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기 위한 '휠체어 탄 엄마'의 육아전쟁
평범하게 살기 위한 '휠체어 탄 엄마'의 육아전쟁
  • 기고=박지주
  • 승인 2019.01.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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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새해 특별기고] 박지주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 대표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무수한 이슈들 중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또 새해는 어떤 '화두'를 가지고 설계해야 할까. 보육 등 각계 전문가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2018년을 정리하고 2019년을 전망한다. - 편집자 말

박지주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 대표.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박지주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 대표.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나는 휠체어를 타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아이 셋을 평범하게 잘 키우려고 무진장 노력하는 '열혈' 엄마다.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것은 나의 선택일 수 없었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나의 도전이었다.

세상은 장애가 있는 여성을 '고착화된 성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무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보며, 임신을 할 수 있는지 의심을 하기도 했다. 생물학적인 욕구를 가지고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은 장애여성에게는 무모한 욕심으로 치부했다.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금기의 영역이다. ‘어떻게 네가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니? 그 몸에’라는 사람들의 질문 앞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넘어서 내 몸에 가해진 의심과 규정된 삶의 틀을 깨는 저항이었다.

그래서 난 아이 셋을 낳고 키우고 있다. 불편한 몸으로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육체활동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육아의 현장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어서 피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그래도 휠체어를 타고 평범하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를 보면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평범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엄마도 마찬가지로 그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 평범한 대전제가 장애부모에게도 실현되려면, 장애인의 특수성이 반영된 사회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바람직한 인간중심사회라면 ‘아이를 평범하게 잘 키우고 싶다’는 대전제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색다른 소전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장애인만이 아니라 다른 장애유형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권리로써 보장돼야 한다. 

◇ ‘평범한’ 육아 현장도 전쟁터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영아일 때는 모유수유, 분유 잘 먹이기와 함께, 입히고, 씻기고, 놀아주고, 어린이집 활동에 잘 참여하고,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한다.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니, 또 다른 양육 현장의 과제가 주어진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의 성장 발달 단계에 따른 사회적 생활을 잘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고, 장애부모 입장에서 장애의 특수성을 반영한 육아환경에 대한 해석과 그에 맞는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활동이 필요해진다. 아직 사회는 장애부모와 그 아이들을 위한 인권의 관점에서 삶의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함을 실현하기 위한 나의 전쟁은 이런 일들이다. 아이가 집에서 놀다가 손가락이 문틈에 끼었다. 아이 손을 빼다가 그만 새끼손가락 손톱이 빠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급하게 119를 불렀지만 전동휠체어를 탄 엄마는 아이와 함께 갈 수가 없었다.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 박지주 대표가 지난해 9월 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서울시 홈헬퍼 사업 차별 진정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 박지주 대표가 지난해 9월 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서울시 홈헬퍼 사업 차별 진정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금의 119 구급차는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는 신체의 일부이다. 그것이 없다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다. 함께 늘 생활하는 보장구로써, 분리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119 구급차에는 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보호자로 동석할 수 있는 차가 없었는가?

아이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니 더 목놓아 엄마를 찾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아퍼. 엄마, 엄마, 엄마….” 엄마만 찾는 네 살짜리 아이를 안심시키고 함께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급대원에게 간곡히 요청했다.

“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장애인이고 지금 이 아이의 보호자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탑승할 수는 없지만,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주세요.”

결국 나는 전동휠체어에서 분리됐다. 휠체어는 침대에 싣고, 나는 의자에 앉아서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이 1차 전쟁을 치르고 나니 2차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 내가 아이의 보호자인데… "다른 보호자 없나요?"

병원 응급실로 들어서니 간호사는 나를 앞에 두고도 보호자를 찾았다. 내가 보호자라고 말했으나, 다른 보호자는 없는지 물었다. 몹시도 불쾌했지만 한 번 더 “내가 보호자”라고 말하고 치료를 부탁했다.

‘아픈 아이의 어미’란 평범한 삶의 관계. 하지만 장애가 있는 엄마와 아이의 경우가 되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환경에 도전해야만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아픈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픈데, 나의 장애가 또 다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부정당하는 상황까지 겪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편견과 인권의식이 부족해 평범하게 살 기회를 차단하는 차별적 사회환경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장애부모의 평범한 삶이란, 보호자로 인정되고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른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져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사회적 삶을 존엄하게 유지해야 완성할 수 있는 가치다.

어디 이뿐이랴! 아이와 함께 가정에서 생활하는 것, 어린이집·유치원 활동에 참여하기, 학교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실내놀이터 및 놀이시설 이용하기, 사회시설 이용하기,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기 등, 장애부모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에서 '휠체어를 탄 어미'로서 아이와 평범하게 살기 위한 도전은 차고 넘친다.

장애를 가진 엄마로서 장애인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못한 육아의 현장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사회적 문제이고, 사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일들이다.

소수의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면, 당사자도 이를 잘 알리고 세상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도 이 소수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바람직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고, 우리 모두가 주인이다. 우리 모두가 인간의 존엄함을 유지하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할 의무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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