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오빠' 된 큰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어쩌다 오빠' 된 큰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03.2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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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내 사랑 다 빼앗는 동생이 미워요"

“언니, 언니네는 둘째 낳고 큰애 괜찮았어요?”

얼마 전에 조리원에서 둘째를 집으로 데려온 한국의 후배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던 중, 그녀의 넋두리가 시작됐다. 엄마가 동생을 안고만 있어도 큰아이가 울고불고 야단이라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작은아이를 들여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으면 그 옆에서 동생을 밀어내며 대성통곡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건강 문제 때문에 모유수유를 안 하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큰아이 눈치보느라 작은아이 수유도 제대로 못 했을 것이라는 후배의 이야기에 나도 덩달아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형제, 자매가 생긴다는 것은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해보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인 셈이다.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인 엄마와 아빠가 새로운 존재에게 관심을 집중한다면 큰아이에게는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상황인가.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난 동생의 등장이 얼마나 당황스러우면서도 긴장되는 일일는지 차분히 생각해보면 다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지인의 큰아이는 엄마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동생을 식탁 밑에 숨겨놓고 이제 동생은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가 하면 또 다른 지인의 큰아이는 동생의 젖병을 빼앗아 물고 누워서는 “내가 아기야”라고 외치는 것이 일상이라고도 했다.

나의 경우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터울이 다섯 살이나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걱정할 만한 일이 적었다. 큰아이는 엄마, 아빠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큰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아이의 동생 맞이가 완벽하게 평탄하기만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워낙 많기에 동생이 생기고부터 함께 태담하기, 함께 동생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하기 시간을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변수가 있었던 것 같다.

작년 여름,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의 남매. 동생은 오빠가 하는 것은 다 멋져보이고 궁금하다. ⓒ이은
작년 여름,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의 남매. 동생은 오빠가 하는 것은 다 멋져보이고 궁금하다. ⓒ이은

사실 큰아이는 프리스쿨(preschool)에 다니고부터 나에게 '아가'를 데려오라고 요구했다. 그렇다. 말 그대로 요구였다. 다른 아이들은 아가가 있어서 형아가 되었는데 자기만 아가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 공부 중이던 우리 부부에게 사실 아이 하나도 벅찬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육아가 가능했던 것인데, 큰아이가 이 상황을 알 길이 없었다.

우리의 자녀계획을 큰아이가 결정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만 2~3살 무렵부터 시작된 큰아이의 “형아가 될 거야”라는 꾸준한 갈망 탓에 우리도 모르게 언젠가 둘째를 낳긴 낳아야겠다는 의무감이 점점 더 강해지긴 했다. 결국 큰아이에게 세뇌(!)되어버린 것이다.

미국의 가정은 형태가 다양하다. 그 다양함이 한국 사회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아이가 하나만 있는 집도 참 많다. 다둥이 가구도 정말 많다. 20명 남짓한 유치원 한 반에도 아이가 세 명 이상인 집이 늘 다섯 가구 정도는 되었으니 어딜 가나 이미 형아나 누나가 된 친구들이 참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첫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둘째가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큰아이의 반응에는 반전이 있었다.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고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로 둘째의 존재를 확인하던 날, 우리는 일부러 큰아이를 함께 데리고 갔다. 직접 동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음파 사진을 받아든 큰아이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했다. 좋기는 좋은데 기분이 이상하고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거 아는데 그래도 동생한테 사랑이 더 많이 가면 어떡하지?"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걱정 중에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동생이 혹시 내 방에 있는 거 다 갖는다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진지한 고민이었다.

큰아이의 염려처럼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무래도 동생 위주로 생활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큰아이가 무언가 부탁하거나 물어보던 중에도 작은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대화는 중단되고 엄마는 동생에게로 뽀르르 달려가니 답답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자기 방뿐만 아니라 거실도 오롯이 본인 차지였는데 이제는 동생의 바운서와 매트가 거실 대부분을 차지해버렸으니 자신만의 공간도 줄어든 느낌이었을 것이다.

육아 달인 친정어머니는 화상채팅을 할 때마다 큰손주를 열심히 지켜보시곤 나중에 나에게 살짝 귀띔하셨다.

“큰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종종 갖도록 노력해보렴.”

쉽지는 않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 주말에 남편에게 작은아이를 맡기고는 큰아이와 둘만의 데이트에 나섰다. 나도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기분 전환이 되었다. 한참 둘이 깔깔거리고 놀다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큰아이가 나를 보면서 웃더니 “엄마, 오늘 엄마랑 데이트해서 좋다. 오늘은 동생 말고 내가 주인공 같아”라고 하는 것 아닌가.

늘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들다가 동생이 생긴 뒤로 자신은 뒤로 밀려난 기분이 들었나보다. 순간 마음이 '짠'해졌다. 이제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소외된 느낌 없이 잘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이에게는 충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는 작은 것에도 더 신경쓰게 되었다.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와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큰아이와 손을 잡고 걷거나, 큰아이를 반보 정도는 앞서서 걷게 했다. 작은아이와 먼저 앞서 가버려 뒤로 남겨진 느낌이 들지 않도록 신경 썼다. 집 안에서 작은아이가 울거나 나를 부르면, 될 수 있으면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가 있는 곳으로 바로 돌아왔다.

작은아이의 기저귀를 간다든가 이유식을 주게 될 때도 작은 것이라도 큰아이와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한 숟가락이라도 동생에게 이유식을 떠주고 새 기저귀를 가져다주는 등 작은 도움이 오빠로서 동생을 같이 돌본다고 느끼게 해서 좋은 것 같았다.

작은아이에게 예쁘다고 할 때도 꼭 “오빠 닮아서 참 예쁘네”라고 이야기하고, 큰아이의 아기 때 사진을 꺼내서 벽에 붙여두었다. 말이 안 통하는 작은아이가 오빠 것을 가져가서 주지 않으면 무조건 동생한테 양보하라고 하지 않고 동생의 시선을 다른 것으로 끌고는 큰아이 것을 돌려줬다. 그리고 동생한테 빼앗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아이와 작은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자꾸만 배우고 또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된다. 부모만 아이를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엄마, 아빠를 쑥쑥 자라게 한다. 사랑한다, 우리 아가들. 서로 아끼고 힘이 되어주는 우애 좋은 남매로 자라렴.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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