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같이 오세요" 딸과의 마지막 목욕탕 나들이
"엄마랑 같이 오세요" 딸과의 마지막 목욕탕 나들이
  • 칼럼니스트 노승후
  • 승인 2018.07.19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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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아빠의 독립육아] 아이들과의 웃푼 추억

몇 해 전, 무더운 여름 날이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 피신이라도 가야 할 날씨였습니다. 문득 제 머릿속에 떠오른 곳은 바로 동네 목욕탕이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도 빵빵 나오고 냉탕은 아이들의 전용 수영장이니까요. 한창 신나게 냉탕에서 두 딸과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지나가시다가 말을 건네셨습니다.

“딸들이 몇 살이우?”

“아, 5살, 3살입니다.”

“아이고, 한창 이쁠 때네. 나도 우리 딸 어릴 때 같이 목욕탕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아, 그러셨어요.”

“그럼, 그랬던 딸이 벌써 시집가서 애를 낳았다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 살짝 추억에 잠기시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어릴 때 아빠가 많이 놀아주면 얘들한테도 참 좋아요. 잘하고 있어”라고 나름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아빠가 두 딸을 데리고 남탕에 오는 게 살짝 부끄러웠는데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더웠던 어느 날. ⓒ노승후
무더웠던 어느 날. ⓒ노승후

그날의 추억도 생각나서 오랜만에 다시 찾은 찜질방. 입구에 계신 아주머니는 큰 딸을 보더니, 대뜸 물으셨습니다.

"혹시 딸이 몇 살이에요?"

"6살인데요."

"나이치고는 키가 좀 큰 거 같은데요. 저기 키 재는 데서 한번 재고 오실래요?"

아주머니가 가리킨 곳에는 신장 90cm 이상이면 혼탕 금지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살짝 불안해졌습니다. 왠지 간당간당해 보였거든요. 혹시나 하는 저의 기대는 아쉽게도 산산조각 났습니다. 아이는 기준을 살짝 넘었습니다.

“진짜 살짝 넘었는데 오늘만 데리고 들어가면 안 되나요?”

“죄송하지만 규정이라서 안돼요. 담에 엄마랑 같이 오세요."

몇 번을 애원하듯 말을 건넸지만, 그분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저와 두 딸은 뙤약볕 아래를 걸어오느라 온몸이 이미 땀으로 축축이 젖은 상태였습니다. 시원한 냉탕을 생각해 참고 참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결국 집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또 한 번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면서요. 잔뜩 실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딸들과 목욕탕 같이 가는 것도 끝이구나.'

아빠의 독박 육아를 견디게 해주는 필살기 코스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느새 부쩍 커버린 아이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딸들아,

너희들도 기억나니?

무더웠던 그 여름날,

우리가 목욕탕 입구에서 못 들어간 날 말이야.

그날 진짜 덥고 기운 빠졌었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다시 집으로 걸어갔잖아. 기억나지?

하지만 먼 훗날에는 그런 기억조차 우리에겐 그립고 재미난 추억으로 기억될 거야.

아빠는 지금 생각해도 벌써 미소가 살짝 지어지는구나.

참, 우리들만의 웃푼 추억이다. 그치??"

*칼럼니스트 노승후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STX조선, 셀트리온 등에서 주식, 외환 등을 담당했으며 지금은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5년째 두 딸을 키우며 전업 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일과 가정 모두를 경험해 본 아빠로서 강연, 방송, 칼럼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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