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솔이 엄마' 김보영 아나운서의 워킹맘 다이어리
요즘 아이들과 디즈니 만화를 즐겨봅니다. 얼마 전부터는 영화 '라푼젤'을 자주 보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라푼젤이 부르는 'when will life begin'이라는 곡이 유명하죠.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 when will life begin
7 A.M., the usual morning line up
Start on the chores and sweep 'til the floor's all clean
(매일 아침 7시 일어나 허드렛일과 마루 청소하기)
Polish and wax, do laundry, and mop and shine up
Sweep again, and by then it's like 7:15
(걸레질하고 빨래하고 왁스칠하고 광을내고 다시 쓸면 7시 15분)
(중략)
And cook and basically
just wonder when will my life begin?
(다시 요리하고, 언제쯤 내 인생이 달라질까?)
탑 안에 갇힌 라푼젤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딱히 슬픈 장면이 아닌데요, 저는 이 곡만 들으면 주책스럽게 눈물이 핑 돕니다. 자기 인생은 없이 소일거리를 하며 보내는 라푼젤의 처지가 마치 저와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사실 저는 올해 뉴스에서 하차한 이후로 일이 크게 줄었습니다.
처음에는 내심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요. "그래 이제부터 엄마 노릇 제대로 해 보는 거야!" 다짐도 하고요. 하지만 집안 일은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더군요. 아침, 저녁 두 끼에 간식까지 차려내고 나면 세트로 딸려오는 설거지에 청소, 빨래까지… 주부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지만, 제대로 하려니 몸살이 다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몸이 아픈 것 보다 억울한 감정이었지요. ‘왜 나의 모든 일정을 아이들의 시간에 맞추어야 하는 걸까’, ‘티도 잘 나지 않는 집안일에 언제까지 매여야 하나’, ‘만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며 공부며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든 일이 짜증스러웠습니다. 식구들에게 별 것 아닌 일로 잔소리가 폭발하는가 하면 스스로가 한심해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심리학 책 한 권이 아픈 제 마음을 치유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그 누구도 아닌 나와 나 자신의 잘 지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스스로의 상처를 곱씹고, 탓하고, 괴로워하는 것 대신 긍정적 사고와 칭찬을 하라고 하더군요. 이것들이 쌓이면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변화 시킨다고 말이죠.
내 마음 속 진짜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펴고 스스로를 향해 다음 여섯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1.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삶)은 무엇인가.
2. 당장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를 남편과 아이들 핑계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3. 그 일을 지금 시작 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4. 그렇다면 내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5.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6. 지금으로부터 3개월 뒤, 6개월 뒤, 1년 뒤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솔직하게 답을 적었습니다. 누가 보지 않는 답안지인데도 자꾸만 거짓이 먼저 치고 나가는 탓에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머리 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던 생각을 정리하자 우울의 원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부쩍 마음이 후련해 지는 기분이었지요. 책 속의 조언대로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일은 포기하고 일단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뭐든지 잘 해야 한다는 욕심도 버렸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계란으로 바위도 칠 수 있다지만 때로는 내려놓고, 비우는 요령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덕분입니다.
요즘 저는 매일 아침 예전처럼 출근 준비를 합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배웅하고는 곧바로 배낭을 매고 도서관으로 향하기 위해서요. 요즘 하반기 출간을 목표로 책을 쓰고 있는데요. 관련 자료를 모으고 글을 정리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흐릅니다.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이 집에 오기 전 짬짬이 심리학 수업을 듣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학교를 다니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강의로 대신합니다. 교정을 누비며 느끼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그런대로 배움의 기쁨이 있습니다.
혹시 지금 우울하신가요? 우리 엄마들도 자신의 인생이 필요합니다. 내 안의 진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포기할 것과 이루고 싶은 것들을 분류하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완벽하지 않고 불완전 하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또한 현재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책 <그들이 쏜 화살을 내 심장에 꽂은 건 누구 일까> 중에서.
*칼럼니스트 김보영은 두 딸 솔이와 진이의 엄마이자, 방송인, 작가로 활동중입니다.현재 국회방송 <TV, 도서관에 가다>, 맘스라디오 <우아한부킹>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대한민국 대표엄마 11인의 자녀교육법>이 있습니다. 현재 <초등 학부모를 위한 국어교육법>을 집필하며 관련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의 및 의견은 bbopd@naver.com으로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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