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가 거리로 많이 나올수록 도시는 안전해진다
아기 엄마가 거리로 많이 나올수록 도시는 안전해진다
  • 정리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7.09.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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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아기 엄마들의 유모차 보행성 좋아져야"

[특별기고] 한수연 커넥터스 대표

 

내가 아기를 낳기 10년 전. 당시 아기를 낳은 친구는 유모차를 끌며 내게 말했다. “보도블록을 다 갈아버렸으면 좋겠어. 야! 이런 건 네가 고민 좀 해야 할 문제 아니야?!” 도시계획을 연구하고 있던 나는 잠시 뜨끔 했지만 곧이어 생각했다. “누군가 하고 있겠지, 나에겐 더 중요한 과제들이 많아.”


10년 후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그리고 조금 힘들게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난 후 홀로 유모차를 끌고 아기와 단둘이 나간 첫 나들이를 잊지 못한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던 지하철역부터 늘 가던 커피숍의 높은 문턱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쉬움, 높은 계단 앞에서 당황했던 순간들, 울퉁불퉁한 보도에서 혹여나 우리 아기 뇌흔들림증후군이 생기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순간들, 수유할 곳이며 기저귀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초조했던 순간들까지. 그야말로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어쩌면 엄마라면 모두가 경험했을 법한 일들이다. 10년 전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변한 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사회는 엄마들에게 맘충이네 노키즈존이네 하며 더 냉대해졌다. 그렇게 나는 도시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아닌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한수연
ⓒ한수연

어떤 이들은 내게 말했다. “왜 어린아이를 데리고 굳이 밖으로 나오려 하느냐”고. 자유롭게 다니며 문화생활을 즐기던 여성은 결혼하고 엄마가 됐다는 이유로 갑작스런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다. 사회는 저출산 문제가 시급하다며 출산 장려를 외치지만 정작 엄마라는 이름으로 빼앗긴 한 인간으로서의 여러 권리는 문제 삼지 않는다. 엄마와 아기의 보행권이 대표적인 예다. 


보행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행위이다. 보행권은 단순히 행정법적 의미의 도로 자유이용권이나 보행자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넘어서는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기본 권리와 관련이 깊다. 어느 누구나 고립되지 않고 문화적인 일상 생활과 사회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은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사람중심의 도시로의 전환을 맞으며 보행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서울시는 시민의 보행권을 되찾기 위한 보행친화 도시를 목표로 ‘차 없는 거리’, ‘인도 10계명’ 등 다양한 사업과 구체적인 정책들을 펼치는 중이고, 특히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하여 보행폭을 넓히고 경사로 설치,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등의 물리적인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이러한 것들은 오랜 시간 장애인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로 아기 엄마들도 상당 부분 그로인한 물리적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다.


하지만 거리로 나간 아기 엄마들은 극히 일부의 예의 없는 엄마들로 인해 잠재적 맘충 취급을 당하며 따가운 시선에 힘겹다고 말한다. 노키즈존 논란 역시 그것의 찬반 여부와 별개로 논쟁 자체만으로도 엄마들에게 위축감을 느끼게 한다. 더 이상 물리적 개선책만으로는 엄마와 아기의 보행권을 보장해줄 수 없다. 친절한 도시는 결국 친절한 사람들에 의해 완성된다. 여러 물리적 시설의 개선으로 우리의 환경은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만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과 배려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거리에 나온 엄마와 아기가 도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특히 많은 도시학자들은 거리에 나온 엄마와 아이들을 안전한 도시의 표상으로 전제하곤 한다. 미국의 고전적 도시학자인 제인제이콥스(Jane Jacobs)는 뉴욕의 그린위치빌리지 거리를 관찰하며, 거리로 나온 부모와 아이들에 의해 형성되는 도시의 생동감과 그로 인해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도시의 안전성에 대해 강조했다.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행동지침을 안내하는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1단계: 멈춰서서 기다린다. 2단계: 부모님 이름, 전화번호를 생각한다. 3단계: 제복을 입은 경찰이나 아기와 함께 있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중 3단계 지침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이들 대상의 범죄가 늘어나는 요즘 아기 엄마는 거리의 어느 누구보다도 안전한 존재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기 엄마 효과’를 믿는다. 아기 엄마들이 오래도록 머무는 곳은 살기 좋은 곳이다. 아기 엄마들이 집이 아닌 거리로 많이 나올수록 도시는 안전해진다. 거리로 나온 아기 엄마들의 행복한 표정은 그 어떤 출산장려 정책보다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페미니스트도 사회운동가도 아니지만, 도시연구자에서 엄마가 되어 느낀 당혹감이 사명감이 되어, 감히 살기 좋은 도시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유모차 보행성’이라고 강조하고 다닌다. 이것이 곧 ‘아기엄마 효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진지하게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 거리에서 행복한 표정의 아기 엄마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주는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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