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란다, 집이 좁아진다
아이들이 자란다, 집이 좁아진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05.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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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아이들 짐 정리하며 "또 이만큼 컸구나"

왜 청소를 해도 집이 여전히 지저분한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정리를 해도 해도 왜 우리 집은 늘 어수선한 느낌일까?

바쁜 학사 일정 때문에 한참 동안 집안일에 신경쓰지 못한 요즘, 주말을 맞아 겨우 대청소를 마쳤건만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공부하는 부부의 특성상 책 짐은 해마다 늘어나고 줄이기도 쉽지 않은데, 아이들 짐까지 특별히 신경 써서 정리하지 않으면 무한정 늘어나니 가뜩이나 넓지 않은 집이 점점 좁아지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상당수의 남편들이 가지고 있다는 “그거 왜 버려?” 스킬, 우리 남편에게도 있다. 그래서 뭔가를 정리할 때는 나 혼자 하는 게 속이 편했다.

큰아이가 일 년 이상 가지고 놀지 않은 장난감은 아이가 학교 간 사이에 정리해야 한다. 아이들은 관심이 없던 장난감도 꼭 엄마가 정리하려고 꺼내면 그때부터 갑자기 가지고 놀기 시작하니 정리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없는 사이 일 년 이상 가지고 놀지 않은 장난감을 정리해버려도 정작 아이들은 없어졌는지도(아니 애초에 그 장난감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남편도 집에 없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거나 늦잠을 자는 시간이 집정리 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다.

한참 트렌드였고 요즘도 여전히 인기 있는 삶의 방식이라는 '미니멀 라이프'는 못 하더라도 청소라도 하기 쉬운 집을 만들려면 쓰지 않는 물건은 꾸준히 정리해줘야 한다.

게다가 요즘은 작은아이도 쑥쑥 자라고 있어서 큰아이뿐만 아니라 작은아이가 쓰지 않는 물건도 늘어나고 있다. 집의 주인이 가족이 아닌 물건이 되기 전에 정리를 시작했다.

기증하려고 따로 모아둔 큰아이의 옷. 아이들은 쑥쑥자라고 옷은 금방 작아진다. ⓒ이은
기증하려고 따로 모아둔 큰아이의 옷. 아이들은 쑥쑥자라고 옷은 금방 작아진다. ⓒ이은

◇ 옷 물려줄 땐 마음 상할 일 없도록, 장난감은 안전기준 따진 뒤 

터울이 큰 남매를 키우는 나에게 옷을 물려 입히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한국표 면내복은 그 품질이 최고라서 이염되거나 심하게 보풀이 인 것이 아니면 물려 입히려고 따로 챙겨놓았다.

다른 옷들은 주변에 잘 알고 지내는 아기 집이 있으면 아주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가 핵심이다. 물려입는 옷을 불편해하는 집도 있기 때문이다) 의향을 물어본 후, 물려주는 게 정석이다.

다만 요즘 남편의 직장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닌 탓에 나는 알고 지내는 아기 집이 없다. 그래서 지역의 굿 윌(Good Will,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와 비슷한 곳. 기부를 기본으로 하는 중고물품 판매 가게)에 기부 하거나, 원스 어펀 어 차일드(Once Upon a child, 미국 전역에 위치한 중고 육아용품 판매 및 구입 가게)나 지역 중고거래 사이트를 이용해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경우라도, 누구라도 마음 상하는 일 없도록 꼭 깨끗하게 입은, 상태가 양호한 옷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사실 나는 지인에게 옷을 물려주게 될 때는 더 조심스러워서 옷을 두 번 이상 확인하고 티셔츠 하나라도 새로 사서 같이 넣어 보내는 편이다. 이염이 되었거나 찢어진 부분이 있는 옷, 너무 낡거나 보풀이 심한 옷은 따로 정리해서 버리거나 창틀 같은 곳을 닦을 때 사용한다.

신발은 깨끗이 닦고 잘 말려서 신문지로 채운 상자 안에 넣어 창고에 보관한다. 아이들의 발은 생각보다 더 빨리 자란다. 그러나 신발은 그래도 중성적인 경우가 많으니 물려 신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장난감도 옷과 비슷한 방식으로 기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때 꼭 확인해야 할 것은 제조연월일이다. 안전기준이 바뀌는 경우도 있으므로 구매한 지 오래된 장난감은 혹시라도 구매 이후에 리콜대상이 되거나 안전기준에 문제가 된 적은 없었는지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보지 않는 책을 언제든지 지역 도서관에 기증할 수 있다. 우리 식구들이 안 보는 책은 지역 도서관에 기부하는 것이 제일 좋은 정리 방법이다. 혼자 들고 가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남편 찬스를 쓰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이제 젖병을 뗀 작은아이의 젖병과 젖병 세척 솔들. 무언가 기분이 묘하다. 이것이 한 시대의 끝인가. 작아져버린 바구니형 카시트도 이젠 안녕이다.

정말 많이 컸구나, 우리 딸.

◇ 어지럽혀도 괜찮아, 엄마는 미니멀 라이프 예전에 포기했어 

아들이 일필휘지로 쓰고 그리며 스스로 만든 이야기책들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담은 충격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커다란 상자 가득 참 많이도 써 내려간 그 이야기들은 보통 누군가의 갑작스런 추락이나 넘어짐, 혹은 변신으로 막 내린다. 그 아방가르드한 스토리와 깜찍하게 그려진 삽화들에 엄마, 아빠는 얼마나 많이 웃었던가. 이제는 제법 말이 되는 스토리북이 만들어지니 옛날의 엉뚱한 이야기들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아이가 또 한뼘 자란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하고 뭉클하고 또 변함없이 아쉽기도 한 일인가. 정리하는 과정 중에 엄마의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면서 집에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공간만큼 우리 아이들은 더 많이 어지럽히고 더 많은 걸 채워 넣고 더 많이 커가겠지.

그저 건강하게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자라다오. 엄마의 정신세계만 더 미니멀해졌을 뿐, 엄마는 미니멀 라이프 같은 것은 이미 예전에 포기했단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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