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성, 아빠, 그리고 ‘두 번째 페미니스트’입니다
저는 남성, 아빠, 그리고 ‘두 번째 페미니스트’입니다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7.29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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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두 번째 페미니스트」 저자 서한영교 시인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두 번째 페미니스트」(아르테, 2019년 7월)를 쓴 서한영교 시인.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두 번째 페미니스트」(아르테, 2019년 7월)를 쓴 서한영교 시인.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우리는 다짐했다. 집을 근거로 해서 삶을 꾸려나가겠다. 집을 소외시키지 않겠다. 남성-공적 영역/여성-사적 영역으로 성 역할을 분배하는 공간 배치를 거부하겠다. 집을 우리 삶의 장소로서 가꾸겠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집사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두 번째 페미니스트」 66쪽)

자신을 ‘집사람’으로 규정한 ‘아빠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시인은 확실히 특이한 사람이다. 궁금해서 만나고 싶었다. 무턱대고 인터뷰를 요청했다가 심지어 바로 다음 날 오전에 만나기로 덜커덕 약속을 잡아버렸다. 하지만 특이한 사람은 낯선 사람이기도 하다. 약속을 잡아놓고는 뒤늦게(?) 살짝 망설였다.

지난 16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한 시인. 어색함을 숨기면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까칠까칠 수염 난 30대 남자의 얼굴이 저렇게 천진할 수도 있구나!’ 인터뷰 내내 그는 정중하고 다정했다. 낱말 하나하나에 ‘감각’을 심어 말하는 사람. 그가 왜 시인이 됐는지 이해가 됐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아르테, 2019년 7월)는 ‘아빠 페미니스트’인 서한 시인의 고백록. 그는 시각장애인인 아내와 함께 세 살 난 아이를 ‘남성 아내’로서 키우고 있다. 2018년 ‘동시마중’ 신인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지만, 스스로는 “하청문필노동자”라고 소개한다. 아이를 돌보고, 또 ‘언어’를 돌보는 게 그의 일이다.

일단 제목의 뜻이 궁금했다. 원래 가제는 ‘아빠는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출판사 편집장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우연히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라는 심보선 시인의 문장(시 ‘형’ 중에서)을 언급했다. 그때 편집장의 말. “아, 그거 좋은데!”

그 뒤로 며칠 동안 ‘두 번째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이 서한 시인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 제목은 모유수유 할 때의 기억과 더해졌다. 모유수유에 있어서 아내와 아이는 첫 번째 사람. 아빠로서는 무슨 수를 써도 두 ‘당사자’를 대신할 수 없다. 그가 하는 일은 아이 트림을 시키고 잠든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정도.

하지만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로서 “아내에게 젖이 있다면 내게는 품이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사람도 할 수 있는 게 충분히 있었다는 것. 페미니스트로서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적 몫이라는 것 또한 분명히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목을 선택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첫 번째 사람이 아니라, 그 곁에 위치한 두 번째 자리에서 ‘저도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합니다’라고 응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있으려 한다.”(290~291쪽)

지난 16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서한영교 시인을 만났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6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서한영교 시인을 만났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 “여성에게 유리천장 있듯 남성에겐 ‘유리비상구’ 있다”

올해 3월에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부너미, 민들레)라는 책이 나온 바 있다. 페미니스트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다는 편견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목. 결혼한 사람의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 낯선 개념이다. 더군다나 결혼한 ‘남성’ 페미니스트인 서한 시인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젠더 갈등뿐만 아니라 결혼 이후에 펼쳐지는 삶의 국면이 있잖아요. (페미니즘이) 삶의 차원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어떤 색의 옷을 사줄지, 어떤 단어를 익히게 할지, 삶과 완전히 밀착된 페미니즘이랄까요? 결혼 전과 후의 페미니즘은 저한테도 굉장히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서한 시인은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결혼과 마주했을 때 많은 상상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혼인의례 때 신부-신랑석 구분을 없앤 경험 등을 이야기하며, “일상의 사소한 일들과 사회적 의례들을 어떤 식으로 바꿀 수 있을지 페미니즘의 언어로 상상된 가정에는 재밌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육아하는 아빠’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해도 여전히 ‘육아하는 아빠’는 신기한 사람, 대단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서한 시인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계부양의 역할만 과도하게 강조된 아버지 모델이 존속하고 있다”며, “여성들에게 직장 내 유리천장이 있다면, 남성들한테는 유리비상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들도 아이가 태어났다거나 어떤 비상 상황에서 비상구로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완전히 막아놓았죠. 이 사회는 남성들에게 ‘잠시 한 발 뒤로 물러서도 된다’고 말하지 않잖아요. 비상구는 비상구인데 나갈 수는 없는 유리비상구를 만들어놓고 ‘너 여기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라고 암묵적으로 협박하고 있어요.”

서한 시인도 육아휴직을 하면서 일을 못하게 된 경험이 있다. 그는 ‘육아하는 아빠’로 살면서 겪은 “작게 반짝이는 감동의 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강조했다. 첫 뒤집기, 첫 걸음마, 첫 마디…. 서한 시인은 “아빠들이 우리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권리는 감동받을 권리”라고 말했다.

“계속 지켜보지 않으면 몰라요. 뒤집기를 성공할 때까지 몇 천 번을 바둥거리거든요. 몇 천 번 지켜보다가 딱 뒤집었을 때, ‘와!’ 감동이 오잖아요. 아빠들도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있으려면 ‘최전선에서 한 발 정도 물러나도 괜찮아’라는 사회적 시선이 필요해요. 아빠들이 느낌의 세계, 감각의 세계를 박탈당한 상황이에요.”

덧붙여 서한 시인은 “한 발만 삐끗해도 낭떠러지 같은 절망을 맛보게 만드는 노동시장 구조도 한몫한다”며, “그런 공포 속에서 한국 남성들은 감동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정말 바쁘게 일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하니,/ 기다려줄 수 없는 거 알죠? 했다./ 이해했다. 알겠다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로는 복직할 수 없다고 했다./ 이해했다. 알겠다 했다./ 복직을 기다릴 수 없으니 새로 사람을 뽑겠다고 했다./ 이해했다. 알겠다 했다./ 이해해줄 수 있죠? 했다./ 네. 그럼요.”(102쪽)

느낌의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 경험은 또 있다.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아내와 출산을 고민할 때.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좋아하던 아내가 말했단다. “배철수는 전쟁 중에 태어났대. 전쟁 중에도 사랑을 하고 피난길에도 아이가 태어난 거야. 그런데 우리가 아이를 못 낳을 것 같아?”라고.

그 말이 서한 시인의 “가슴을 딱 뚫고 지나가며 느낌의 세계로 와닿았다”고 한다. 그는 “인식과 사유로 쌓아올렸을 때는 너무 단단해서 감히 나아가볼 수 없는 지점이 생기지만, 감각이나 느낌이 스쳤을 때는 ‘감히’가 가능해진다”며, “그래서 아버지들한테도 감동받을 권리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한영교 시인은 "여성에게 유리천장이 있듯이 남성에겐 ‘유리비상구’가 있다"고 말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서한영교 시인은 "여성에게 유리천장이 있듯이 남성에겐 ‘유리비상구’가 있다"고 말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 “아빠들이 느낌의 세계를 박탈당한 상황… 감동받을 권리 필요해”

서한 시인이 본 한국 사회는 ‘느낌을 박탈한 세계’이자, ‘경이로움을 잃어버린 세계’다. 이른바 ‘맘충’이니 ‘노키즈존’이니 하는 혐오와 배제의 단어는 ‘남성 아내’라고 해서 피해 갈 리 없었다. 그는 아일랜드 시인 브랜든 케널리가 쓴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문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경이로움도 느낌의 세계를 이야기하거든요. 경이로움이란 타자의 느낌에 근접하려고 하는 안간힘이기도 하죠. 느낌을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가족들을 보고 ‘애들 놀러가다 죽었는데 무슨 농성이냐’ 하는 말들이 나오는 거죠. 느끼려 하지 않는 인간들이 어느 정도까지 지옥을 펼쳐 보일 수 있는지….”

서한 시인은 “우리 사회가 경이로움을 잃어버리면서 발아되기 시작하는 혐오와 배제가 너무 강력해지다보니 사회적 품들을 완전히 닫아놓고 (서로) 분리되고 있다”며, “돌봄이라는 가치, 사회적 품이라는 것의 의미에서부터 풀어내지 않는다면 정말 어려운 숙제일 수 있겠다”고 답답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스스로 ‘어머니를 겪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대개의 남성들도 아이를 나이를 먹다 보면 어머니의 모성을 점점 더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효도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강해진다. 하지만 서한 시인이 아이를 키우고 ‘어머니를 겪으며’ 새롭게 생각한 어머니의 의미는 그것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았다.

“아들들한테 어머니란 신성화되는 경향이 있어요. 모든 어머니들은 신성한데 여자들은 불행한 세상. 그런데 우리 어머니도 여자였어요. 나를 어떻게든 키우기 위해서 애간장도 태웠을 테고, 처음 먹이는 밥을 만들면서 조마조마했을 테고. ‘엄마도 나한테 이랬겠구나’ 생각하니, ‘어머니를 겪었다’는 말이 정확하더라고요.”

특히 그는 “집밥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가 그리워한 집밥이 “오로지 어머니의 수고로만 차려진 밥상”이라는 것을 느낀 뒤부터다. 그에게 어머니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선배나 동료 같은 존재”다. 어머니가 살아오면서 겪은 편견과 갈등까지 “많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서한 시인이 가장 들뜬 표정으로 한 말은 “아이가 오늘 처음으로 ‘조사’를 사용했어요”였다. 그는 수첩에 적어둔 아이의 말을 보며 “그동안 ‘친구 집 나와’라고만 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친구 집이 나와’라고 조사를 썼어요”라고 말했다. 천 번을 지켜봐야 보이는 ‘첫’ 순간. 그의 얼굴이 해맑다.

그가 인터뷰 내내 펼쳐놓고 있던 작은 수첩에는 그가 본 아이의 ‘첫’ 순간들이 기록돼 있었다. 아이가 처음 한 말 “우부”(소에 붙여준 이름), “물”, “나나”(바나나를 발음 못해서), 처음으로 3음절 단어를 발음한 “좌회전”(가족여행 중에 아빠를 따라서), 모두 수첩에 기록했다. “지금 ‘처음’을 놓치면 평생 놓치는 거니까.”

한 사람의 양육자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그에게도 육아는 각별한 의미를 줬다. 바로 “‘돌보다’라는 인생 최고의 서술어”를 만나게 해줬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시적 언어가 주는 매혹에 감겨 있었다”던 그가, “문학이란 건 결국 어떤 시적 주체를 돌보는 일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제 인생의 최고의 서술어를 만났어요. ‘돌보다.’ 쓴다는 것도 결국 ‘나의 낱말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하는 거죠. 지금 ‘돌보다’라는 서술어보다 저를 강렬하게 만드는 단어는 없는 것 같아요.”

서한영교 시인이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 아이의 '첫' 순간들이 기록돼 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서한영교 시인이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는 아이의 '첫' 순간들이 기록돼 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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