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어머니,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11.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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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승소장보다 더 값진 승리

얼마 전, 나의 전(前) 시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사랑이가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사랑이를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전 남편에게 일말의 미련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할머니나 삼촌의 사랑은 온전히 사랑이가 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쩜 애가 이렇게 밝고 예쁘니. 너 혼자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다.”

이혼한 지 수년 만에 사랑이를 본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7년이나 지났으니까, 물어봐도 되겠지. "어머니,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베이비뉴스
7년이나 지났으니까, 물어봐도 되겠지. "어머니,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베이비뉴스

◇ "네가 얼마나 못 났으면 내 아들이 밖으로 돌겠니?"

2014년 어느 날, 나는 시어머니와 도련님을 만나러 신도림으로 갔다. 그 당시 남편은 나와 싸우기만 하면 다른 여자와 채팅을 했다. 그 사실을 안 나는 더 크게 남편과 싸웠다. 싸움과 남편의 외도와 상처가 반복됐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서 이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 사실을 안 시어머니는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네가 얼마나 우리 아들을 못살게 굴었으면, 걔가 오죽했으면 그렇게 밖으로 돌았겠니? 네 성격이 나쁘니까 그런 것도 하나 못 참고 사는 거 아니겠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다. 네가 혹시 소송이라도 건다면, 네 남편은 아직 미국에 있으니 얘(도련님)가 대신 법정에 갈 거다. 그렇게 알아라.”

나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우리 친정엄마만 해도 부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참고, 이해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시어머니는 내 얘기는 듣지 않고 바로 이혼하란 말부터 하셨다. 

황망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이렇게 대답했다.

“네. 어머니, 그럼 법정에서 뵙죠.”

그 길로 나는 법원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하며 혼자 힘겹게 소송을 준비해 나갔다. 변호사를 쓸 돈도 없었다. 혼자서 남편의 외도를 증명할 자료를 모아냈다. 법원에서 최종 변론을 할 때 판사는 내게 5분의 시간을 준다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편이 이혼을 원합니다. 저는 정신적인 피해 보상과 위자료를 받고 싶습니다.”

재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시어머니와 마주쳤다. 그날따라 유난히 시어머니 모습이 유난히 초라했다. 

‘이렇게 다닐 사람이 아닌데… 혹시 이렇게 초라하게 나타나면 위자료를 조금이라도 적게 판결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일부러 이런 차림으로 오셨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달리 생각할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들 사랑 참, 대단하시네’라고 생각하며 시어머니를 무시하고 법원을 나섰다. 

◇ '승소장' 받고 서러워 엉엉… 분명히 이겼는데, 진 것 같아 

나는 재판에서 이겼다. 법원은 남편이 내게 위자료 3000만 원과 매달 양육비 1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승소장을 받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분명히 이겼는데 이긴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었다.

내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가정이 이 종이 한 장에 정리가 됐다는 사실에 억장만 무너졌다. 내가 만들어 가고 싶었던 가정, 꿈꾸던 미래가 모두 무너졌다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4년 뒤, 우연히 전 남편이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을 봤다. 

시어머니가 어째서 나의 소송을, 우리의 이혼을 말리지 않았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애가 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이혼하라고 하셨던 거네….”

전 남편은 나와 싸우고 나가 다른 여자를 임신시켰고, 그녀와 행복하게 다시 새 출발 하고 싶다며, 나를 잘 정리해달라고 시댁 식구들에게 미리 부탁했다. 법정에서도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이 결코 유리하게 적용되지 않았을 테니...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도, 모든 사실을 내게 비밀로 한 채 “무조건 헤어지라”고만 했다. 

TV에나 나올법한 일을 겪었다. 

나는 사랑이와 악착같이 견디며 살아냈다.

위자료도, 양육비도 아직 못 받았다. 

◇ 7년 만에 들은 '진짜 사과', 이제야 이긴 것 같다 

“나도 그때 힘들었다. 내 아들한테 너무 실망해서 억장이 무너지더라. 그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7년 만에 듣는 시어머니의 진심이었다. 

사실 시어머니는 이혼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 중 한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 늘 맛있는 간식과 과일을 식탁에 차려준 사람. 집에서 함께 밥 먹을 때 나한테만 제일 예쁜 그릇을 꺼내 밥과 국을 담아주시던 사람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시댁에서 함께 지낼 때 남편과 싸운 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질책하지 않고 ‘그러지 말고 친정에 가서 며칠 쉬다 오라’며 나를 다독거려줄 줄 알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아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아들의 비틀어진 사랑을 질책하고, 아들이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했어야지. 아들의 실수를 덮어서 해결하려는 일에만 급급해했다니. 아무리 엄마여도, 아니, 엄마라면 당연히 그러면 안 됐던 건데....

“그때 OO이가 새 와이프 인사시킨다고 집에 데려온다는데, 네 생각이 자꾸 나서 걔들 얼굴을 못 보겠더라. 그래서 그냥 ‘너희는 너희끼리 미국 가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하고 미국으로 돌려보냈어. 

미안하다. 나도 그때… 경황이 없었다.” 

7년 만에 받은 진짜 사과. "은아야, 그땐 나도 너무 힘들었다. 미안하다." ⓒ베이비뉴스
7년 만에 받은 진짜 사과. "은아야, 그땐 나도 너무 힘들었다. 미안하다." ⓒ베이비뉴스

시어머니와 헤어지고 사랑이와 집에 돌아오는 길, 위자료 3000만 원, 월 양육비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명시된 승소장을 받아들었던 날보다 더 큰 승리감을 느꼈다. 

7년 전, 당신들은 나를 속이고 멸시했지만 난 이렇게 예쁜 딸을 혼자서도 잘 키워냈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견뎌냈으며, 끝까지 사랑이를 지켜냈다.

이 당당한 마음이 가슴 가득 퍼지자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전 시댁 식구들에게 품위 있는 복수를 한 것 같았다. 7년이나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그들은 내게 사과하는 처지가 됐고, 나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됐다. 나는 힘들지만, 끝까지 당당하게 아이를 지킨 사람이고, 그들은 아이를 지키지 않은 사람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부끄러운 사람이 됐고, 나는 반대로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진짜 승리’를 쟁취한 기념으로 얼마 전 친정 식구들과 동네 언니들에게 밥을 한 끼 샀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전했다.

내가 진짜로 이길 수 있게 도와줘서, 나와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줘서, 사랑이를 같이 키워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내가 진짜 이길 수 있었다고, 그래서 그들을 아주 부끄럽게 만들 수 있었다고.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7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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