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예술치료사 강서영의 ‘아하, 그랬구나!’ 나와 가족의 모습
어릴 때 우리의 도덕심을 강화시키기 위해 자주 들어왔던 교훈적인 이야기 중에 <금도끼 은도끼>가 있다. 나무꾼이 숲에서 나무를 베다 실수로 도끼를 연못에 빠뜨리게 된다. 그 후 산신령이 금도끼를 들고 나타나서 나무꾼에게 “이 도끼가 네 것이냐?”라고 묻는다. 나무꾼은 아니라며 자신의 것은 쇠도끼라고 밝히고, 이에 감동한 산신령으로부터 금도끼와 은도끼까지도 얻는다.
나무꾼에게 과연 쇠도끼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에게 쇠도끼는 단순히 쇳덩이로 만든 도구 이상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게 했던 수단으로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들이고 날을 유지하기 위해 연마하여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 금도끼나 은도끼가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한들 나무꾼의 입장에서 쇠도끼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금덩이를 뿌리치고 쇳덩이를 고집하는 그의 태도는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일수도 있다. 그런데 나무꾼의 선택은 “이게 나다, 나는 나무꾼이다”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타고난 성격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세상과 주변인들에게 자신을 맞춰오면서 힘들어지는지 상담실에서의 세월이 길어질수록 깊이 느끼게 된다. 명랑 쾌활한 성격과 스스럼없는 태도, 적극적이고 도전정신이 있어서 어떤 일에도 주눅 들지 않고 대범한 태도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싹싹한 사람. 우리가 일반적으로 호감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거나, 그런 친구, 배우자, 자녀를 갖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가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고 자신을 열등하게 느끼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부러워하는 특성을 모방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고유함을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자신의 고유한 특성은 열등한 부분이 되어 내면의 깊은 서랍 속으로 처박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심리적 불편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외부접촉을 점차 꺼리게 된다. 본래의 자신을 위장하는 데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차단하고자 하는 무의식의 처치가 따르는 것이다.
또 부모의 경우는 무의식으로 들어간 자신의 열등한 면을 자녀에게서 보면서 갈등이 시작되고 그것의 원인을 모두 자녀에게 돌리게 된다. 부모 자신의 원래 모습과 새로 만든 성격간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자녀에게서 드러나는 부모의 감추려 했던 면은 극대화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성향 중 열등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어 없애고 바꾸려 해왔던 세월이 길면 길수록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그런 부분을 ‘내 것’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내면의 서랍에 넣어둔 기간과, 자신의 도끼를 부정한 세월이 길었을수록 찾는 것도 알아보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라도 그것을 찾는 수고는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아이와 부모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아이의 고유함을 순수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쇠도끼가 내 것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보잘 것 없는 부분’을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금도끼 은도끼 같은 자신의 잠재력도 발휘되어 전보다 풍요롭고 만족한 삶이 펼쳐진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칼럼니스트 강서영은 예술치료사이자 청소년 상담사, 한국표현예술심치치료협회 임상감독자로서 강서영 심리상담센터(www.일산심리치료.kr)를 운영 중입니다. 심층심리를 기반으로 한 예술심리치료로 아동, 청소년, 성인들을 만나고 있으며 좋은 부모되기가 부모자신의 인격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신념과 더불어 좋은 치료 역시 치료자 자신의 인격성장에 달려있다는 믿음으로 ‘이 순간을 잘 살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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