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딩 도어 달린 아기침대… 장애부모 돕는 ‘숨은 1인치’
슬라이딩 도어 달린 아기침대… 장애부모 돕는 ‘숨은 1인치’
  • 권현경·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8.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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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엄마 시즌3 ②] TLG 활동가, 샤론 버그만 & 크리스티 툴레자

【베이비뉴스 권현경·최규화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2017년, 2018년에 이어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 시즌3을 연재한다. 미국의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 ‘스루더루킹글래스’(TLG)를 찾아, 미국 장애부모들의 양육 현실과 지원 서비스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 기자 말

‘스루더루킹글래스’(Through The Looking Glass, TLG)에서 활동하는 샤론 버그만(Sharon Bergmann) 씨는 장애부모의 영유아 양육을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다. 취재진이 인터뷰하는 동안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모습.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스루더루킹글래스’(TLG)에서 활동하는 샤론 버그만 씨는 장애부모의 가정을 방문해 영유아 양육을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다. 취재진이 장애부모를 인터뷰하는 동안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모습.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장애부모와 아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줄 때, 육아에 도움이 되는 장비를 제공할 때, 부모가 장비를 사용해 스스로 아이를 들 때, 그럴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우리의 존재 이유 아닐까요.”

1982년 미국 버클리에서 창립된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 ‘스루더루킹글래스’(Through The Looking Glass, TLG)에서 활동하는 샤론 버그만(Sharon Bergmann) 씨의 이야기다. 버그만 씨는 작업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이며, 장애부모의 영유아 양육을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Adaptive Equipment Specialist)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월 18일, TLG 사무실에서 버그만 씨를 만났다. 그는 TLG에서 2년 반 일하는 동안 마흔 가정을 만났고, 현재도 일곱 가정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그는 장애부모의 영유아 양육을 돕는 장비를 개발하고 지원하는 TLG의 핵심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가다. 또한 장애부모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매주 방문해 발달 단계를 살펴보고 상담하는 일도 하고 있다.

“영유아는 특정 시기마다 필요한 발달단계가 있어요. 일반가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장애부모 가정의 자녀교육과 양육 방식을 지원합니다. 모든 유형의 장애를 가진 부모를 지원하며, 이들의 역량을 최대화할 수 있게 그에 필요한 계획과 기술을 개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가족들과 직접 소통하며 일하는 버그만 씨는 가정방문 전에 가족의 전반적인 사항과 그들이 필요로 할 것에 대한 정보를 준비하고 부모 대상 설문조사를 한다. 이후 가족들이 안심할 때까지 소통하면서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간다. 버그만 씨는 이 업무에서 무엇보다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업치료사가 받는 중요한 트레이닝 중 하나가 ‘가족 환경 평가’예요. 단순히 부모의 장애유형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이 환경에 적합할지를 보는 것. 각기 다른 고유의 경험과 가족 환경이 있기 때문에 가정을 직접 방문해서 그 상황에 맞게 어떠한 조정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 부모의 장애 유형 따라 장비 지원… 개별 가정마다 ‘최적화’ 개발

장애부모들은 어떻게 TLG를 알고 찾아올까. 대체로 의료기관이나 사회복지사들이 소개한다. TLG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정해진 자격조건이 없다’는 것도 특징. TLG는 다양한 장애 유형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부모의 장애 유형이 다르듯 각기 다른 양육 방식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애부모의 양육을 돕는 장비는 전부 무료로 가정에 제공된다. 그 비용은 현재 오스카 메이어 재단(Oscar Mayer Foundation)의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하지만 지원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역량 안에서 최대한 지원하려고 노력하지만 재정 상황에 맞춰 지출범위를 계산한다”는 것이 버그만 씨의 설명이다.

장비 개발은 어떻게 할까. 장비는 TLG에서 직접 개발하거나, 시중에 판매되는 장비를 구입해서 해당 부모의 장애 유형이나 개별 가정의 상황에 맞게 개조한다.

“장비가 필요한 가족들을 늘 지켜보고 어떤 장비가 필요할지 고민합니다. 보통은 일반적으로 쓰는 장비에 가족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높이와 접지면을 조정해요. 지역의 기술자와 계약을 통해 작업이 이뤄지죠.”

TLG의 장비 보관실에는 장애부모의 유형과 아이의 연령에 따라 필요한 수많은 종류의 장비가 있다. 버그만 씨는 몇 가지 장비를 꺼내서 직접 시연해 보였다. 가장 인기가 있는 장비는 옆으로 밀어서 여는 슬라이딩 방식의 여닫이문이 달린 유아침대(Crib)와 모유수유 베개(Breast Feeding Pillow)다.

여닫이문이 달린 유아침대는 휠체어를 탄 부모를 비롯해, 아이를 드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몸의 균형 문제로 걷는 데 불편함이 있는 부모에게 도움을 준다. 모유수유 베개는 아이를 오랜 시간 안고 있을 수 없는 장애 엄마들이 아이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고 모유수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샤론 버그만 씨는 옆으로 밀어서 여는 슬라이딩 방식의 여닫이문이 달린 유아침대 사용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버그만 씨가 옆으로 밀어서 여는 슬라이딩 방식의 여닫이문이 달린 유아침대 사용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모유수유 베개는 오랜 시간 아이를 안고 있을 수 없는 장애 엄마들이 아이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고 모유를 수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모유수유 베개는 오랜 시간 아이를 안고 있을 수 없는 장애 엄마들이 아이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고 모유를 수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보행보조기에 아이의 의자를 고정해 엄마가 아이와 눈맞춤 하며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보행이 어려운 장애부모가 아이와 눈맞춤 하며 이동할 수 있도록 보행보조기에 아기의자를 설치한 장비를 개발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 장애부모 자녀 지원 서비스 없는 것은 한국-미국 마찬가지

TLG를 찾는 장애부모들은 장애 유형만 다양한 것이 아니다. 미국 사회의 특성상 출신 국가와 문화적 배경도 상당히 다양하다. 가정방문을 통해 그들을 만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가정마다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모든 가족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매뉴얼’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새 가족과 연결될 때마다 어떤 장애가 있는지, 문화적 배경은 어떤지, 구성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지원하는지 등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각기 다른 이해의 조각들을 통해 계획을 더 발전시킬 수 있어요.”

버그만 씨는 가정방문 때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경험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럴 때는 스마트폰 통역앱을 쓰거나 종이에 말을 받아 써가며 필담을 나누기도 한다. 청각장애 부모의 경우 수화(ASL, American Sign Language) 통역사를 데려가야 할 때도 있다.

출신 문화권에 따른 일반적인 차이에 대한 이해를 넘어, 특정 가족 안에만 있는 문화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부모, 삼촌 등 누가 아이 양육에 관여하는지에 따라 가족마다 각기 다른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도움의 방식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족들의 각기 다른 장애 유형과 그에 맞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가는 것이 매우 즐거워요.”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존재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서비스가 없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마찬가지. 버그만 씨는 “정부는 장애인 개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가족 단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지적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국가에 의해 양육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 그 비율은 60~80%에 이른다. 버그만 씨는 “장애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못 키울 거라는 사람들의 의심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양육권 박탈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슬픈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애부모가 양육권을 지키기 위한 지원과 관심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영유아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부모에 맞춰 적응합니다. 부모에게 신체적 장애가 있다면, 아주 어린 아이라도 자기 부모가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을 들고 안는다는 사실을 알아요.

청각장애 부모의 아이의 경우 몸짓(사인)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고, 시각장애인의 경우 다른 방법보다 촉각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것을 알죠. 이처럼 아이들은 부모의 상황에 맞춰 매우 잘 적응합니다.”

◇ “우리의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인 살아 있는 경험에 근거한다”

TLG에서 연구 분야를 담당해온 활동가인 크리스티 툴레자(Christi Tuleja) 씨를 만났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TLG에서 연구 분야를 담당해온 활동가인 크리스티 툴레자(Christi Tuleja) 씨.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TLG는 무엇보다 장애부모의 영유아 자녀 양육과 관련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는 강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관련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관련기사 : 지원도 연구도 없다...정책 사각지대 속 '엄마' 장애인) 같은 날, 연구 분야를 담당해온 활동가인 크리스티 툴레자(Christi Tuleja) 씨를 만났다.

1991년부터 TLG에서 활동해온 툴레자 씨는 개조된 장비가 장애부모에게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수 년간 연구했다. 장비 이용 전후를 영상 촬영을 통해 비교 분석한 결과, ‘상황에 맞게 조정된 장비’를 통해 부모가 자녀를 직접 양육할 수 있게 되자 부모와 아이의 관계 질이 향상됐다.

TLG의 연구가 정부의 정책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을까. TLG의 연구 결과들은 ‘요람 흔들기: 장애부모와 자녀들의 권리 보장(Rocking the Cradle: Ensuring the Rights of Parents with Disabilities and Their Children)’라는 리포트에 요약·정리됐다.

툴레자 씨는 “그동안 여러 학술지에 조각조각 발표된 모든 연구 결과와 데이터를 한자리에 모았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TLG는 이 리포트를 통해 장애부모의 현실을 알렸고, 미국 연방정부가 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인 살아 있는 경험에 근거해요. 나와 내 가족이 장애 경험이 있다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이죠. 대학과 연구기관은 이러한 ‘사람’을 연구한다면 우리는 단지 ‘우리’를 직접 연구 거예요. 즉, 개인적 경험과 전문적 지식이 결합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TLG에는 장애부모 당사자 활동가들이 있다. 그들은 전문지식과 부모라는 경험,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이 TLG의 연구에 굉장한 차별성을 만든다는 것. 본인 또는 가족이 직접 장애를 경험한 당사자라는 ‘동료모델’(peer model)은 TLG의 역할과 가치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이다.

◇ “허브 체계 만들고 축적된 지식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이 과제”

현재 TLG는 연구 활동을 잠시 멈춘 상태다. TLG에서 30년 가까이 활동해온 툴레자 씨는 그동안 쌓아온 지식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누가 이 역할을 물려받을 것인지, 누가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해오고 있어요. 이 일을 지켜나가기 위한 대안과 사람을 찾고 있는 거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그는 지금 작업치료사, 정신건강 치료사 등의 자격을 가진 인턴 활동가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은 교육을 마치면, ‘동료모델’을 기반으로 TLG의 지식과 철학을 국내외에 전하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일하는 작업치료사나 재활치료사의 경우 (장애인 가정을) 1년에 한두 가정만 보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병원 밖에는 수많은 유형의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보 접근의 한계성을 없애고 우리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허브(Hub) 체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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