를 보았다. 산수유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앞에 있어서, 늘 보는 나무라 아주 잘 안다. 가을에 무슨 색으로 열매가 열리나 퀴즈를 내니, 세 녀석 모두, "빨간색!" 이라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아이들에게 산수유 말고 노란 꽃을 찾아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개나리라고 대답하며 저쪽에 피었다고 나를 이끈다.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가 모두 우리집 정원인 양, 어디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집 앞은 아직 꽃이 많이 피지 않았는데, 남쪽 놀이터로 가보니 목련과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다. 아이들이 개나리가 별처럼 생겼다며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목련을 가리키며 뭐냐고 물어보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우리집 앞에 있는 나무이고, 희고 큰 꽃이 핀다니까, 그제서야 알아챈다. 한자를 좋아하는 큰아들을 위해 하나 더. 목련꽃들이 모두 북쪽을 향해 피기 때문에 북향화라고도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북녘 북, 향햘 향, 꽃 화!" 큰아들과 둘째아들이 큰 소리로 따라 외친다.
동과 동 사이의 골목길에 죽 심어져 있는 가로수의 이름도 가르쳐주었다. 매년 가르쳐주지만 올해는 딱 보더니 "이거, 나뭇잎 카드에 있는 나무지?" 하고 알아챈다. 많이 컸다. 메타세콰이어.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도 메타세콰이어, 메타세콰이어, 하며 중얼거린다.
조팝나무와 명자나무까지, 꽃이 핀 나무들은 여러번 반복해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며 놀았다. 아직 꽃도 피지 않고 잎도 나지 않은 산딸나무도 물어보고, 단풍나무도 물어보았다. 녀석들, 꽃이나 열매가 없으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둥글게 잎이 나고, 잎 아랫부분이 흰 색인 구상나무도 알려주었다. 둘째녀석이 많이 커서, 꽃다지, 민들레, 제비꽃을 찾아서는 신이 나서 엄마를 불러댄다. 셋째도 잘 따라다니며 꽃들을 들여다본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모래놀이도 했다. 앉아서 쑥도 캐고, 떨어진 꽃이파리들도 줍고, 개미 구멍도 파보았다. 철봉에 매달려서도 한참을 놀았다. 첫째와 둘째는 어른 키 높이의 높은 철봉에도 잘 올라가고, 셋째도 많이 커서 형들 따라 다니며 잘 놀았다. 우리 넷째도 내년 봄이면 걸음마를 하겠지. 오빠들과 함께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꽃도 따고 놀겠지. 봄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 아이들이 쑥쑥 더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뿌듯하다. 꽃이 피고 잎이 나는 좋은 봄이다. 무럭무럭 자라라, 내 보물들.
*칼럼니스트 원혜진은 3남 1녀(04년, 06년, 08년, 11년생)를 키우는 주부이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학원, 도서관 등에서 논술 강사로 일해왔으며, 커가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전업주부로 전향할 계획이다. 홈스쿨링과 자연 속에서의 삶을 꿈꾸며, 집안일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책 읽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철없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