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깊게 듣는 능력이 실력이다
주의 깊게 듣는 능력이 실력이다
  • 칼럼니스트 권장희
  • 승인 2018.10.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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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육아 지혜바구니] 우리 아이 공부 잘하는 두뇌 만들기③
주의 깊게 듣는 능력이 실력이다 ⓒ베이비뉴스
주의 깊게 듣는 능력이 실력이다 ⓒ베이비뉴스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해주세요!” “선생님, 귀신 이야기 해주세요!”

학창시절 공부하기 싫은 오후 수업시간이나 교실 창 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선생님을 졸라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고, 모든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선생님의 진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많은 기억들이 있다. 

선생님으로부터 듣던 이야기를 스마트기기나 인터넷을 통해 해소하는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를 필요도 없지만, 설령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도 들을 마음도 없다. 문제는 수업과 직접 상관이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공부 내용에는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학습이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교실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선생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한참 설명을 하고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부터는 이렇게 해보는 거야. 지금부터 10분 줄 테니까 시작해.”

그러면 손을 들고 “선생님, 지금 뭐 하는 시간이에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설명이 다 끝났는데도 말이다. 심지어는 질문을 한 아이가 딴짓을 하거나 옆 자리 아이와 떠들고 있지도 않았다. 설명하는 동안 분명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뭘 해야 하냐고 되묻고 있을 때 교사는 참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 교실에 이런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소위 ‘뽀로로 세대’의 특징이다. 지금 초등학교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그들이 3~4살 때부터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뽀로로’를 보면서 자라온 세대들이다.

이들은 그때부터 7, 8년 동안 시각적 자극만 집중하고 청각 자극을 무시하면서 뇌를 발달시켜 왔다. 스마트기기의 영상을 보며 자라면서 시각적 자극을 인지하는 뇌 영역은 지나치게 발달되었고 상대적으로 소리를 이해하고 분별하는 청각자극 인지능력은 발달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아이들의 반응을 굳이 해석하자면 이런 것이다.

“저는 선생님의 음성을 들어서 단어 맞추고 문장 맞추고 구조와 맥락을 맞추어서 ‘아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구나! 지금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구나!’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냥 선생님 얼굴 구경하고 있었어요. 제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고요?”

분명히 아이들이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방긋방긋 웃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 말을 알아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냥 내 얼굴을 보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 듣는 능력은 ‘풍부한 말소리 환경’이 제공될 때 습득된다

다른 사람의 말소리를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듣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영유아기부터 ‘풍부한 말소리 환경’이 제공될 때 습득되는 능력이다. 그리고 말소리 환경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통해 더 풍성하게 제공된다.

관계 형성을 통한 풍부한 말소리 환경이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이다. 

첫째, 책 읽어주기와 이야기 들려주기. 아이들이 부모의 무릎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풍성하게 들으면서 자랄 때 사람의 말소리에 주의력을 기울이는 능력이 생긴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가 소소하게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어휘력이나 표현언어지수가 높다.

21개월 유아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실험에 참가한 두 아이의 엄마에게 일정시간 아이와 놀이하면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엄마가 들려주는 단어와 문장 수를 기록해보았다. 한 엄마는 137개 문장과 338개의 단어를 말했고, 다른 엄마는 같은 시간 동안 296개 문장과 647개의 단어를 말했다.

그리고 21개월 된 두 아이의 언어표현지수 검사를 해보았다. 엄마가 2배 가까운 단어와 문장을 더 많이 사용한 아이의 표현언어지수는 365개로 비교대상 아이의 111개보다 세 배 정도 높았다. 한 단어의 평균 인식속도 또한 0.84초로 말소리를 적게 듣는 아이의 1.14초보다 훨씬 빨랐다.

둘째, 묻고 답하기. 부모와 자녀가 질문하고 대답하는 대화를 자주 할 때, 주의를 기울여 듣는 능력이 향상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소소하게 말을 걸어주면 아이는 부모가 어떤 맥락으로 자신에게 묻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듣게 된다. 그리고 해당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기 위해 생각도 하게 된다. 질문하고 대답하기는 서로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 뿐 아니라 친밀한 관계만큼 상대방의 말소리를 듣는 주의력이 자란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3세 이후부터 만 7년 정도 부모와 자녀가 ‘하브루타’라고 알려진 일대일 문답 시간을 갖는다. ‘탈무드’로 알려진 이야기책은 유대인 가정에서 그들의 경전인 토라를 이해하기 위해 질문하고 대답할 때 사용하는 교재 중 하나이다.

평균 아이큐가 94에 불과한 평범한 지능의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루는 밑바탕에는 부모와 자녀의 묻고 답하기 관습인 하브루타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셋째, 혼자 놀이. 아이들의 소리언어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좋은 환경 중의 최고는 혼자 놀이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다. 아이들이 혼자 놀이를 한다는 것은 판타지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판타지 세계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여러 역할을 만들어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고 등장인물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듣기’와 ‘묻고 답하기’를 혼자 놀이 하는 동안 역할극 형태로 반복하면서 관계를 맺는 과정도 배우고 말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연습도 동시에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뽀로로’ 같은 영상들은 관계 맺기를 통해 제공하는 풍성한 말소리 듣기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꾼 역할을 한다.

뽀로로 같은 영상을 보고 있으면 시각자극에 주의력이 빼앗겨 있기 때문에 영상과 함께 들려오는 ‘말소리’는 주의 깊게 들을 수가 없다. 요즘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을 보면 평범하게 들을 수 있는 출연자들의 말소리조차 자막처리를 하여 시청자가 눈으로 확인하게 함으로 듣는 주의력을 빼앗아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아이들이 영상을 볼 때는 묻고 대답하기도 할 수가 없다. 영상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과 그것을 보는 아이들 간의 관계 맺기도 없다.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는 굳이 아이들이 등장인물의 말을 애써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그들 또한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줄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뽀로로를 보면서 말을 건다고 해서 뽀로로는 전혀 대답을 해주지 않을뿐더러 아이에게 질문을 하거나 아이의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도 않는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님이 하시는 말이나 교실에서 선생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이야기에도 역시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다.

◇ 눈이 스마트기기에 사로잡힌 상태는 상상력이 포로로 잡힌 상태

뽀로로를 보고 있는 동안에 아이들은 자신만의 판타지 세계 속으로 들어가 역할 놀이를 할 수도 없다. 뽀로로 영상의 시각적 자극을 수용하기 위해 뇌 활동이 집중되기 때문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가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았다. 한 부류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읽게 했다. 그리고 다른 한 부류는 영화 '소나기'를 보게 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두 부류의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동일한 제시문을 주고 각자 그림을 그려보게 했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이 길로 들어갔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

영화를 본 아이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복사하듯이 똑같이 그려냈다. 반면 소설을 읽은 아이들의 그림은 모두 달랐다. 글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상상 속으로 들어가 장면을 그려낸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혼자 놀이 시간에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낸다.

반면 영화를 본 아이들처럼 영상을 보고 있을 때는 보이는 장면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없고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영유아기부터 스마트기기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영상 속 인물들과 관계 맺기도 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 소리를 주의 깊게 듣지도 않는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하시는 이야기에도 주의력을 동원하여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다. 사실은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듣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과 관계도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교실은 다를까? 중학교 교사를 한다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종례시간에 일어나는 일이란다.

“내일은 현장학습을 가니 복장은 이렇게 입고 와야 하고, 몇 시에 어디로 도착해야 하고, 준비물은 무엇 무엇을 챙겨와야 한다. 알았지? 이제 집에 가자.”

선생님의 말이 끝나면 학생들은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교탁 앞으로 막 달려나와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선생님 내일 교복이에요? 사복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말로 하지 않고 전달사항을 칠판에 써준다고 한다. 말로 전달해도 아이들이 듣지 않기 때문에 공책에 기록하게 하고 기록한 것을 확인한 후에 집으로 보낸다고 한다.

아이들의 눈이 스마트기기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는 곧 그들의 상상력이 포로로 잡혀 있는 상태이다. 스마트기기를 멀리하고 책을 읽어주며 묻고 답하기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이 되도록 도와주자.  

교실에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아이를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키워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소리를 주의력을 기울여 잘 듣는 능력이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능력이야말로 최고의 실력이다.

*칼럼니스트 권장희는 교직생활을 거쳐 시민운동 현장에서 문화와 미디어소비자운동가로 청소년보호법 입법을 비롯해, 셧다운제도 도입,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활성화, YP활동(청소년스스로지킴이, 미디어교육활동) 개발 보급 등을 해왔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중독예방을 위한 민간교육기관인 사단법인 놀이미디어교육센터를 설립해 기쁘게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 아이 게임절제력」 「인터넷 게임세상 스스로 지킨다」 「게임 스마트폰 절제력」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구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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