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체험기] 노케미족을 굴복시킨 ‘가을모기의 습격’
[기자 체험기] 노케미족을 굴복시킨 ‘가을모기의 습격’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7.09.07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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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없이 사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기자 체험기] 노케미족으로 일주일 살기_2탄

 

가습기살균제, 치약, 화장품, 이제는 생리대까지 화학제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노케미족'(No-chemi 族,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거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화학물질 공화국'인 우리 사회에서, 노케미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기자가 직접 일주일간, 생활 속에서 화학제품 없이 살아보는 노케미족 체험에 나서기로 했다. 그 기록은 세편의 기사로 남긴다. - 기자의 말

 

 

 무관하다.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무관하다.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예상보다 위기는 빨리 찾아왔다. 복통이 급작스럽게 들이닥쳤다.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화장지. 2014년 2월 발암물질인 형광증백제가 두루마리 휴지에서 검출됐다. 형광증백제는 섬유가 하얗게 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아토피, 피부염 등의 원인이며 발암물질로 분류되기도 한다.

 

화장실은 해우소(解憂所), 그러니까 ‘근심을 풀어주는 곳’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해소는커녕 화장실을 들를 때마다 앞으로 남은 날에 대한 근심이 더 쌓여갔다. 근심은 휴지와 함께 풀어지는 것인지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다행히 회사는 변기에 비데를 설치해 뒀다. 그렇다고 해도 화장지 없이 화장실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퇴근하기 직전 습관처럼 화장실을 들러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무튼 회사 화장실 거울에서 떼꾼한 민낯을 발견하는 게 무척 어색했다. 나, 이렇게 자유롭게 회사 다녀도 되나.

 

#화장지·물티슈·손세정제 모두 유해성 논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만, 화장지가 없다고 물티슈를 쓸 수는 없다. 물티슈는 2005년 3월 포름알데히드부터, 2006년 형광증백제와 계면활성제, 2010년에도 형광증백제, 2011년 11월 피부질환 유발 물질인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C), 2013년 유해화학물질인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메칠이소치아졸리논 혼합물(CMIT/MIT)까지 검출된 바 있다.

 

CMIT/MIT는 가습기살균제 성분으로, 인체에 흡입되면 기관지 염증을 유발하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이 성분은 헤어제품, 크림과 로션 등에 보존제 성분으로 포함됐다고 알려져 있다. 2012년 환경부는 이 성분을 유독물질로 지정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5년 8월 이후 생산된 제품부터 샴푸와 바디클렌저 같이 ‘씻어 내는 제품’에만 사용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2014년 4월과 10월 기준치 이상 일반세균이 물티슈에서 발견됐고, 2016년 9월에는 화장품, 왁스, 헤어미스트 등과 함께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와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검출됐다. 올 1월에는 허용 기준 초과하는 메탄올이 아기용 물티슈 제품에서 검출돼 보건당국은 판매중지와 회수조치를 내렸다. 그야말로 유구한 ‘검출’ 역사라 할 수 있다.

 

손세정제도 안전하지 않다. 2011년부터 CMIT/MIT가 검출됐다고 지적 받아왔다. 살균과 항균 효과는 유해성 논란과 항상 가까이에 있다. 액체 비누와 치약에 들어있는 항균제 트리클로산과 트리클로카반은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박테리아 내성과 에상치 못한 호르몬 변화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사용을 금지했고 식약처도 지난해 6월부터 제한하기 시작했다.

 

CMIT/MIT는 치약에서도 2016년 검출돼 대대적인 환불조치가 있었다. 2014년 10월에는 어린이용 치약에서 파라벤이 나와 논란이 있었다. 방부제로 사용되는 파라벤은 환경호르몬 유발물질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꼼꼼한 칫솔질로도 구강건강은 지킬 수 있다고 하지만 강한 민트향과 풍부한 거품이 없는 아침은 아무래도 허전했다.

 

#모기의 위협, 결국 모기향 켜고 말아

 

향기 없는 집도 허전하긴 마찬가지였다. 올 1월과 3월에 기준치 이상 메탄올과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된 방향제는 각각 시장에서 퇴출됐다. 장시간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는 디퓨저 등의 방향제품은 호흡기로 흡입하고 피부에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 성분 표시가 미흡해 구입과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의식 같은 야간 샤워도 맘 편하게 즐기지 못했다. 2016년, 샴푸와 바디워시 등에서 소듐라우릴설페이트가 검출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소듐라우릴설페이트는 합성계면활성제로 세정력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백질을 변성시키고 세포를 파괴하는 특성을 가져탈모나 피부 자극을 유발할 수 있다.

 

보습을 위한 마땅한 대체제가 없는 탓에 코코넛 오일은 체험기간 동안 가장 큰 활약을 펼쳤다. 그렇지만 흡수가 더딘 탓에 오일을 바르고 집을 돌아다니면 싱크대에, 문에, 벽에 몸이 스치고 지나간 자국을 고스란히 남겼다. 자는 동안 베갯잇과 이불이 달라붙었다. 얼굴을 뒤덮은 머리카락을 잠결에 몇 번 쓸어 넘겼는지 모른다. 아침에 식사 대신 빵을 먹는데, 코코넛향이 빵 냄새와 섞여 후각을 자극했다. 내가 지금 빵을 먹는 건지, 얼굴에 바른 코코넛오일을 먹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예상치 못한 위기는 한 번 더 찾아왔다. 더위가 물러나면서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모기는 내 단잠을 여러 차례 깨웠다. 한밤의 결투도 한계가 있었다. 동트는 하늘을 보고 출근하면, 오후엔 어김없이 회사 책상에 머리를 박고 졸았다. 나는 이 사실을 기사에 적기로 약속하고 모기향을 켰다. 중단없는 깊은 수면은 ‘화학제품에 굴복했다’는 죄책감을 잊게 했다.

 

#어디에나 있는 화학제품, 그만큼 위험

 

민낯을 마주하는 날이 많아지자 나의 ‘노케미족’ 생활에 관심을 갖는 동료들이 늘어났다. 기획에 앞서 합성섬유로 된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했던 취재1팀장의 말은 오히려 고마운 것이었다. 화합물로 만든 인공조미료 들어간 음식도 먹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생식해야 하는 거 아니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분들은 <나는 자연인이다>에도 안 나온다”고 응수했다.

 

그런가 하면, 식초로 뻣뻣한 머리를 달랜다는 내 얘기를 듣고 늦은 밤 메신저로 밀가루풀 샴푸법을 알려준 사진팀장과 10년 노케미족 생활 경험을 전수해준 취재2팀장도 있었다.

 

공산품을 쓰는 이상, 화학물질과 완벽하게 떨어져 살기란 어렵다. 천연이라는 이름이 붙은 비누나 화장품 등도 완벽하게 천연성분은 아니다. 또한 ‘천연’에 대한 기준과 인증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성분표를 보고 되도록 전성분이 확인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방법이다.

 

그렇다고 노케미족 생활이 언제나 인내심과 의심을 필요로 하진 않았다. 과탄산소다를 온수에 풀어 빨면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커피포트의 찌든 때는 베이킹소다가 해결해줬다. 모기 물린 곳에 물 3, 베이킹소다 1을 갠 반죽을 얹으면 가려움이 바로 사라지기도 했다.

 

어떤 독자가 댓글로 지적한대로, 화학제품은 어디에나 있다. 그만큼 위험도 어디에나 있다. 이번 기획시리즈 1편이 나간 지난 8월 29일, 친환경 요가매트에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 여름 계란과 생리대에서 출발한 파동은 그 끝을 모르고 커지고 있다. 화장지, 스마트폰 케이스의 유해물질 검출이 이슈가 됐고, 급기야는 '한국 축구도 발암물질'이라는 기사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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