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난 육아 동지… '함께하는 육아' 참맛 느꼈다
미국에서 만난 육아 동지… '함께하는 육아' 참맛 느꼈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12.3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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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친구'가 필요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집순이다. 또 고백하자면 나는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럿이 함께하면 더 즐겁거나 더 수월한 일도 참 많다.

죽을 것만 같이 힘든 일도 누군가와 함께하면 훨씬 안정적이고 덜 힘든 일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육아'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다른 엄마들과 함께 무언가를 함께 할 때면 아이도 나도 생각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육아는 함께할 때 즐겁고, 또 덜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문센에 해당될 법한 (여전히 많이 다르지만) 영유아 음악 수업을 듣게 된 나는 같은 수업을 듣는 엄마들과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나는 이 수업에 최근에야 합류했지만, 나머지 엄마들은 모두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육 개월 정도 이 수업을 들어오고 있었다. 때문에 엄마들끼리 이미 친분도 돈독해 보였고 가끔 둘씩 혹은 셋씩 플레이 데이트(Play date)도 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중 같이 수업을 듣는 에반의 엄마인 레이첼이 내게 전화번호를 물어왔다. 집에서 조촐하게 아이들과 쿠키 꾸미기를 할 생각인데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할 일이 쌓여 있었으나 요즘 들어 활발하던 성격이 조금 낯가리는 성격으로 바뀌는 듯한 딸아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금방 초대를 받아들였다. 같은 수업을 듣는 루비와 루비 엄마 다니엘, 엘리와 엘리 엄마 캐서린, 그랜트와 그랜트의 엄마 젠까지 함께 모이기로 했다.

◇ 부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의 아이를 함께 돌봤다 

따로, 또 같이 노는 아이들. ⓒ이은
따로, 또 같이 노는 아이들. ⓒ이은

한국식 유자차를 선물로 챙기고 다른 일정 때문에 조금 늦게 레이첼에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이미 펜이나 퍼즐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잘 놀고 있었다. 레이첼이 손수 소스까지 만들어 요리해둔 파스타와 젠이 준비해 온 샐러드가 점심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에 잘 안 먹던 아이들까지 식탁에 앉아 열심히 음식을 먹었다. 따로 있을 때도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인데 여럿이 함께 있으니 더 귀여워 보이는 것이 고슴도치 엄마들에게는 다 똑같았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또 한동안 놀았다. 아직 두 돌 전후의 아이들이라 유창한 말이 오가진 않았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기도 하고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하면서 시간을 잘 보냈다. 엄마들은 여느 때처럼 요리 이야기, 아이들 교육 이야기, 그리고 연말연시 계획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상을 무른 곳에 앉아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아이들과 조금 더 놀고 함께 장난감을 정리하고 나니 레이첼이 이미 쿠키를 다 구워서 식혀 놓은 상태였다. 쿠키 위에 발라 줄 아이싱(icing)도 작은 그릇에 담겨 식탁 위에 배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넓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엄마들도 아이들도 마냥 들떠 보인다. 아이들의 첫 쿠키 꾸미기, 무언가를 처음으로 함께 한다는 일은 모두에게 설레는 일이다.

다니엘은 갓 백일이 넘은 루비 동생 윌리엄에게 젖을 물리고 그사이 레이챌이 루비와 에반을 같이 돌본다. 나는 우리 딸과 엘리의 간식을 같이 챙기고 캐서린은 다니엘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윌리엄을 대신 안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 오래 이뤄졌던 팀 워크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누구도 당부나 부탁을 하지 않는데도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신경을 쓰고 아이들을 챙긴다.

◇ 육아에는 함께 걸을 수 있는 '길동무'가 필요하다

장식한 쿠키를 먹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 ⓒ이은
장식한 쿠키를 먹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 ⓒ이은

아이들도 크게 다정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어색할 것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쿠키 위에 아이싱을 쏟아붓기도 하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도 하고, 또 처음 맛보는 달콤함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술 가득 크림을 묻히고 쿠키를 먹기도 했다.

네시간 가까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공부하는 엄마라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함께 하는 육아'에 대한 생각이 다시금 깊어졌다. 아무리 개인주의적인 미국이라지만 육아에는 항상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모두 함께 하는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찾는 안정감과 연대감.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과 마음들이 육아에 주는 힘은 얼마나 크고 또 큰가.

낯선 곳에 이사 와서 또 다른 인연들을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가면서 조금은 힘들었던 마음들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육아에도 함께 길을 걷는 길동무가 필요하다. 엄마들에게도 다른 엄마들이 아이들에게도 다른 아이들이 필요하다. 쿠키와 아이싱처럼 달콤한 오후에 다시 한번 '함께 하는 육아'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졌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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