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한 마리를 24명이 먹어”… ‘보피아’가 행한 기적
“닭 한 마리를 24명이 먹어”… ‘보피아’가 행한 기적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8.10.17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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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17일 보육시설 비리 근절 대책 촉구 기자회견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정치하는엄마들과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보육시설 비리 근절 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24명이 1.5kg 닭 한 마리를 나눠 먹었다. 누군가가 행한 기적이나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요한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국장은 어린이집을 두고 “원장의 소왕국”이라고 표현했다.

정치하는엄마들과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해 정부와 지자체에 보육시설 비리 근절 대책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공공운수노조는 보육교사를 대상으로 어린이집 내 비리 실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0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228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를 현장에서 공개했다. 

이들 제보는 어린이집도 규모만 작을 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리 유치원'과 같은 비리가 만성적으로 발생한다는 증명이었다. 김요한 국장은 어린이집 비리를 ▲급식 비리 ▲교구재 허위 구입·리베이트 ▲보육 교직원 허위 등록을 통한 인건비 횡령 등 세 가지로 분류했다. 김 국장은 “비리 사실이 구체적이어서 사후적으로 진위를 의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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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엄마들과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개최한 보육시설 비리 근절 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서진숙 부위원장은 "어린이집 비리 실태에 처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비리 고발함과 동시에 보육교사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서진숙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어린이집에서 비리가 만연한 이유를 ‘법’에서 찾았다.

2014년 한 어린이집 원장은 남편을 어린이집 운전기사로 근무했다고 속인 뒤 ‘아이행복카드’ 바우처로 지원되는 보육비에서 급여를 지급했다. 이 사실을 확인한 학부모들은 업무상횡령 혐의로 원장을 고소했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지자체 바우처로 학부모를 거쳐 어린이집으로 들어간 지원금은 용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원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고 무죄로 결론 내렸다.

서 부위원장은 “이미 30년 동안 원장들은 이렇게 운영해도 된다는 것을 체득했다”며 “적폐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장에게 비리 사실을 문제제기 하다가 해고당한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찾아온다”며 “이제는 민간 시장의 힘을 공공의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어린이도 교사도 배가 고픕니다. 돈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서 부위원장은 발언 내내 “처참함”을 숨기지 않았다. 국회 토론회를 파행으로 몰고 간 유치원 원장들과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에 보육을 제외하도록 힘을 쓴 어린이집 원장들을 지목하며 “이들에게 국가 정책이 과연 먹힐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어린이집에 대한 운영 책임을 국가가 지겠다고 말할 때”라며 사회서비스공단에 보육을 포함해 국가가 보육기관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답임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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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보육시설 비리 근절 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요한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국장.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어린이집 비리가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호연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 비리고발신고센터장은 “비리 사실을 고발함과 동시에 보육교사들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다”며 “30만 보육노동자들이 4만 3천 어린이집 원장과 대적할 수도, 비리와 부당한 일들에 대해 공익제보 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자신들의 직장과 제일 좋아하는 직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제보해도 행정조치까지 가는 경우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 보피아(보육+마피아)를 들었다. 이들은 30년 동안 정치세력화한 각종 원장 연합회를 말한다. 

지역 어린이집연합회, 시설연합회, 국공립 또는 민간어린이집연합회 등의 단체들은 국회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김 센터장은 “지자체에서는 이들이 표심”이라면서 “보육시설 급식 비리 확인하기 위해 사법경찰권 투입하자는 법안을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이 2013년 5월 발의했으나 16일 만에 철회됐다”고 설명했다.  

◇ “어린이집 비리 수수방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직무유기”

“유치원과 보육 비리에 분노하고 계신 부모님들께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염치없는 말이지만 교사들은 현장의 여러 문제에 앞장서기엔 일자리와 더불어 교사로서의 자존감 또한 모두 버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현림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 대표지부장은 발언에 앞서 이같이 말했다. 이 지부장은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제보를 한 후, 실제로 일자리를 잃고 두 번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 없이 묻혀버리는 것들을 십수 년간 겪었다”고 덧붙였다. 

이 지부장은 어린이집 구조가 교사들이 공익제보를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집은 근로기준법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는 소규모가 대부분이며, 민간어린이집은 개인 소유물로 취급하기 때문에 관리주체인 지자체도 처벌 규정이 없다. 결국 공익제보를 한 교사는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려 사직하거나 원장과 동료교사에 의해 아동학대로 몰려 불명예 사직한다는 것이 이 지부장의 설명이다.

이 지부장도 ‘보육을 포함한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어린이집의 폐쇄적인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들었다. 그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안전하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기본적 제도를 만들어달라”며 “자율로 포장된 폭압적이고 독단적인 원장단체에 보육을 통째로 넘기지 마시고, 방관하는 것을 그만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17일 열린 공공운수노조·정치하는엄마들의 '보육시설 비리 근절 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는 평소보다 많은 취재진이 참석해 유치원·어린이집 비리에 쏠린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이들은 현장에서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어린이집 비리를 “공적 재원을 사적인 용도로 유용한 이들의 행태는 절대 묵과할 수 없는 반사회적 범죄”로 규정하고 “어린이집에 이토록 비리가 만연하기까지 이를 수수방관한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의 직무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보육 시설의 비리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기 위해서는 원장 한 명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어린이집 시스템을 처음부터 완전히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에 대해서도 “이미 사유화된 ‘무늬만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려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지자체와 보건복지부에 어린이집 원장의 비리를 도외시하지 말고 비리 근절 대책을 수립할 것과, 서울시에 국공립과 민간어린이집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사회서비스원에 반드시 보육을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사립유치원 비리 논란으로 여론이 뜨거운 탓인지 평소보다 많은 취재진들이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기자회견 중 서 부위원장과 김 전략조직국장은 보육시설 비리 내용을 발언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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