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고은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오가는 곳은 5·6번 출구 방향으로 난 길이다. 이 길은 코엑스, 공항터널, 현대백화점, 호텔 등 시설로 가는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이다. 지역 상권에 밝은 이들에 의하면 하루에만 평균 10만 명 이상이 드나든다.
수많은 사람이 평범하게 이용하는 길이지만 유모차 이용자에게 만큼은 예외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12개의 계단 때문이다. 경사로,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이 계단은 바퀴가 있는 유모차나 휠체어로 이용하려면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본지는 2013년, 2014년 두 번에 걸쳐 삼성역 5·6번 출구로 난 이 통로의 통행 불편 문제를 보도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삼성역의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메트로 측으로부터 “구조상, 예산 문제로 경사로 및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려워 아직 검토 중인 문제”라는 답변을 들었다.
폭염 막바지였던 지난 25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을 다시 찾았다. 문제의 5·6번 출구에는 유모차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통행 불편 문제는 아직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날 삼성역을 유난히 많은 유모차가 찾은 이유는 육아박람회 때문이었다. 행사 시간 동안 유모차를 끌고 삼성역 5·6번 출구 앞까지 온 엄마들은 행사 주최·주관사인 (주)베페가 고용한 스태프 6명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올랐다.
(주)베페를 비롯해 코엑스에서 육아박람회를 여는 기업들은 몇 해 째 이 통로 이용객만을 위한 인력을 배치 중이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이고, 연중행사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이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 연령대의 각계각층이 이용하는 통로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불편이 연장되지 않을 수 있도록 시설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이지원(25, 송파구) 씨는 “행사 때문에 처음으로 유모차를 끌고 삼성역에 와 봤다. 5·6번 출구로 혼자 가서 계단 오를 엄두가 안 나서 7번 출구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8차선 도로를 건너 코엑스 동편으로 진입했다. 큰 용기와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혼자 잘 다닐 수 있는 기반 시설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미경(30, 서대문구) 씨는 “9호선 봉은사역으로 오는 게 훨씬 쉽다고 지인에게 들어서 이쪽으로 왔다. 삼성역으로만 올 수 있었다면 혼자 안 왔다. 아기 낳고 보니 삼성역 그 출구가 아니더라도 시설 이용이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다. 오늘처럼만 다닐 수 있으면 유모차로 외출하는 걸 겁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기 엄마가 아님에도 이곳 통로의 통행 불편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말하는 시민도 있었다.
김민석(32, 동대문구) 씨는 “삼성역 5·6번 출구를 이용하는 유모차나 휠체어 이용객이 앞으로도 계속 있을 테고, 나를 포함해 누구나 유모차 이용자, 장애인, 노약자가 될 수 있지 않나. 당장 지금의 이용객이 소수라고 해서 미루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삼성역 및 서울메트로 관계자들의 대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삼성역 역무실 관계자는 “이용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시설 점검이 들어올 때마다 5·6번 출구 경사로 설치를 안건으로 올린다. 공사가 될 때까지는 민원실 인력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대기 인원이 적어 곤란을 겪고 있다. 우리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답답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삼성역의 시설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메트로는 이 문제에만큼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민들의 불편 사항에 대해 알고 있지만 지은 지 30년 된 노후 시설인 삼성역에 들어가야 하는 예산이 한두 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광흠 서울메트로 홍보팀 부장은 “한정적인 재화로 예산을 분배하다 보니 경사로 설치에 드는 예산 18억의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매년 투자 심사를 할 때 비용 대비 효용을 고려하게 되는데 안전 문제가 주시되고 있어 시설 확충 부분은 순위에서 밀리게 되는 면이 있다. 아직까지 투자 계획이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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