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아이의 메아리 “또 해줘!”
세 살 아이의 메아리 “또 해줘!”
  • 칼럼니스트 조은희
  • 승인 2018.05.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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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엄마, 세 살 아기] 떼 부리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세요

성빈이가 일어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기척이 없어 방문을 살짝 열어 보니 아빠 옆에 앉아서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신랑이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끝”이라고 말했다. 성빈이는 아빠를 향해 웃으며 “또 해줘”라고 말했고 신랑은 조금 고민하는 것 같더니 “너 일부러 그러지”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성빈이는 아랑곳없이 아빠에게 웃으며 “또 해줘”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웃음이 터진 날 발견한 신랑이 “이제 엄마가 읽자. 이제 당신이 읽어줘. 나 백만 번은 읽은 것 같아”라고 말하며 그림책 읽기 배턴을 나에게 넘겼다. 나도 백만 번을 읽어준 후에야 우리 가족이 함께 앉아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 내가 아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센터에서 근무하던 시절, ‘잠자리에서 그림책을 읽어주세요’라는 주제로 육아캠페인을 기획해 진행했다. 그중 캠페인의 일환으로 부모소모임을 만들게 됐는데 소모임이 있던 첫 날, 나는 함께 모인 부모들과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선정한 그림책을 읽어줬다. 부모들에게 그냥 읽어 주기 어색해서 강의실 불을 끄고 작은 스탠드 불을 밝혔다. 잠자리에서 아이들이 듣듯이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자유롭게 들어보자고 하고 그림책을 읽었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이라는 그림책이었는데 수줍음 많은 이슬이가 엄마의 첫 심부름을 해나가는 에피소드가 담긴 소박하고 감동적인 내용이다.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엄마가 “흡”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긴, 나도 이 책 처음 읽었을 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하긴 했지’하며 계속 읽어나갔다. 그런데 아까 눈물을 흘렸던 엄마가 급기가 콧물까지 흘려가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읽어야 하나 싶었지만 중단할 수 없어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불을 켜자 울고 있던 엄마가 “아! 죄송해요. 아이 생각이 나서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아녜요. 괜찮아요”라고 말하자 엄마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누군가가 저한테 이렇게 책을 읽어 준 게 처음이에요. 이런 느낌일지 몰랐어요. 아이가 매일 잠자기 전에 책을 계속 읽어 달라고 하는데 좀 읽어주다가 너무 피곤해서 그만 읽자고 화를 내거나 제가 먼저 잠들어 버리거든요. 아이가 이런 마음일지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엄마도 훌쩍이며 “사실 저도 그래요. 그 책 저도 아이에게 읽어줬던 건데… 들을 때 감정이 이렇게 다를 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그 당시 나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생각하지 못한 문제로 골머리를 섞고 있던 참이었다. 캠페인에 참여한 부모들이 “그림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한 번만 읽고 끝내지 않아요. 열권도 넘게 읽어달라고 하질 않나, 읽은 책을 또 계속 읽어 달라고 하질 않나, 그거 다 받아주면 잠도 못자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포기하는 부모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는 부모들이 더 포기하게 될까봐 부모입장에서 편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해결책들만 내놓다가 “그래도 안 돼요”라는 부모들의 요구에 더 이상의 해결책이 없어 부모소모임을 만들어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길 원했었다. 그런데 첫 모임에서 한 엄마의 울음이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동안 내가 부모입장에서만 생각했었구나’ 싶었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나도 코끝이 찡했다. 따뜻한 잠자리와 엄마, 아빠의 품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따뜻한 온기… 잠시나마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성빈이가 “또 해줘”라고 말할 때마다 그 때 받았던 울림이 생각난다. 가끔 너무 피곤한 날은 “이제 그만 읽고 잘까”라고 말하고 싶지만 성빈이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그래, 또 읽자”라며 무한반복에 응할 수밖에 없다.

신랑에게도 소모임의 일화를 이야기해줬더니 “또 해줘! 또해줘”를 반복하는 성빈이의 요구에 거절은 하지 못하고 염불 외듯 중얼중얼 읽어 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떠랴! 성빈이가 아빠 품에서 신중한 표정으로 그림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해줘”는 책읽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놀이에 있어서는 더욱 단순한 동작을 반복해달라고하기 때문에 성인으로써는 지루함을 느낄 때도 많다. 공굴리기, 숨바꼭질, 기어가기, 바닥에 눕기, 심지어 우연히 웃은 웃음소리가 재밌는지 계속 웃어보라고 할 때도 있다.

또 해주고 또 해주면 혼자서 몰입할 때도 있다. 이럴 땐 또 해준 맛이 난다. ⓒ조은희
또 해주고 또 해주면 혼자서 몰입할 때도 있다. 이럴 땐 또 해준 맛이 난다. ⓒ조은희

3살 아이들은 아직 타인에 대한 조망능력이 없다.

다크서클이 바닥까지 내려 온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고 ‘오늘 피곤하셨군요. 다음에 해주세요. 조금 기다리겠습니다’를 기대할 수 없다.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 무한반복과 기다릴 수 없음이 3살 아이의 발달특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더불어 부모로부터 받을 아이의 감정을 생각해본다면 “또 해줘”에 기꺼이 응하는 일은 조금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

◇ 아이의 행동보다는 마음을 읽어보자!

집에서 뿐만이 아니라 "또 해줘!"는 밖에서도 계속된다. 아이가 원하는데 어찌하랴!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는 한 또 해주고 또 열심히 해주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조은희
집에서 뿐만이 아니라 "또 해줘!"는 밖에서도 계속된다. 아이가 원하는데 어찌하랴!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는 한 또 해주고 또 열심히 해주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조은희

계속 아이의 요구에 응해주다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면 아이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부모의 노력은 없던 일이 되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떼를 부리게 된다(지금까지의 엄마의 노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 야속하지만 자신의 마지막 행동만 기억하는 것도 아이의 특성이다).

이때 엄마가 아이의 행동인 떼 부리기에만 집중해서 ‘이거 봐라! 지금도 이렇게 떼 부리고 말을 안 듣는데 나중엔 얼마나 더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책을 더 읽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읽고 ‘지금도 이렇게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나중에 크면 얼마나 책을 더 많이 읽게 될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카피문구가 있듯이 작은 생각의 차이가 엄마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육아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조은희는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10여 년간 보육현장 및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많은 교사와 부모들에게 진정한 교사와 부모가 되는 일에 힘을 보태며 살아 왔다. 현재는 무주에서 아이와 함께 쉼표없이 느낌표만 가득한 전원육아 속에서 진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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