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아이들과 동물원 갔다가 '전우애' 꽃핀 사연
두 살 아이들과 동물원 갔다가 '전우애' 꽃핀 사연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10.31 16: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D
[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끔찍한 두 살',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공부하는 엄마라서, 또 비사교적인 엄마라서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거의 만들지 못하는 편이다. 그 때문에 늘 묘한 죄책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딱히 행동에 변화를 주지는 못했다. 삼시 세끼 차려 먹고, 기관에 보내지 않는 아이를 종일 나 홀로 돌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저질 체력은 그 한계에 다다르고는 했다.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잠들면 얼른 일어나서 할 일을 좀 해야지 하곤 하는데 결국 '장렬하게(남편의 표현이다)' 함께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밀려가는 공부에, 논문 작업에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잘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사를 자주 다니다가 남편의 임용으로 새 도시에 정착하게 된 '불량 엄마'. 이 불량 엄마는 어느 날 큰아이 학교 보내고, 둘째와 옆 동네에 산책하러 갔다가 우연히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를 만났다. 산책 방향이 같아서 눈인사하다가 아이들을 매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 뒤로 두어 번 더 마주쳤는데 정신 차려보니 우리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있던 것 아닌가? 심지어 함께 동물원에 놀러 가자는 약속도 했다! 우리 둘째의 생애 첫 '플레이 데이트(Play date: 아이들이 약속을 정해 함께 만나서 노는 것)'가 성사된 것이다. 

그런데 함께 가기로 한 아이의 엄마, 캐서린과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우리 아이들은 만 2세에 근접한, 미국에서 이른바 '끔찍한 두 살(Terrible Two)'로 불리는 시기에 놓인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 누군가는 드러눕고, 누군가는 울고불고… 우리 동물원 온 거 맞지?

동물원으로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 고난의 여정이 시작됐다. 우리 둘째는 그래도 순한 편에 속하는 아이인데, 유난히 그날은 차 안에서 얼른 자기 옆에 앉으라고 화를 냈다. 나는 "오늘은 엄마와 너 단 둘뿐이니 너는 카시트에 앉고, 엄마는 앞에서 운전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아마 우리 차가 '자율주행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우유와 쌀과자로 겨우 달래가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5분가량 늦었다. 도착해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캐서린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캐서린의 딸 엘리가 엄마 가방에서 소지품을 빼놓았는지, 지갑을 두고 나와서 다시 집에 다녀오는 바람에 십 분가량 늦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렇게 우리는 약속한 시간보다 15분 늦게 동물원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좋아했고 엄마들은 덩달아 신이 났다. 비록 아이들은 동물보다는 계단과 울타리에 더 관심을 보였지만, 아무렴 어떤가. 기분 좋게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엘리가 끈이 달린 신발을 신고 온 게 화근이었다. 엘리는 신발 끈이 풀릴 때마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끈에 걸려 아이가 넘어질까 걱정된 캐서린이 끈을 묶어줄 때마다 엘리는 바닥에 드러누워 서럽게 울어댔다. 이 와중에 우리 둘째는 엘리가 타고 온 웨건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바닥에 드러누워 엉엉 울던 엘리는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우리 둘째가 탄 웨건을 자기가 끌겠다고 나섰다. 무거울 것 같아 캐서린이나 내가 함께 밀려고 하면 격노했다. 

이 와중에 또 우리 둘째는 친절한 캐서린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손을 잡아도 좋다며 웨건에 탄 상태로 손을 내밀며 캐서린에게 그 손을 잡고 따라오라고…. 엉거주춤 우리 둘째 손을 잡고 웨건을 따라다니는 캐서린. 앞에서 끙끙대며 웨건을 끄는 엘리. 엘리가 넘어지거나 다칠까봐 걱정은 되는데 웨건에 손만 대도 엘리가 화를내는 통에 아무것도 못 하고 안절부절 유모차를 밀며 걷는 나. 정말이지 혼돈의 동물원 관람이었다.

곧 '끔찍한 두 살'이 되는 두 아이의 플레이 데이트는 둘이 합쳐 장장 열두 번의 서러운 울음, 두 번의 넘어짐, 세 번의 격노, 네 번의 땅바닥 드러눕기 후 마무리됐다. 이 아이들이 여러 번 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그렇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어른의 눈에 독특할 뿐이지 분명 이유는 존재한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높은 계단을 계속해서 오르내리자 엄마가 그만하라고 막아서, 흙이 묻은 더러운 손으로 먹고 싶던 간식을 신나게 먹으려던 찰나, 엄마가 손을 닦아서, 다른 친구가 넘어져서 울었는데 그게 덩달아 슬퍼져서, 악어가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아서 등등이 있다. 게다가 캐서린도 나도 아이에게 무언가가 안된다고 말할 때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설명하려는 성향. 남들보다 이동 시간이 곱절로 드는 탓에 작은 동물원 하나를 돌아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이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이은

◇ 못 알아듣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통한다는 '육아의 기적' 

평소 유모차를 잘 안 타려고 한다는 엘리는 우리 집 유모차에 타고, 우리 둘째는 엘리의 웨건에 탄 상태로 겨우겨우 동물원 나들이를 마쳤다. 헤어질 때는 낮잠 시간이 겹친 아이 둘이 모두 울고 아우성이었다. 캐서린과 나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눈빛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오고가는 눈빛 속에 피어나는 전우애를 느끼며 다음을 기약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고집이 늘어가는 만 2세의 아이를 키우며 마음을 여유롭게 먹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맘때에나 할 수 있는 경험임을 알기에 첫째를 키울 때보다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첫째 키울 때를 생각해보자면, 아이들이 못 알아들어도 어른이 충분히 계속해서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결국 이해하게 돼 있다. 시간이 갈수록 말도 점점 잘 통하게 된다.

반복해서 설명하다 보면 언젠가는 통하게 돼 있다는 것. 그 변화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왜 안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고, 대안으로 아이가 흥미를 갖는 다른 일로 유도하다 보면 ‘미운 네 살’과 ‘끔찍한 두 살’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고 말 것이다.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백미러에 비친 아이 얼굴을 보니 힘들지만 보람찬 하루를 보낸 기분이 들어 절로 웃음이 났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